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 더해지는 영광의 이정표 100주년
  • 중대신문
  • 승인 2016.03.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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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는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고 지치고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가서 기억을 떠올리고 나눌 수 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모교는 2년 후 자랑스러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도 크겠지만 중앙대의 지난 100년을 거슬러 살펴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 묻어있는 그 역사의 흔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중앙대는 1918년 일제 강점기에 인재 양성만이 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구국임을 인식하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중앙유치원을 설립한 것에서 출발한다. 중앙유치원은 이후 사범과를 설치하여 보육교사 양성까지 기능을 확대하게 되고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1933년 승당 임영신 박사께서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하면서 지금 중앙대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일제의 국어탄압정책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생을 위한 노래 발표 등은 국어사용이 허용되었으므로 중앙보육학교의 음악 활동은 일종의 애국운동이기도 하였다.’ 중앙대의 전신인 중앙보육학교를 기술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의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에 임영신 박사가 옥고를 치르면서도 민족 교육의 이념을 놓지 않았던 중앙대의 역사는 값지다.
 
  돌이켜보면 중앙대의 100년 역사는 근대 고등교육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유치원 교육뿐만 아니라 교사 양성으로 고등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고 해방 후 고등교육의 수요가 커지면서 대학의 체계를 갖추며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중앙대의 노력과 열정은 한국전쟁 중에도 전북 이리와 부산 송도에 분교를 설치하여 교육을 이어갔다.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중앙대는 끊임없이 도전정신으로 무장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하는 데에 기여하는 훌륭한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그 결과 나라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한 25만 명이 넘는 동문들은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있고 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인재로 활약하며 모교를 빛내고 있다.
때문에 중앙대의 개교 100주년은 단순히 100년의 나이를 자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지난 100년의 영광을 감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100주년기념사업의 진정한 목표는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 위에 세계적인 명문대 반열이라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장을 여는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경구처럼 100주년기념사업단에서는 두 번째 100년의 출발점에 선 만큼 긴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몇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구성원과 함께 든든한 동문의 애정 어린 손길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중앙대의 교수님, 직원 선생님, 학생들과 25만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간절히 구해본다.

  ‘100주년’이란 영광스러운 이정표, 새로운 100년을 바라보면 책임감이 더 커진다.
 
박상규
100주년 기념사업단장
(응용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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