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한국의 천재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세돌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결과는 알파고의 불계승이었다. 5개월 전 알파고와 대국했던 아마추어 기사는 그가 감정의 기복이 전혀 없어서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했다. 마치 아무 반응이 없는 거대한 벽 앞에 선 느낌이었을 것이다. 냉철한 이성, 바로 이 점이 알파고의 장점일 것이다. 

   영화 <모뉴먼츠 맨>은 2차 대전 당시 포화로부터 인류의 문화유산인 예술작품을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문화유산이 귀중한가? 사람의 목숨이 귀중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모뉴먼츠 맨은 포병장교에게 예술작품이 파괴될 수 있으니 포격을 삼가라고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유는 포격 없이 진군했다가는 더 많은 아군 병사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고 전쟁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아마 이세돌과 대국한 인공지능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조금 다른 답을 제시한다. 

   모든 예술작품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정점에 이르는 소위 ‘시적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중간에 나이 많은 대원 하나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린 자녀들이 보낸 음악-그들이 직접 부른 노래-을 듣는 장면과 팀의 대장인 주인공이 총에 맞은 병사 하나를 구하여 병원에 데려오는 장면이 교차하는 시퀀스가 있다. 이 시퀀스는 손주들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병사의 생사를 걱정하는 인물들의 정지 화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이 시적 순간을 통해 ‘가족의 노래’와 ‘병사의 생명’을 한 덩어리로 묶고, 이를 통해 가족의 노래가 가족에 대한 기억이자 문화유산은 인류의 기억이며 문화유산을 구하는 것은 결국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과 같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직관의 문제이다. 영화는 문화유산이냐 목숨이냐라는 이분법적 갈등이 논리적 분석으로가 아니라 고양된 감정 속에서 단번에, 그것도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를 통합하며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국을 통해 알파고가 수읽기뿐만 아니라 종합적으로 판세를 해석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실수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수 후에도 감정적으로 전혀 동요가 없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미래학자들은 이런 냉철한 이성을 지닌,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곧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관건은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방향일까? 인공지능이 감정을 소유하게 되고 그러면서 직관적인 판단도 하게 되는 것이 그 방향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감정이 때론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감정을 소유함에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세련되게 하고 품위 있게 하는 인문학과 예술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명수 교수
프랑스어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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