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우 전 문화관광부 차관(행정학과 77학번)
  • 신예솔 기자
  • 승인 2016.03.20 2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에 푹 빠진 행정가, 대한민국 문화산업을 이끌다
 

‘문화의 품격은 단순히 돈을 들여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없다.’ 말하는 박양우 동문(행정학과 77학번)은 인터뷰 내내 예의를 잃지 않았다. 국내 예술경영분야 유학 1세대이자 뉴욕대사관 한국문화원장과 제12대 문화관광부 차관, 한국예술경영학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자타공인 문화예술계 전문가다. 어느덧 25년, 대한민국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 반평생이 넘게 바쁘게 달려온 박양우 동문을 만나보았다.

 
세상 모든 것이 문화
예술을 중심에 놓으면
문화가 보인다
 
문화는 축적의 산물
배려와 포용은
문화관광을 이끄는 힘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박양우 동문은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 있게 상대를 배려했다. 이른 나이에 공직의 길에 들어선 뒤 약 25년간 문화관광분야에 몸담아온 그는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이자 오는 9월 개최를 앞둔 ‘2016 광주 비엔날레’의 대표이사를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를 만나 비엔날레 준비 소식과 문화관광부 차관 재직 시절, 그리고 한국 예술경영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지난 2일 ‘2016 제11회 광주 비엔날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준비가 한창인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오는 9월 개최를 앞둔 광주 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어요. 좋은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재정적,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CEO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광주 비엔날레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경영과 전시 진행을 총괄하고 있어요.”
 
  -2016 광주 비엔날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준다면.
  “아시다시피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미술 전시회에요. 올해로 11회를 맞은 광주 비엔날레는 지난해 미국 미술 전문매체인 아트넷에서 세계 5대 비엔날레로 꼽을 만큼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전시고요. 이번 전시는 ‘이 시대의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미술사를 선도할만한 영향력과 파급력을 갖춘 작품들이 등장하는 실험적인 현대 미술의 장이 될 겁니다.”
 
  -어떤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와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신선한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신인 작가들과 기성 작가들이 어우러져 주제와 어울리는 새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일 겁니다.”
 
평범한 농촌 마을, 6남매 중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귀염둥이였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순한 아들이던 그는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이라 불리는 고시 합격자로서 공직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장차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을 아우르는 문화계 인사가 된다.
 
  -중앙대 재학 중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른 나이부터 고시에 뜻을 둔 배경은.
  “어릴 적 아버지께서 아들 중 누군가 공직에 들어서길 바라셨어요. 당시 많은 집이 그러하듯 집안 형편상 제 누이들은 대학에 가기 힘든 상황이었고 특히 제게 기대를 거셨죠. 저도 고등학생 때부터 공직에서 일하는 생각을 했던 터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어서 고시에 합격하고 싶었어요. 다행히도 대학교 3학년 때 합격할 수 있었죠.”
 
  -고시의 길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건가.
  “그렇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연히 고시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입학한 후로 줄곧 고시 공부에 전념했죠.”
 
  -모범적인 대학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스스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른바 ‘범생이’였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입생 때부터 장학생으로 선발되며 고시반 생활을 시작했어요. 고시 준비를 결심한 이상 다른 활동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죠. 고시반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 학습 태도나 출석도 확인하곤 했고요. 모범생이 될 수밖에요.(웃음)”
 
  -한창 하고픈 게 많은 나이였을 텐데.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동안 동아리 활동과 연애를 못 해본 것이 참 아쉬워요.(웃음) 흥미 있는 동아리 활동도 하고 다른 학과 학생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더라면 아마 지금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죠.”
 
23살에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문화관광부 관광국장, 뉴욕대사관 한국문화원장 등을 거쳐 지난 2006년 8월 노무현 정부 시절 제12대 문화관광부 차관에 이르기까지 문화관광부 공직자로서 약 25년간 마음껏 기량을 펼쳤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엔 모교로 돌아와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에 들어선 후 오랜 시간 문화관광부에 몸담았다. 그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 한 선생님께서는 제게 미대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죠. 그때 아버지께 그 말을 꺼냈다가 크게 혼났죠. 미대에 가서 뭐하며 먹고살 거냐고요. 결국 저는 미대가 아닌 법대에 진학해 고시를 준비했지만 한편으로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던 것 같아요.”
 
  -문화관광부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1998년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90년대 초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이미 알 수 있었죠.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할수록 문화관광산업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할 거라고 예상해 문화관광부를 선택하게 됐어요.”
 
  -문화관광부 관광국장으로 활동할 당시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관광국장 시절 우리나라 정부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죠. 지난 2000년도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중국인의 단체 관광이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그해 중국 정부와 협정을 맺고 다음 해인 2001년도부터는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됐죠. 지금 한국에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규모는 엄청난 만큼 잘한 일이라 생각해요.”
 
  -오랜 공직 생활 중 특히 보람 있는 일이 있다면.
  “많은 일을 했지만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 가장 보람차요. 크게 일반 콘텐츠, 게임, 방송으로 나뉘어 있던 산업부서를 하나의 콘텐츠 기관으로 통합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죠. 그 후 각 분야의 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라는 기관이 생겼어요. 당시 문화산업 현장을 둘러볼 때 게임업계를 가장 먼저 찾아갈 정도로 영화, 게임 등의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을 이끌 핵심 분야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영상산업협회장과 영화배급협회장 등을 두루 맡기도 했다.
  “그 분야에 애정을 갖고 활동하다 보니 그런 기회들이 주어졌죠.(웃음) 한국게임산업협회장 제의는 중앙대 대외연구부총장을 맡게 되면서 아쉽게도 거절했어요. 그간 예술경영분야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 문화산업정책에 이바지하게 되어 자부심을 느끼고 있죠.”
 
