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사하는 쉼표
  • 박종현 기자
  • 승인 2016.02.29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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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탐구생활 : 남자편
 
 
  “으악!” 지훈의 앞사람이 소총에 맞아 죽었다. 지훈은 그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지훈의 기대가 컸던 걸까. 이번에 새로 산 게임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이 게임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지훈은 금새 또 다른 게임을 시작한다. 일명 ‘타임머신’이라 불리는 이 축구게임은 플레이어가 감독이 될 수 있다. 그는 호나우두를 이적시장에 내놓고 메시와 계약했다. 이로써 그가 원하는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선수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끝내 역전 골을 만들어냈다. 실제 감독이 느끼는 기분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짜릿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명작이야. 명작’

  이 게임은 지훈이 기말고사를 치른 후에 5만 원의 거금을 들여 산 것이다. 그는 주로 시험이 끝난 직후에 게임을 구매한다. 스스로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사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따로 서랍장을 갖춰야 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그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던 게임은 취미가 됐고 취미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렇다고 그가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게임이 내일을 위한 충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뭘 할까.” 그는 다시 조이패드를 움직인다.


  “날이 많이 풀렸네. 봄이 오니 봄옷을 사야지.” 진표는 콧노래를 부르며 즐겨찾기 버튼을 눌렀다. 즐겨찾기 목록에는 여러 개의 쇼핑몰이 있다. ‘음, 모던룩이 대세네.’ 그는 남자에게 무난하면서도 개성 있는 옷을 판매하기로 유명한 사이트 하나를 골랐다. 사이트 이름을 누르니 수많은 옷이 나타났다. 그는 모든 옷이 그에게 어울릴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진표는 이곳저곳 들리면서 가장 맘에 드는 옷을 골랐다. 검은색 바탕에 흰 도트가 박힌 맨투맨이다. 그가 고른 옷은 7만4900원으로 쇼핑몰에서 비싼 편에 속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가뿐히 구매버튼을 눌렀다. 옷을 사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 그의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방금 구매한 옷은 그에게 단순한 옷 한 벌의 의미, 그 이상이다. 택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이틀간의 기대감과 새 옷을 통해 얻을 자신감까지 함께 산 것이다.

  진표는 옷장을 열었다. 옷장엔 이번 겨울에 입었던 옷들로 가득하다. 그는 서랍장을 겨울옷대신 봄옷으로 채워 넣었다. 유행이 지났거나 목이 늘어진 옷을 빼고도 옷장엔 꽤 많은 옷이 남아 있다.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딸랑딸랑’

  상현은 이 풍경 소리를 카페에서 가장 좋아한다. 단지 상현이 카페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지만 그는 그걸 마음에 들어 한다. 검은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상현에게 인사했다. 여느 때처럼 그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5500원입니다.” 이 카페에 처음 왔을 때 상현은 비싼 가격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커피는 그만큼 맛있었고 깔끔한 인테리어도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의 키에 딱 맞는 의자와 탁자는 마치 그만을 위한 자리 같았다. 좋아하는 곳에서의 시간을 5500원에 사는 것은 이제 그에게 저렴하게까지 느껴진다.

  어둠이 깔렸다. 이제 좀 있으면 그가 예매해 둔 연극이 시작할 시간이다. 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대학로로 향했다. 그는 차가운 바람을 뚫고 네온사인 밑에 조그맣게 난 계단을 내려갔다. 검은 방에 오밀조밀하게 관객석이 붙어있다. “4열 B석… 4열 B석…” 그는 좌석을 찾아 앉았다. 곧 무대가 어두워졌다.

  중국 고전을 한국 사회에 대입해 풀어낸 이번 연극은 그에게 꽤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좋은 연극을 볼 때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는데, 이번 연극은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연극이 끝나니 열 시가 다 됐다. 상현은 내일 아침 일찍부터 아르바이트가 있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 오늘 하루는 만족스러웠다. 상현은 내일부터 다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마라토너에게도 숨 고를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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