▲ 『우리들의 진화』 이근화 지음, 문학과 지성사
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차가운 잠』에 이르기까지 세 권의 시집을 관통하는 이근화의 상상력은 ‘내가 아닌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하는 나’(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와 그 사이를 흐르는 생활의 감각이다. 장을 보고 마늘을 까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상의 풍경이 이근화의 시에는 자주 등장하지만 그녀의 시는 일상의 풍경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이근화 시의 주체는 “나는 나인 듯/어느 맑게 개인 날에/시금치를 삶고/북어를 찢”고 “클랙슨을 울리고/정말 나인 것처럼/상스럽게 중얼거”(지붕 위의 식』)리다가 “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나는 새벽의 거리에서 “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따뜻한 비닐』에 사로잡힌다. 이근화의 시에는 “나는 나인 듯”하다거나 “내가 나에게 이른”다거나 하는 상상력이 자주 등장한다. 시인의 말을 빌리면 “내가 ‘나’이기를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그럼에도 이근화의 시는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다. “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로 가득하고 “1부는 끝났”고 이제 2부가 시작되었지만 “3부의 수프”는 이미 식어버린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이근화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묘하게 위로받는다. “꼬리 치며 웃기 시작”(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한 ‘나’를 따라 덩달아 까르르 웃고 싶어진다.
 
  ‘우리’라는 감정 공동체의 연대를 그린 우리들의 진화의 시인』)은 차가운 잠』에 오면 관계를 다시 응시하기 시작한다. “병상의 엄마”와, “고장 난 시계”처럼 “차가운 잠”에서 “빠져나가지 않”(차가운 잠』)으며 병상을 지키는 ‘나’는 섣불리 손잡지 않으며 차가운 잠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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