  -공직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꼽는다면.
  “공익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자신의 사리사욕보다도 매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청렴은 기본이고요. 그만한 사명감을 가질 수 없다면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나아요. 국가에 대한 애정 없이는 아마 진정한 보람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공직자로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외국에 나가면 택시를 타보곤 해요. 택시를 타면 외국인에 대한 그 도시의 개방성과 친절함을 가늠해볼 수 있죠.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제도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와 포용심이 있는 문화가 중요해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마음가짐이 곧 그 나라의 문화적 자원이자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게 되죠.” 영국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 그는 예술경영분야 유학 1세대로서 중앙대 부총장과 한국예술경영학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2008년 임기를 마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행정학과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몸담은 전문 분야인 예술경영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졸업생으로서 모교에 진 빚을 드디어 갚게 된 거죠.”
 
  -예술경영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예술(Art)을 경영(manage-ment)하는 거예요. 문화경영이라고도 하죠. 일반 경영과의 차이점은 문화적인 요소를 재료 삼아 기획, 제작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죠. 초창기에는 음악 공연, 미술품 전시 등에 머물렀지만 요즘은 캐릭터, 게임, 각종 축제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인 요소가 다양해졌어요.”
 
  -예술경영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콘텐츠가 좋아야 해요. 엉성한 콘텐츠라도 마케팅을 잘하면 사람들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융합학문으로서 문화콘텐츠 분야가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맞아요. 문화콘텐츠산업이 떠오르며 많은 대학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하지만 예술보다 기술에 편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어요. 물론 발전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지만 기술자(technician)가 곧 아티스트(artist)는 아니니까요.”
 
  -아이디어가 우선이라는 건가.
  “물론 ‘기술이 먼저냐, 아이디어가 먼저냐’에 대한 가치 판단은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는 ‘가치 사슬’이에요. 하지만 백남준 선생이 아티스트인지 테크니션인지 살펴보면 그는 누가 봐도 아티스트죠. 아티스트를 소홀히 여긴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어요.”
 
  -좋은 문화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뒷받침 되어야 하나.
  “뛰어난 창의력과 문화콘텐츠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콘텐츠를 위한 문화적인 요소는 곳곳에 널려 있죠. 이를 가치 있게 기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적인 기획자가 필요해요.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는 문화콘텐츠 기술, 정보통신 기술 등과 접목되어 훨씬 높은 부가가치의 콘텐츠로 탄생하죠. 스마트 시대에 진정한 융·복합을 이루기 위해 이 두 능력을 강화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해요.”
 
공직에 들어선 지 30년 즈음 두 가지 인생 계획을 세웠어요. 하나는 시골 중학교 교장이 되어 실력과 인품을 갖춘 선생님들과 함께 좋은 교육을 실천하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제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도움이 필요한 곳을 다니며 봉사의 삶을 사는 거죠.
 
  -오랫동안 문화예술분야에 몸담은 경험자로서 한국 문화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동성이라고 봐요. 각국의 인기를 끄는 K-pop도 우리나라의 전통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역동적이고 활기찬 ‘흥’의 기질은 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이죠.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이 없어요. 한국인의 DNA라 할 수 있는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문화가 가장 큰 강점이에요.”
 
  -오늘날 한국의 예술경영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은 연간 100조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어요. 98년 김대중 정부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제가 문화관광부 차관으로 재직할 당시 세계 8위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됐죠. 오늘날 문화산업은 정부가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정책 분야가 됐어요.”
 
  -그럼에도 우리나라 문화산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화콘텐츠 활성화를 위한 융합 방향이 기술에 편중된 것 같아 아쉬워요. 갈수록 예술의 본래 기능과 목적이 자본주의 논리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요. 문화산업은 문화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이익을 내는 것이지만 예술이 목적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해요. 예술의 본질보다도 돈을 추구하는 행태가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 같진 않아 안타깝네요”
 
  -그런 의미에서 개최를 앞둔 2016 광주 비엔날레는 어떤 점을 지향하나.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예술을 무대의 중심에 두고자 합니다. 자본화된 세상에서 가려졌던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예술을 통해 평화, 인권, 민주 등 광주 지역의 정신을 알려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전시가 아닌 지역사회를 잇는 매개체의 역할이죠.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메시지가 담긴 전시를 만들고자 해요.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제게 중앙대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입니다. 고시 공부에 매진하던 제 젊은 시절의 보금자리이자 미래를 향한 열정이 어려 있는 곳이죠. 공직에서 물러난 뒤 예술대학원 교수로서 까마득한 후배들을 가르치며 제 젊은 날을 추억하기도 합니다.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러 캠퍼스의 풍경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에요. 모교를 떠올리면 늘 든든하고 자랑스러워요.”
 

 

 

▲ 지난 2일 박양우 동문은 2016 광주 비엔날레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 광주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만난 박양우 대표이사(좌)와 한국미술협회 광주광역시 나상옥 회장(우).

 

 

▲ 지난해 6월 박양우 대표이사는 스웨덴 스톡홀롬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리아 린드를 2016 광주 비엔날레 전시기획자로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