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갖고 탐험하다 보면 철학자의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남영호 동문(사진학과 95학번)은 유라시아대륙, 갠지스 강,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아라비아 엠티쿼터 사막 등 드넓은 대륙과 광활한 사막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진심으로 탐험했다. 탐험을 사랑하는 그는 텅 빈 사막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소할 줄 아는 철학자였다.

▲ 사진제공 남영호 동문

공허함 속에서 얻어가는
역설의 미학
 
탐험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

도심 한가운데서 만난 그는 건강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탐험가의 꿈을 안고 유라시아대륙, 타클라마칸 사막, 갠지스 강 등을 직접 체험하며 현재 세계 최초로 세계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에 도전하고 있는 남영호 동문. 답답한 도심보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별을 보는 것이 더 익숙한 그를 압구정로데오 거리에서 만나 보았다.  

-탐험가이다 보니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후배분이 부탁하는데 흔쾌히 응했죠.(웃음) 지난해 치와와 사막 종단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만큼 세 살 남짓한 딸과 오붓한 시간도 보내고 있죠.”
 
-언제부터 탐험가를 꿈꿨나.
어려서부터 탐험가를 꿈꿨지만 어떻게 해야 탐험가가 되는지는 몰랐어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기자처럼 탐험가 같은 사진작가를 막연히 동경했죠. 대학에 탐험학과가 없으니 원서는 오직 사진학과만 썼어요. 운 좋게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해 다큐멘터리 전공을 택했죠.”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그다지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어요.(웃음) 졸업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죠. 휴학은 많이 하고 공부는 워낙 안 했으니까요. 점수를 채우기 위해 별 관심 없는 교양수업을 듣기 보다는 온통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행도 많이 다녔나.
그렇죠. 그때 한창 포털 사이트가 생겨날 때였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행자 카페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라는 카페를 하나 만들었죠. 당시 회원이 200여 명 정도로 여행자 카페 1,2위를 다퉜어요. 제가 카페지기이다 보니 제 성향에 맞는 여행을 재밌게 다녔죠.”
 
-왠지 도전적인 여행이었을 것 같다.
그런가요.(웃음) 일단 원하는 섬을 하나 골라 무작정 출발했어요. 가서 배편이 끊기면 어선 선장님한테 우리 저 섬에 가고 싶다.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서 스무 명 정도가 한 배에 우르르 몰려 타고 섬으로 향했죠. 섬에 도착하면 아무 집이나 가서 할머니께 허락을 구하고 마당에서 밥해먹고, 할머니와 재밌게 놀았어요. 당시 제 또래의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중식당 주방장을 하는 30대 형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함께 여행을 다녔죠.”
 
-졸업 후엔 산악 전문잡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졸업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튜디오를 운영한 거예요. 국제회의나 컨퍼런스 보도 자료를 담당하는 전문 사진 스튜디오를 열어 꽤 많은 돈을 벌었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결국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산악 전문잡지에 취직했어요. 탐험가가 되고 싶은 제게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장은 거기만한 곳이 없었죠. 방방곡곡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전문 산악인들 옆에서 그들은 어떻게 원정대를 꾸리는지, 일정은 어떻게 짜는지 등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어요.”
 
남영호 동문은 산악 전문잡지 생활을 하며 전국 각지 산이란 산은 가릴 것 없이 섭렵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는 잡지사를 그만둔다. 남들은 안정을 쫓을 시기에 탐험가라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다. 그의 첫 도전은 유라시아대륙이었다. 선정 이유는 자전거를 타고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에서였다.
 
 
 
 
-지난 2006년 유라시아대륙 18,000km를 자전거로 횡단하며 탐험가의 길에 들어섰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 같은데.
대륙 횡단이라고 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거창한 탐험은 아니에요. 하루에 몇 킬로가 됐든 꾸준히 달리면 되는 장거리 여행이죠. 북한을 건너갈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 청진을 통해 유라시아대륙을 건넜어요.”
 
-체력이 남다른 것 같다.
아니에요. 보시다시피 아주 평범해요.(웃음) 종종 사람들이 제가 특별한 체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직접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체력이 바닥이면 곤란하겠지만 기본 체력이 된다면 그다음은 의지의 문제죠.”
 
-원정 도중 부상을 당해 안타깝게 여정을 멈추는 일행도 있었다. 본인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나.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거였죠. 첫 원정을 준비하던 설렘과 제가 투자한 시간, 그동안의 노력을 되새기며 끝까지 버텼어요. 중간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주변 상황이 제가 멈출 이유가 되진 못했죠. 유라시아대륙 횡단은 언제까지나 제 자신과의 결심이었으니까요.”
 
유라시아대륙 자전거 횡단을 시작으로 초보 탐험가로서 발 디딘 남영호 동문은 앞으로의 탐험을 위해 더욱 많은 지형을 체험하기 위해 떠났다. 후원사도 없던 터라 유라시아대륙 횡단 이후 3년간 스스로 탐험 경비를 모은 그는 지난 2009년 타클라마칸 사막 종단에 도전했다. 그다음 해엔 갠지스 강의 원류부터 끝까지 약 2,510km를 고무 카약과 도보로 일주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간직했던 탐험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그 후로도 쉴 틈 없이 탐험은 계속됐다.
 
