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ere Aude. ‘감히 알고자 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계몽의 모토이기도 하다. 1784년 발표한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그는 일반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사람의 지도에 의존하며 자신의 이성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상태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칸트가 이러한 미성숙한 상태를 경계했던 이유는 당시 일반 대중들이 자신의 주관대로 사고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이 이끄는 대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서 그들이 주체성을 잃고 새로운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모든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하는 결단력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주장은 문화를 바라보는 측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고 전달받은 모든 행동 양식의 총체가 바로 문화다. 따라서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문화를 포함한 전반적인 문화에 대해 감히 알고자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문화를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수용하기만 해선 결국 길들여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칸트를 통해 바라본 현재 20대의 문화는 어떠할까. 우리는 각종 SNS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화장품에 혹하기도 하며 올봄에 유행한다는 컬러의 옷을 사기도 한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과 아름답기로 유명한 여행지를 다룬 게시글엔 친구들을 태그하며 함께 가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트렌드이기에 혹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20대의 일상으로 당연시 여긴다. 

  그러나 그 당연함의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문화 현상에 편승하고 있는 수동성이 자리하고 있다. 칸트가 제시한 계몽의 모토를 되새길 필요가 있는 시점인 것이다. 계몽하기 위해선 자신이 계몽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단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당연한 문화를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과연 제3자가 보더라도 그 문화가 당연한 것일지 말이다.

  ‘낯설게 보기’는 그 누구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다. 이미 하나의 문화 현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존의 다양한 관점을 고찰하고 한 문화 현상을 다방면으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결국 각각의 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결단력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트렌드와 문화 현상이 쏟아지다시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로 온전히 살아남기 위하여 우리는 감히 알고자 하며 미성숙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이성을 온전히 사용하며 각자의 관점을 찾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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