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은 우리를 깨우는가, 잠 재우는가
  • 박현준 기자
  • 승인 2016.05.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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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중앙게르마니아 ‘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야만 상태로 회귀하는 계몽의 역설

여전히 유효한 아도르노의 문제의식

계몽의 맹신은 철저히 붕괴됐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이 인간을 배신하는, 계몽이 계몽을 배반하는 모순의 한복판에서 이를 느꼈다. 그는 풍성한 표현과 해석으로 음울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나갔다. 지난달 29일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자 아도르노와 그의 저서 『계몽의 변증법』을 주제로 경상대 김유동 교수(독어독문학과)의 강의가 진행됐다.

  야만으로의 회귀 

 ▲ 김유동 교수가 학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도르노는 철학, 사회학, 미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연구 활동을 한 사상가다. 그는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던 중 나치에 의해 추방되어 1934년 미국에 망명했다. 1938년부터 미국에서 파시즘 연구를 진행한 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계몽의 변증법』(1947)을 발표했다. 1949년 독일로 귀국한 그는 모교 교수가 되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학자로 활약한다.

  아도르노는 ‘계몽에 의해 붕괴된 시대’의 한복판을 통과했다. 제국주의가 한창 세계를 짓밟던 시기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속에서 성장했다. 또한 히틀러의 전체주의 독재와 광기 어린 학살의 희생자가 될 뻔했으며 간신히 이어나간 삶의 길 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지켜봐야 했다. 계몽을 통해 점차 인간성에 가까워지는 인류가 아니라 오히려 계몽 때문에 퇴보하는 세계를 온 몸으로 마주한 것이다.

  그는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야만으로 회귀한 세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김유동 교수는 “『계몽의 변증법』에는 야만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불빛을 적어도 사회적 차원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절망이 책의 밑바닥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계몽의 변증법』은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류는 ‘계몽’으로 일컬어지는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통해 자연 위에 섰다. 그리고 자연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 역사가 이성에 따라 흘러가기만 하면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류는 곧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져들었다. 계몽이 자연뿐 아니라 인간 위에 인간이 군림하는 것까지 허락한 결과다.

  문화산업-대중 기만의 계몽
  아도르노는 오늘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학문적으로 정립했다. 아도르노는 인류를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뜨리는 요소 중 하나로 문화산업을 제시했다.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개념을 칸트로부터 얻었다. 칸트는 ‘외부로부터 오는 자료들을 순수이성의 체계에 끼워 넣도록 도와주는 은밀한 메커니즘이 영혼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칸트에게 은밀한 메커니즘이란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아도르노는 은밀한 메커니즘의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은밀한 메커니즘이 문화산업에 의해 계획된다고 봤다. 권력자가 개인 위에 군림하기 위해 대중 기만의 도구로 문화산업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이 소비자의 모든 욕구가 실현될 수 있을 것처럼 제시하지만 사실 그 욕구들은 문화산업에 의해 사전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여가는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획일적 생산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권력자들이 문화산업을 이용해 개인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욕구의 다양성을 보장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욕구 다양성은 그 폭이 좁다. 모든 욕구는 사회가 문화산업을 이용해 강요한 몇 가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욕구는 획일화된 사고의 틀을 만든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획일화된 개인은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 가능한 복제물에 불과하다. 대체 가능성은 개인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린다. 존재가치가 떨어진 개인은 사회로부터 쉽게 소외된다.

  김유동 교수는 아도르노의 문제의식이 현재에도 적용된다며 “70년 전 세상에 관한 이야기인 『계몽의 변증법』이 철 지난 얘기가 아니라 지금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대중은 여전히 몇몇 주류문화만을 소비하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강의가 끝난 후 김유동 교수와 학생들이 질의응답을 주고 받고 있다.


  서구중심주의적 한계
  김유동 교수는 아도르노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의 한계를 지적했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에 이르는 독일 지적 전통의 서구중심주의적 한계를 아도르노 역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서구 문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비서구를 논할 땐 서구중심주의적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김유동 교수는 자신의 저서 『충적세문명』과 『계몽의 변증법』의 내용을 비교하며 아도르노의 비서구 문화에 관한 이해부족을 드러냈다.

  『계몽의 변증법』에는 ‘원주민의 저승 신들은 지옥으로 추방되었지만, 사실은 인드라나 제우스의 태양 종교 또는 빛의 종교 아래서 대지가 지옥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구문이 있다. ‘인드라’는 어둠을 몰아내고 진리의 빛을 비추며 질서와 정의를 지키는 인도의 신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는 인드라와 제우스를 같은 성격의 신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충적세문명』에 따르면 이는 인도문화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리스신화의 영웅적 인격신 제우스는 우라노스를 물리친 후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인도의 인드라 또한 토착 세력을 정복한 아리아인 전사를 신격화한 영웅 신으로 제우스와 비슷하다. 두 신 모두 천둥과 번개를 관장하기 때문에 이미지는 더욱 중첩된다.

  하지만 두 신은 권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제우스는 강력한 무력을 통해 모든 신의 위에 군림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반면 인도 신들의 왕인 인드라는 무력이 아닌 엄격한 고행을 통해서만 그의 적수를 물리칠 수 있다. 자기희생이 없고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드라는 보호와 유지의 신 비슈누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이렇듯 권력 유지 방법에 관한 인도문화와 서구문화의 이해는 다르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 인도문화를 서구문화와 동일시했다. 김유동 교수는 이런 점에서 아도르노의 서구중심주의적 한계를 지적했다.

  아도르노의 현대적 의미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 개정판에서 ‘이 책은 나치 테러의 종말이 눈에 보이는 시점에서 쓰였다. 사실 적지 않은 부분들이 오늘날의 현실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음을 느낀다’며 비관을 유보했다. 김유동 교수는 “아도르노의 비관 유보는 전후 재건과 제3세계의 편입이 이끈 ‘복원된 자본주의’의 황금시대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유동 교수는 아도르노가 70년대 이후의 역사진행을 본다면 개정판 서문의 유보를 철회할 것으로 상상한다고 말했다. 아도르노가 부정적 현실인식의 명제로 삼은 ‘관리되는 사회’, ‘문화산업’, ‘실증주의 정신’과 ‘도구적 이성의 지배’ 등이 현대 사회에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김유동 교수는 “아도르노의 문제의식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더욱 완벽해진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유동 교수가 전해준 아도르노의 계몽에 대한 비관은 지금 우리에게 더 실감 나게 다가온다. 그 형태만 다를 뿐 ‘계몽’의 저주는 더욱 강화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발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성에 가까워지고 있을까, 다시 한 번 야만으로 회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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