 

 

 

 
-지난 2009년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넜다. 원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들었는데 당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EBS 촬영팀과 함께 일정을 진행하던 중 중국 공안에 의해 34일 동안 밤새 조사를 받은 적이 있어요. 어차피 잘못한 게 없으니 떳떳했지만 호텔에 억류되어있던 시간은 지루했죠. 어서 이 상황이 해결되면 좋겠다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어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GPS는 몰수당했어요.”
 
-GPS 없이 어떻게 여행을 계속했나.
“GPS 없이도 위치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요. 하늘에 떠 있는 별과 곳곳에 있는 사구의 방향도 알려주니까요.”
 
-자연을 지도 삼아 가는 건가.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가능해요. 저는 오히려 한국에서 길 찾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내비게이션을 켜도 어디가 어딘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다음해 떠난 갠지스 강 원정에서는 더욱 아찔한 일을 겪었다고 들었다.
맞아요. 제 목에 칼이 들어왔었죠. 여정의 막바지쯤 방글라데시 작은 어촌의 매표소에서 하룻밤을 묵었어요. 매표소 지킴이가 본인은 밖에서 자겠다고 하고 저와 일행을 재워줬죠. 그런데 한밤중에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운 거예요. 직감적으로 , 속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나.
몇 초 안 돼서 문이 뜯겼고, 복면을 쓰고 손전등을 든 현지 남성 네 명이 들어왔어요. 그중 한 명은 총을 들었고, 나머지 세 명은 칼을 들었는데 정말 섬뜩했어요. 저희를 위협하며 짐을 뒤지더라고요. 제 목에도 녹이 슨 차가운 칼이 느껴지는데 소리도 나오지 않았죠. 원정 막바지라 돈이 별로 없으니까 캠코더나 남은 지갑을 털어 가는데 갑자기 저희 일행 중 한 명이 반격해서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어요. 도망치는 무리를 저도 이성을 잃고 따라 쫓아나갔는데 밖에 기다리던 일행이 달아나며 총을 쏘더라고요. 다행히 맞진 않았죠.”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 후로 어떻게 됐나.
그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아침이 될 때까지 갈대숲에서 뜬눈으로 지샜어요.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다음 날, 밖에서 자겠다던 매표소 지킴이가 저희한테 어젯밤 괜찮았니?’라고 묻는 거예요. 눈빛을 보고 알았죠. 한통속이었다는 걸.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니 못 부르게 하더군요.”
 
-어떻게 빠져나왔나.
지나가던 버스의 도움을 받아 현지 경찰을 불렀어요. 결국 그들이 공범임이 밝혀졌죠. 대사관에 알리고 싶다고 하니 외교적인 문제로는 번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현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강 건너 큰 마을로 피했어요.”
 
-그 뒤로 원정은 계속 진행했나.
, 계속 그래 왔듯이 고무 카약을 타고 갠지스 강을 이동했어요. 그런데 이동 중 만난 한 무리가 돈은 얼마나 있니라며 수상쩍게 행동하는 거예요. 느낌이 안 좋아서 도망친 후 밤에 원정 목적지에 도달했죠. 그리고 보트 위에서 잠을 청하는데 서치라이트 불빛이 느껴지는 거예요. 알고 보니 낮에 만난 무리가 그동안 저희를 쫓아왔던 거였어요.”
 
-또다시 위험한 무리를 만난 건가.
끔찍했어요. 나무배를 타고 쫓아오는 그들의 추격을 피해 잡히는 끝이야라고 소리치며 무작정 노를 저었죠. 다행히 저희는 고무 카약이었고 조정 선수 출신도 있어서 속도는 빨랐어요. 다만 비가 쏟아지는 밤이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노를 무작정 젓다 보니 자칫하면 인도양으로 빠질 수 있었죠. 펑펑 울면서 노를 저었어요.”
 
-어떻게 됐나.
그들을 따돌렸다 싶을 때 GPS로 일출 시각을 확인하고 갈대숲에 네 시간 정도 숨어있었어요. 그리고 무사히 동이 트니까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밝아오는 태양을 배경으로 중앙대 깃발을 펼치고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지금 보면 한국인인지 현지인인지 모를 정도로 까맣게 탄 얼굴로.(웃음)”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일을 두 번이나 당하니 도저히 못 있을 것 같았죠. 방글라데시 한국 대사관에 찾아갔어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원래 위험한 지역이라 그렇다. 고생했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라는 반응이더라고요. 완전히 학을 떼고 귀국했죠.”
 
남영호 동문은 그 후로 2011 고비 사막, 2012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 2013 아라비안 엠티쿼터 사막과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 등을 줄곧 여행했다. 현재 세계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을 목표로 탐험 중이며 지난해 세계 최초로 치와와 사막 무동력 종단에 성공했다.
 
