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에서 내려와 세상의 이야기를 연주하다
  • 박현준 기자
  • 승인 2016.04.0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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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나운서 정슬기 동문(피아노과 09학번)

 

사진제공 정슬기 동문

꿈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이 옆에는 항상 어떤 길을 가라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혹은 저 길이 너의 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길은 온전히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MBC 아나운서에 합격한 정슬기 동문은 홀로 고민하고 선택한 길 위에서 당당히 목적지를 밟았다. 부러움을 한몸에 받기까지 그녀의 뚝심 있는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건반 앞을 떠나 나의 길을 찾다
  초등학교 시절 아침조회가 있는 날이면 피아노 솜씨가 뛰어난 학생들을 TV에 보여주곤 했다. 학교 TV에 나오고 싶었던 그녀는 동네 작은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건반에 손을 올렸다. 이 작은 계기를 시작으로 그녀는 재수까지 거쳐 피아노과에 진학했다. 이후 모든 나날은 연습의 연속이었다. 단 한 번의 시험을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연습에만 매달려야 했다. 결국 그녀는 건반 위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계를 냈어요. 과연 제가 피아노로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다른 길을 찾는데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피아노가 아니면 어떤 길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던 그녀는 건반을 치던 손에 책을 들었다. 책은 그녀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그녀에게 생소했던 언론의 세계를 깨우쳐 주었다. “소설 속 권순범 기자가 거대한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숨겨진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언론인의 역할에 관심을 두게 됐죠.”

  오로지 피아노 하나만을 바라보며 걸어 왔던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문학, 언론, 예술, 법 등 전공과 무관한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흥미를 찾았다. 그리고 직접 뮤지컬 공연을 해야 하는 교양수업을 들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을 깨달았다. “무대에 처음 올라봤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제가 남들 앞에 서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휴학 중 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통해 여러 분야를 두루 경험한 결과 그녀는 그토록 갈망하던 ‘꿈’을 찾았다. 다른 사람 앞에 서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것이다.

  좌절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아나운서라는 확고한 꿈을 찾고 언론고시에 뛰어들었지만 합격의 문은 바늘구멍처럼 좁았다. 지상파 방송사 중 KBS만 매년 신입을 뽑고 MBC와 SBS에서는 2~3년마다 한 번씩 공채가 있을 정도로 주어지는 기회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방송 3사를 통틀어 한해 10명이 채 안 되는 인원만이 최종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시’였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치열히 고민한 뒤 택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되는 안 되든 이제는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저는 하고 싶으면 반드시 해야 해요. 합격하든 못 하든 얻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그 후 그녀는 무턱대고 지원한 MBC 카메라 테스트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SBS에서는 운 좋게 3차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중앙대 언론고시반 언필제에 들어가 공부했고 아카데미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학교, 언필제, 아카데미 활동을 병행했으니까요. 한시도 쉴 틈이 없었죠.”

  이렇게 정신없이 준비하는 중에도 그녀는 시험이 있다면 방송사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응시했다. 그 결과 작은 방송사에서 꾸준히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이데일리TV에서 부동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TBS 교통방송에서 캐스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나운서가 아니라도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했어요. 지상파 방송사에 지원할 때까지 감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MBC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3년 8개월이 걸렸다.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최종시험에서만 8번이나 떨어졌다. 그때마다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좌절했고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합격해 떠날 때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좌절해 무너져도 절대로 포기하지는 않았다. “힘든 시간은 이기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예요. 4년 가까이 아슬아슬하게 버티다 보니 합격의 문이 열렸죠.”

  간신히 버티며 서 있던 그녀에게 드디어 올해 3월, 꿈에 그리던 MBC 공채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피아노 앞을 떠나 먼 길을 돌아온 도착지였다. 누구보다 불안했고, 흔들렸고, 막막했던 시간이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 걸어가다 보니 빛이 나타난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하늘의 별 따기라는 아나운서가 되는 과정은 크게 서류전형, 카메라테스트, 면접으로 이루어진다. 그녀는 면접을 잘 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이야기 5가지를 준비해서 3가지만 제대로 말해도 그 면접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분석이 필요한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죠.”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키워드 찾기’를 했다. 0세에서 19세까지, 20세에서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 이렇게 시기를 구분한 후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는 것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경험들, 학창시절을 바친 피아노,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진행했던 부동산 프로그램처럼 시기 별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모아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면접에서 면접관은 그가 하고 싶은 질문을 할 뿐 면접자가 원하는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키워드 찾기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는 면접에서 여러 질문을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의 전반이 담긴 키워드가 있으면 같은 맥락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할 수 있다. “보통 면접에서 자주 나오는 장점에 관한 질문은 매력, 차별성, 특징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같은 거예요. 제가 준비한 키워드는 이 네 가지와 모두 연결되는 거였죠.”

  그녀는 실제 면접에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는 여러 방송을 경험하면서 프로의식을 갖췄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해 음악방송을 잘할 수 있고, 부동산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에 부동산 관련 프로그램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프로그램 디제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직접 대본을 작성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나열한 장점은 모두 그녀의 인생 각 부분을 차지하는 키워드다. 그런 확실한 키워드가 있었기에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길 위에서 흔들리지 않기를
  멘사, 미스코리아 등 잘난 사람들 틈에서 그녀의 무기는 바로 ‘자신감’이었다. 합격 가능성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아나운서에 도전한 기저에는 그녀만의 ‘하고 싶은 건 한다’는 강단이 있었다. “저는 돈이 되든 안 되든 하고 싶으면 해야 해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죠. 너무 단순하지 않나요?(웃음) 한해 합격하는 아나운서의 수를 생각하면 사실 안 하는 게 맞거든요. 근데 저는 했어요. 하고 싶었으니까요.”


  뚝심 있게 노력한 결과 이제 MBC 아나운서로서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그녀는 ‘짧고 굵게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길게 활동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동기 중엔 저보다 더 주목받는 사람이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인기에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언론인을 꿈꾸며 달리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저는 잘나지도 않고 뭐 하나 뛰어난 부분도 없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오래 걸리기도 했죠.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좌절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어려운 길이지만 언론사를 준비하는 중앙대 후배들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하면 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버티고 버틴다면 꼭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Q&A]

Q.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가 많아요.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저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영화 감상이 취미였어요. 돈도 안 들고 힘도 안 들고 시간도 많이 안 드니까요.(웃음) 무엇보다 좋은 건 독서, 영화 감상, 뮤지컬 관람 등이 모두 언론고시에 필요한 교양이 되고 공부가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얻은 지식을 작문이나 면접에서 활용할 수 있거든요. 휴식을 취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죠.

Q. 아나운서는 호감 가는 외모도 중요한데 어떻게 관리하셨나요?

A. 호감을 주기 위해서는 표정이 가장 중요해요. 일상생활에서도 웃으면서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표정이 가장 예쁘게 보일지 연구했어요. 또 어떤 화장이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다양하게 시도했죠. 옷도 대여해서 다양하게 입어 보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 호감 있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Q.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스펙을 준비해야 할까요?

A. 스펙보다는 더 고차원적인 준비가 필요해요. 스펙 좋은 사람은 너무 많죠. 스펙에서 밀리는 제가 최종 합격까지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스펙보다는 방송을 위한 자질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방송사와 달리 KBS는 한국어능력시험과 토익 점수가 필요해요.

Q. 아나운서의 직업적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장점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 같아요. 방송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 게스트, 방송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볼 기회가 많으니까요. 단점은 많은 이들 앞에 서는 일을 하다 보니 말과 행동에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크게 질책받을 수 있다는 점이겠죠. 실수가 없도록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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