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가능성 보여준 위안부 운동
“위안부는 우리의 현재적 책임”

 
지난달 30일 303관(법학관)에서 중앙대 페미니스트&퀴어 공동체 ‘FUQ’가 주관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해결과 운동의 계승을 위해’ 강연이 진행됐다. 이날 강연자로 강단에 선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위안부 운동의 전개와 의의, 계승에 대해 설명했다.
 
  성애화된 조선의 여성들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상황 및 조선과 일본에 있던 가부장제와 관련이 있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들은 일본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당시 일본의 가부장제는 조선보다 심해 일본군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며 “또한 조선 여성을 강간함으로써 조선에게 패배감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해방 이후 약 40년 동안 위안부 문제는 공론화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나영 교수는 ▲냉전시대에 일본을 우호세력으로 삼고자 했던 미국의 의도 ▲오랫동안 이어졌던 독재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던 가부장제 등을 한국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침묵해왔던 이유로 제시했다.

  당사자로부터 시작된 ‘위안부’ 운동
  처음 위안부 피해 당사자가 나타난 것은 1991년 8월 14일에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여성 운동이 있었다.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운동을 페미니즘적인 움직임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여성학자들과 여성단체들은 가부장제, 성폭력, 성매매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연구했고 결국엔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이나영 교수는 “대표적으로 ‘한국교회여성연합회(교회연)’는 1970년대부터 한국의 기생관광 등을 고발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김학순 할머니를 찾아 최초의 위안부 공개 증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통해 한국에 있는 여러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또한 한국에서 위안부 생존자들이 나타나자 중국, 북한 등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은 국가의 위안부 생존자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연대도 함께 진행됐다. 정대협의 활동가들은 UN 인권위원회를 찾아가 위안부를 세계에 알렸고 아시아 각지의 피해국 여성들과의 연대를 꾀했다. 이나영 교수는 “1993년엔 피해국 여성들과의 연대체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해 현재까지 피해국 여성들과의 연대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부’를 통해 역사를 달리 보다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운동의 의의에 대해 식민주의를 직면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운동을 통해 사람들은 식민주의에 의해 자행된 역사적 부정의의 사실성을 직면했다”며 “이로써 일본군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공론도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위안부 운동이 역사와 기록에 대한 재사유를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위안부 운동은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로 ‘공식적’ 기록 위주의 역사에 맞선 움직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나영 교수에 따르면 가부장제, 승자 위주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그동안 ‘종속된 자(Subaltern)’였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은 서로 소통하며 공통된 경험을 모으고 이를 통해 다수의 대중을 공감시킴으로써 기록 위주의 역사에 대항했다. 이에 대해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운동은 ‘서브알턴’으로 존재하던 여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남성 위주로 기록된 역사에 대항해 여성의 경험으로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다”고 말했다.
 
  ‘위안부’는 우리의 책임이다
  이나영 교수는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청중에게 던지며 위안부 문제를 “우리의 현재적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위안부라는 과거의 역사적 부정의는 환원될 수 없으므로 과거의 부정의를 직면한 현재의 우리가 다시는 부정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우리에겐 과거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와 관련된 책임, 현재의 부정의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책임이 함께 존재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운동은 정확히 알기 위해 당사자를 만나고 운동에 개입하기를 당부했다.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은 쉽지만 직접 개입하고 분노하는 것은 어렵다”며 “하지만 당사자들을 만나며 위안부 문제의 깊숙한 맥락을 살피다보면 위안부 운동에 대해 가졌던 편견도 깨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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