-현재 세계 최초로 세계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에 도전 중이다.
전 세계 탐험가 누구나 남들이 하지 못한 길을 개척하려는 욕심이 있을 거예요. 세계 최초라는 말이 식상할 법도 하지만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첫 번째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언제나 큰 의미가 있죠. 놀랍게도 사막은 그런 시도가 많지 않아 도전해보고 싶었고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왜 그럴까 고민해보니 산은 정상이 있지만 사막은 어디가 끝인지 너무도 막막하더라고요. ‘대체 어디서부터 얼마나 더 가야 끝이 날까싶은 사막만의 불명확한 확실성이 제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동안 많은 원정을 떠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정은 무엇인가.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묻는 것처럼 답하기 힘든 질문이네요.(웃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사막 중엔 아라비안 엠티쿼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세계에서 도보로 횡단한 사례가 없는 사막이죠. 일단 건너기 위해서는 아랍에미리트 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그곳을 성공적으로 횡단했나.
, 저희 팀이 아부다비 국왕의 허가를 받았죠. 그 과정에도 에피소드가 있어요. 허가를 앞두고 저희보다 일주일 전에 이곳을 건넜다고 하는 팀이 나타난 거예요. 알고 보니 그 팀은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막의 외곽을 걸었더라고요.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해외 뉴스에서 취재가 왔었어요. 두 팀이 서로 자기가 세계 최초로 엠티쿼터 사막을 건넜다고 하는데 상대 원정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그들을 잘 모르지만 그들 마음속의 사막이 그곳이라면 사막인 것이라고 말했어요. 다만 원정에 대해 얘기하자면 엠티쿼터 사막의 둘레길인 것 같다고 했죠. 결국 저희는 아부다비 국왕의 초대를 받아 공식으로 원정 허가를 받았죠. 원정하면서도 정말 멋있는 사막이었고 다시 가기 힘든 곳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아요.”
 
-사막 횡단은 주로 어떻게 이뤄지나.
하염없이 걷다가 해가 지면 바로 자는 거죠. 어두운 사막에서 하는 캠핑은 정말 황홀해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나.
별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아요. 맨눈으로 은하수가 보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똥별도 매우 많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자연이 주는 감동이 매우 커요. 감동적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오염을 일으킬만한 인공적인 물질이 없어서 걸을수록 정말 깨끗한 곳이라는 게 몸소 느껴지고요.”
 
-매일 똑같은 풍경이 지루하지는 않나.
그럴 것 같은데 참 묘하게도 그렇지 않아요. 매일 똑같이 보여도 조금씩 다른 구석이 있어요. 사구의 모양도 다 다르죠. 별 보양, 초승달 모양, 일자 모양 등 가지각색이에요. 지리적인 공부를 조금만 하면 사막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죠. 처음에는 신기해하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면 황홀경을 맛볼 수 있어요. 사막이 가진 텅 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죠.”
 
-사막의 매력은 무엇인가.
모래바람을 맞으면서도 계속 걸어가야 하니까 몸 자체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평화로워요. 눈에 거슬리는 게 없죠. 간판도 없고, 광고도 없는 세상이에요. 모든 잡다한 것에서 해방되니까 그 자체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사람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하고, 쓸데없이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잊게 해주는 것. 그게 사막의 가장 큰 매력이죠.”
 
-걸으면서 깨달음의 시간을 갖는 것인가.
걸음이 주는 정신적인 기쁨이 있어요. 사막을 걸으면서도 그동안 버리지 못한 잡념이나 매우 슬펐던 일들을 비워내며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죠.”
 
-계속 탐험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품어온 꿈을 직업으로 이루고 살아가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런 저를 믿고 후원해주는 분들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이고요. 이들에게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결국 나쁜 짓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하는 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거 말고는 할 게 없어요. 이미 경력 단절자라.(웃음)”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올해는 하나의 원정을 하되, 재밌게 해보자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사막 횡단했대, 그래? 대단하네라고 끝나는 건 재미없잖아요.(웃음) 그래서 탐험 경험을 바탕으로 신선한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해요. 우선 파타고니아와 칠레의 푼타아레나스, 마젤란 해협을 건너 세계최남단으로 향하는 3000km의 여정을 탐험 필름으로 만들어 아웃도어나 산악 분야에 특화된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탐험대가 본 파타고니아와 사진가가 본 원정대두 가지 시각으로 전시회를 열면 어떨까 해요.”
 
-탐험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서인가.
그렇죠. 지금껏 기존 탐험가들이 산악 중심으로 육체적으로만 활동한 것이 아쉬워요. 저는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탐험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해요. 궁극적으로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값진 콘텐츠가 되길 바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부터인가 멘토 열풍이 불면서 자꾸만 남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과연 누군가의 말을 듣고 오늘부터 바로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서간 선배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스스로가 가진 용기를 끄집어낼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해요. 후배들이 더욱 능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제게 모교 중앙대는 꿈을 꾸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즐거운 배움터이자 놀이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금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적인 모험가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다양한 경험을 하시고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대학생활을 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모교의 자부심을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