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싶었던 이십대 초반에 이성복의 시를 읽으며 절망을 배우고 우울을 배웠다. 눅진하게 깔려 있던 지독한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자주 넘어졌고 그때마다 멍이 들었다. “달아나면서 꿈꾸며 다리/앞에서 검문당하고 나는 돌아왔지만 내 꿈은 돌아오지/못하”(『소풍』)고 길을 잃었던 그 시절, 그의 시를 읽는 일은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인 동시에 그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한 줄기 빛이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봄은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이성복의 『1959년』을 처음 읽었을 때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맨 앞에 실려 있는 이 시는 1960년의 4·19를 호명하고 있었고, 동시에 1980년대의 독자들에겐 어김없이 1980년 5월의 봄을 환기하곤 했다. 이 시집의 초판이 나온 것이 1980년 10월이었다는 걸 상기할 필요도 있겠다.

  “복숭아나무는/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가는 병든 봄의 목록에 이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기억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놀라움도 우리를 무기력과 불감증으로부터/불러내지 못했”던 긴 시간을 지나서 우리는 더 깊은 무기력과 불감증에,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우울에 빠져 버렸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자진해”(『1959년』) 가는 이들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아픈 시절이다.

  “아들아 시를 쓰면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폭력이 없는 나라,/그곳에 조금씩 다가갔다”(『아들에게』)고 말하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을 들고 1990년 겨울 무렵 시를 쓰던 친구들과 남해 금산에 갔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나지막이 읊조리며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남해 금산』)었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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