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발터 벤야민의 모든 투쟁과 사상의 무대였다. 류신 교수는 벤야민의 궤적을 되짚으며 그의 사상에 서사를 첨부했다.

2016 중앙 게르마니아 ‘프랑크푸르트학파 다시 읽기’


자본주의의 내밀한 메커니즘을
미시적으로 추적한 산책자


“정확하게 이미지로 표상하는 일이 없이
건전한 의지란 있을 수 없다.”

 
올해로 17주년을 맞이한 2016년 게르마니아의 막이 올랐다. 올해의 주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다시 읽기’로 그 첫 번째 주자는 발터 벤야민이다. 강연자로는 발터 벤야민의 시각으로 21세기의 서울의 모습을 분석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저자, 류신 교수(독일어문학전공)가 맡았다. 그는 발터 벤야민의 궤적을 좇으며 미완의 작품인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파사주(통로)’ 속으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파리의 산책자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은 십여년간 집필해오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를 1940년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조르주 바타유에게 맡기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발테 벤야민은 유복한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나치의 침공을 직면한 파리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스페인의 포르부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벤야민 사후 40년이 지난 1980년,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는 파리 국립중앙도서관 문서고에서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발견됐다. 그리고 1982년 롤프 티데만은 최초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망명길에 오를 때 가지고 갈 수도 없을 만큼 방대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 벤야민은 그 방대한 글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발터 벤야민이 19세기 유아기적 자본주의의 수도였던 파리의 단상을 분석한 원고의 모음집이다. 발터 벤야민은 나치가 집권한 독일을 떠나 1933년 파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를 집필해나갔다. 당시 파리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이미 만연하던 곳이었다.
 
  벤야민은 1933년 나치가 득세한 독일을 떠나 1940년 5월 미국 망명길에 오르기 전까지 파리에서 체류했다. 파리에서 있었던 약 7년의 시간동안 벤야민은 파리 국립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19세기 파리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파리의 패션, 거리, 풍속, 신문기사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벤야민은 스스로 19세기 파리를 걷는 ‘산책자(flaneur)’가 돼 파리의 미시적인 역사를 세세하게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20세기 소비의 중심지로 부상한 백화점에 밀려 몰락해버린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만났다.

  아케이드는 욕망의 전시장이다
  아케이드는 열주(列柱)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군(群)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 공간을 뜻한다. 아케이드는 그동안 중세의 교회 건축, 사원의 회랑 등에 사용됨으로써 특권층의 권위의식과 종교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벤야민은 일찍이 ‘실내이면서 실외’인 아케이드의 이중성에 주목했다. 아케이드에는 실내와 실외가 상호 침투해 아케이드를 걷는 사람은 공공영역에 있으면서 사적공간에 있는 것 같은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 이중성은 그러므로 아케이드가 사람들이 더 편하게 공적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아케이드를 상품 판매의 수단으로 탈바꿈시켰다. 철골 구조물로 된 외벽에 유리지붕을 놓은 아케이드 시장을 만듦으로써 소비자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전시된 상품을 구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아케이드는 19세 초부터 파리에 등장해 어느새 부르주아들이 사치품을 거래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 안에서 벤야민이 주목했던 이중성은 사라지고 소비자가 산책과 동시에 쇼핑을 즐기는 장소로 기능하는 이중성만이 남은 것이다.
 
  판타스마고리아, 깊은 잠에 빠진 군중들
  벤야민은 유럽 열강들이 자국의 우수성을 자랑하려 개최한 만국박람회에서도 상품을 위한 도시가 된 파리의 모습을 포착했다. 만국박람회 또한 아케이드와 다를 바 없는 상품의 전시장이었던 것이다. 박람회에 참석한 군중들은 전 세계에서 들여와 박람회장을 가득 채우던 온갖 상품과 상품을 미화하기 위한 조명, 오락거리 등에 도취됐다.
 
