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한 지 30년이 되어도 매 학기 강의 준비를 할 때면 언제나 막연한 걱정과 불안함을 느낀다. 강의가 적절한지 새롭게 바꿀 것이 있는지 걱정을 하다가도 학생들이 이것은 꼭 알아둬야 하는데 하는 고민 끝에 결국 예년과 비슷한 강의를 하게 된다. 다행히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수학이어서 수백 년 전에 연구된 내용이 아직도 학문의 중요한 기본이고 적어도 지금의 내용이 틀렸다고 부정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요즘은 무엇이든지 혁신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외쳐대는 시대다. 과거의 것은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진취적인 기상이 넘치고 있는 이 세태에서 나의 이러한 소심함은 그저 무능함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력감 속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여태 살아오면서 우리의 후진적인 제도와 행태를 다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항시 들어왔고 그것을 당연히 수긍해 왔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그것의 폐해는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격한 토론을 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예를 들어 지난 수십 년 매번 우리 교육의 적폐를 말하면서 끝없이 제도를 바꾸어 왔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우리의 제도가 가진 장점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또한 최근 십여 년 동안 우리의 대학들도 폐쇄적이고 후진적이라고 항상 개혁의 대상이 되어서 학과 통폐합, 영어강의와 상대평가의 도입 등 참 바쁘게도 변해왔다. 이제 이러한 변화가 학생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는지 혹시 과거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점 중에 놓쳐 버린 것이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찌 되었건 후진적이라고 고치려고만 하던 과거의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만한 성과를 일구어냈다면 계속해서 버리려고만 안달했던 구태 중에도 쓸 만한 것이 꽤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지금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삶의 무게에 더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끊임없는 개혁의 외침 속에 묻혀 놓쳐버린 무언가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이제는 모든 것을 싹 바꾸겠다는 거창한 개혁보다 이것은 안 된다고 하는 작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찾아 뿌리 뽑고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힘이 될 방법들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개선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오래전에 본 해외 언론의 기사가 생각난다. 당시 한국의 교육제도는 엉망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었는데 그 외국인 교육전문가는 ‘한국의 교육제도는 현대뿐만이 아니라 역사 전반을 통하여도 드물게 보는 훌륭한 모범이다’라며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신분의 수직이동을 이렇게 활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고 극찬하고 있었다.
 
  무수한 개혁으로 공교육의 이러한 역할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대신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지 자문해 본다. 집안이 더럽고 냄새가 난다면 우선 청소를 해야지 집을 뜯어고칠 생각부터 할 일은 아니다.
 
신해용 교수
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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