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중대신문을 읽고’에 글을 쓰는 두 번째 학기다. 개인적으로는 졸업학기인 데다 두 번째 학기의 첫 기고이니 좀 다른 얘기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바로 이 지면 ‘중대신문을 읽고’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이 지면은 독자들이 중대신문을 평가하는 지면이다. 보통 ‘옴부즈만’이라고 부른다.

  기자에게 이런 지면이 달가울 리 없다. 외부인이, 때로는 언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람이 중대신문은 이래야 하며 언론은 저래야 하며 떠들어대는 게 듣기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중대신문이 이 지면에 보이는 태도는 존중받을 만하다.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편집부가 원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논란이 된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뿐인지도. 혹시 듣겠다, 하지만 흘려 듣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매주 중대신문을 챙겨보는 내 기억에 따르면 이 지면에 가장 많이 실린 비판은 기계적 중립을 탈피하고 중대신문만의 관점을 보여 달라는 것. 나도 그와 같은 내용의 글을 몇 번 썼으며 ‘중대신문을 읽고’에는 심심찮게 기계적 중립에 대한 개선 요구가 제기되어 왔다. 심지어 이번학기 개강호와 1866호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같은 내용이 꾸준히 실린다는 것은 중대신문이 중대신문을 읽고에 제기되는 주장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가장 열성적인 독자들이 꾸준히 같은 비판을 하는데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이 지면은 대체 왜 있는가? 지면 때우기 밖에 안 될 이 지면을 없애고 다른 칼럼을 싣거나 아니면 그 주장을 수용할 수 없는 까닭을 공식적으로 밝힐 일이다.

  중대신문으로서는 변화하고 있다며 이런 주장에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대신문은 공적 매체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 노력을 알아차리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중대신문에 있다. 독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라.

강남규 학생
정치국제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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