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사라지면 기억은 뿌리를 잃고 만다. 추억이 깃든 장소에 들렀던 경험을 환기해 보자.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이 스며있는 장소에 또 다른 자신이 있었음을 깨닫곤 할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공간은 남아 기억의 저장소가 된다. 
 
  그리고 2016년의 봄, 흑석동 재개발을 보며 ‘공간을 기억하지 않는 문화’에 아쉬움을 느낀다. 106관(제2의학관)과 205관(학생회관) 사이에서 흑석동을 바라보면 커다란 공간이 폐허로 변해 있다. 이곳은 흑석8구역으로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한때 중앙대 학생들의 자취방이 밀집하던 곳이었다. 나도 대학 시절 그곳에 있는 벗들의 자취방에서 숱한 밤들을 술 마시고 토론하며 지새웠었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길 기다리고 있는 그 공간을 보면 내 젊은 시절의 한때가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라진 공간을 보며 기억마저 강탈당한 상실감에 슬퍼진다. 
 
  흑석역 주변의 재개발을 바라보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흑석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노량진 쪽으로 향하는 공간이 파괴돼 있다. 그곳은 오랫동안 중앙인들의 안식처였던 곳이다. 학생들에게는 ‘먹자골목’으로 불렸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중대 먹자골목’ 혹은 ‘흑석동 돼지갈비 골목’으로 알려졌었다. 그 먹자골목 술집 다락방에서 1980년대 학번들은 레지스탕스처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고 목청껏 ‘쟁가(운동권가요)’를 부르곤 했다. 경찰들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던 먹자골목은 학생들의 해방구였다. 나는 흑석동 먹자골목이 폐허로 변한 풍경 속에서 과거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절실히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이 흘러 공간이 변화하는 것은 순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간이 기억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문화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형성하도록 돕는다.나는 ‘공간을 기억함으로써 기억의 소중함을 전시’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흑석동에 조그만 ‘흑석동 역사문화관’이 생겼으면 좋겠다. ‘시간과 공간’이 ‘기억과 재현’으로 어우러짐으로써 흑석동 주민들과 중앙대 구성원들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공간을 기억하는 문화’는 흑석동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중앙대에도 절실하다. 오는 7월이면 310관(100주년 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이 들어서고 학생회관과 206관(학생문화관)이 철거된다. 중앙대 100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거대한 공간재편이다. 우리는 캠퍼스에 소중한 기억을 새겨 넣은 중앙인들을 위해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준비를 하고 있는가? 흑석동 캠퍼스의 옛 모습을 양각한 기념 조형물을 계획한다든지 100주년 기념관에 ‘중앙대 역사문화관’을 배치함으로써 전통을 돋보이게 하는 문화를 창조했으면 한다. 100주년 기념관이라는 새로운 공간의 웅장함만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공간을 기억하는 문화’를 위한 배려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기억의 품격이다.
오창은 교수
교양학부대학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