  특히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상품을 비추고 있는 화려한 조명(환등상;판타스마고리아)이었다. 이를 두고 벤야민은 상품 자본주의가 군중을 상품의 늪으로 유혹하는 방식이라 봤다. 환등상은 상품을 미화해 소비자를 도취 상태에 빠뜨리는 자본주의의 전술로 변모했고 자본주의와 상품에 대한 환상을 군중에게 주입했다.
 
  또한 환등상의 이면에는 군중을 자유로의 욕망에서 배제하려는 기만이 숨어있었다. 19세기 초 프랑스는 정치적 후퇴기였다. 프랑스 대혁명, 2월 혁명 등을 지났지만 왕정으로 복고된 프랑스에선 자유의 물결은 사라지고 왕정 세력의 폭정만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이때 소비 위주의 도시 구조는 군중을 상품에 대한 집단적인 도취 상태에 이르게 해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이었다. 벤야민이 파리의 19세기 초를 ‘집단이 수면에 빠진 시대’라고 말한 이유다.
 
  집단의 꿈에서 깨어나기
  그러나 군중이 환등상의 기만에 지배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군중이 환등상을 극복한 대표적인 예다. 1850년대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을 고용해 파리의 개조를 지시했다. 이는 파리의 기능을 외적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는 것에서 내부의 적으로부터 권력을 보호하는 것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2월 혁명 등을 겪어온 권력층은 군중들이 시가전을 벌이지 못하고 바리케이드를 세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로 인해 구불구불한 도로는 대부분 사라졌고 파리는 넓은 일직선 도로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파리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최초의 사회주의 노동자 정부인 파리 코뮌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군중이 스스로 ‘집단의 꿈’에서 깨어나 야만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비록 파리 코뮌은 설립된 지 3개월도 안 돼 무너졌지만 벤야민은 엄혹한 시대 속에서도 자유와 희망을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환등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20세기 초반에 살았던 벤야민에겐 절실한 가치였다. 나치의 위협으로 인한 망명 생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인 독일로 돌아가지 못한 슬픔, 하루하루 나치 이데올로기에 잠식돼 가는 조국을 목도해야만 했던 삶이었기 더욱 그렇다. 때문에 벤야민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나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를 벤야민은 ‘사유이미지(Denkbil-der)’에서 찾았다. 사유이미지는 이미지라는 감각성과 사유라는 추상성의 결합으로 이뤄진 벤야민의 표현 양식이다. 벤야민은 자신이 포착한 이미지를 응결시켜 사유했고 이를 알레고리적 글쓰기로 풀어냈다. 사유이미지를 통해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도취의 이미지들을 해체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벤야민은 세상을 향한 사유이미지의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물 중의 하나가 『아케이드 프로젝트』다. 벤야민은 거대한 도시를 상대로 절대 완성할 수 없는 미완의 사유이미지를 켜켜이 쌓은 것이다. 비록 그는 죽기 전 세상에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를 내놓지 못했지만 그의 글에는 물신이 떠도는 파리의 민낯, 상품 자본주의가 풍기는 현혹의 이미지, 그리고 이에 대한 벤야민의 양가적 감정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19세기 파리의 산책자였던 벤야민이 21세기의 서울을 관찰한다면 어떠한 사유이미지들이 포착될까. 서울은 아케이드의 복합지다. 각종 멀티플렉스, 쇼핑센터와 상가들은 이미 서울을 장악했다. 서울의 군중들은 오늘도 서울 곳곳에 위치한 상품 물신들을 소비하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잊는다.
 
  아케이드는 이미 서울 군중들의 일상지다. 그렇다면 집단의 꿈에서 깨어날 단초도 아케이드에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벤야민을 불러와야 한다. 아케이드에 숨어있는 사유이미지를 포착하려는 노력은 상품 소비 공간으로 전유된 서울의 내밀한 민낯을 마주할 수 있는 길이다. 만약 이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집단의 꿈에 갇혀 수면 상태에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담긴 이 구절처럼 말이다. “파리의 모든 거리를 유리지붕으로 덮으려 한다고 들었어. 그렇게 하면 아름다운 온실이 되겠지. 그러면 우리는 그 안에서 멜론처럼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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