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라는 수사가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이지만, 여전히 그런 수사를 바탕으로 하는 학술행사가 열리는 것을 보면 아직 유효기간이 남은 듯하다. 이런 학술 행사 대부분은 19세기말에 20세기를 전망하는 듯한 식상함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나마 우리의 인식과 관심을 다음 세기 언저리에 갖다 놓는 소수의 학술 행사가 있어 ‘새 세기 담론’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

이번 13일에 한국정치연구회(회장:정영태 인하대 교수)가 주최한 학술대회가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학술대회는 “20세기 전환의 물결과 21세기 한국 사회 대안의 길”라는 총 주제를 4가지 세부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본 학술대회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제3의 길’이라는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것을 접근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제3의 길’을 다루는 글들은 ‘바지입은 대처리즘’(홉스봄)등의 수사에만 기대어 비판의 편협성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국적 적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의 수용만을 강변하는 사대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는 외래 이론을 살피는 데 유효한 원근법을 제공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1부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의 사례분석을 통해 ‘제3의 길’이 나아가는 궤적의 현재진행형을 보여준다. 뒤이어 2부에서는 아시아국가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으며, 아시아적 가치가 어떻게 생성·표명되었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접근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분석과 김대중정부를 분석한 3부와 4부 종합토론을 통해 21세기 한국정치의 나아갈 길에 대한 윤곽을 살펴보게 하였다. 각기 개별적인 논문으로 접했더라면 자칫 식상할 뻔했던 이야기들을 외부에서 안으로, 추상에서 구체적 상황으로 진행한 논문 구성을 통해 오히려 각각의 글들이 말하고자하는 것이 유기성을 띨 수 있었던 것이다.

서유럽에서 현재 진행중인 ‘제3의 길’은 어떤 모습일까. “복지정책을 통해 본 ‘제3의 길:영국 블레어 정부의 경우”를 통해 김영순 연구위원은 영국에서 진행중인 신노동당의 실험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그녀는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정치적·경제적 비용을 고려해 구상한 ‘일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이 직업훈련에 기초한 적극적인 노동정책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실업자 재취업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와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런 초라한 제3의 길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적극적인 시선은 노대명 연구위원의 프랑스분석에서 얻어질 수 있다. 그는 “제3의 길과 프랑스 좌파의 정치적 선택”이라는 글을 통해 영국과는 차별적인 제3의 길을 보여주는 프랑스의 제3의 길이 사실상 프랑스 내부의 폭넓은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해서 얻어진 정치적 선택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프랑스 내부의 사회적 연대라는 질서가 무너질 경우 프랑스 사회당의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와 기술혁명이라는 객관적 현실”(강명세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적응하려는 정치적 선택이 각국의 내적 논리에 의해 많은 부분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내적 논리 즉, 정치 문화와 제반 사회 요소의 동학을 강조하는 흐름은 아시아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김용복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일본의 길”을 통해 현재 자민-자유 연립정권에서 자민-자유-공명당 연립정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본정부는 본질적으로 보수의 회귀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평가한다. 이는 버블경제의 몰락이 가져온 아시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적 개혁의 흐름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이와 같이 일본이 급격한 보수화의 길로 진행하는 이유를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부문의 쇠퇴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은 어떠한가.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가 발표한 “‘제3의 길’, ‘DJ노믹스’와 한국사회”라는 글은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일본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김세균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는 사실 그것이 밝히고 있는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다름 아니라고 분석한다. 그는 실제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을 분석하면서 이와 같은 ‘민주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 인식틀이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에 부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본과 한국의 보수화·신자유주의화 라는 흐름은 단순히 경제정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제 정책을 ‘작동하도록’하는 토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토대 중 하나는 아시아적 가치의 한국적 변형으로서 ‘유교자본주의론’을 꼽을 수 있다.

정상호 연구원은 “유교자본주의 비판”이라는 글을 통해 유석춘·공병호에 의해 논의되고 있는 한국에서의 유교 자본주의론은 하이예크류의 시장지상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유교자본주의론은 어떤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에 기초한다기 보다는 사후적 설명의 성격을 보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현상에서 ‘유리한’ 사실만을 추출하여 구성한 조야한 이론이라고 분석한다. 즉, 유교자본주의론이라는 것은 “이론적 한계”를 지니기보다는 “사실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일본·한국의 실제 사례와 유교자본주의 분석은 공통적으로 앞서서 언급된 세계화 등의 외적 압력에 대한 일반적인 순응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수적 개혁의 첨병으로서 파악되는 아시아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아시아적 가치를 보편 가치로 대체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가.

김동택 연구위원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아시아적 가치’:근대 전복의 전략”이라는 글을 통해 전자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의 기원을 살피면서,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구 중심적인 아시아의 “차별하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런 접근법은 아시아적 가치가 지니는 긍정적인 의미를 구분해낸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적극적 방식을 구성하도록 해준다고 볼 수 있다.

김동택 연구위원은 아시아적 가치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반체제적인 성격”을 구체화해내면서 “발전, 경쟁이 아니라 그것의 지양”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라는 특수성을 바탕으로 그의 적극성을 끄집어 낼 수 있다면, 한국적인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역시 한국적 상황에 기초한 방식으로만 유효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현대사와 제3의 길”이라는 논문을 통해 김구, 여운형, 조봉암의 국가건설론과 민족통일론을 제 3의 길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살피고 있는 신병식 연구위원의 의도가 바로 그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고유한 역사적 기억에서도 현재의 일률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와 수입 가공된 ‘제3의 길’을 넘을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통해서 이질감을 없앨 수는 있어도 실제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한다. 프랑스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 일정정도 거리를 두는 정치적 선택을 강제할 사회 영역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정영태 교수(인하대 사회과학부)가 “대안의 노동운동 패러다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운동일 수도 있다.

21세기의 한국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의 평등”과 힘의 논리에 기반한 “호랑이의 자유”에서 벗어나 “호랑이의 평등”(박호성 서강대 교수 “21세기 한국정치의 나아갈 길”)을 수립할 수 있을 지는 오로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이번 학술대회가 남긴 결론일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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