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탐구생활 : 여자편

본 기사와 ‘나에게 선사하는 쉼표’ 기사는 20대의 작은 사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한 학생 인터뷰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 기사에 등장한 이름은 가명이며 특정 인물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아저씨 잠깐만요!” 앞문을 두들기며 떠나려던 버스를 겨우 잡아탔다. 대학생이 된 지도 3년이 지났다. 모든 것이 어색했던 처음과 달리 151번 버스는 전용 통학 버스가 됐고 학교 주변 맛집을 찾아다녔던 나에게 법학관 왕돈까스는 특식이 됐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월요일 1교시 수업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수업을 듣는 중에도 ‘대외활동을 해야 할까?’, ‘졸업 요건은 잘 채우고 있나?’, ‘취업은 할 수 있겠지?’라는 잡다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시간표를 빼곡히 채운 강의가 모두 끝난 후에야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넜다. 월요병으로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사람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기분이 처진다. “아.... 진짜 힘들다. 스벅(스타벅스)가서 달달한 것 좀 먹어야겠다.” 한 손에는 휘핑크림이 가득 쌓인 음료를 들고 오늘 하루 동안 먹었던 걸 되돌아봤다. 아침을 거르고 먹은 점심, 2500원짜리 학식이 전부다. 점심값에 비하면 음료값이 3배 가까이 된다. 하지만 고된 하루 속에서 잠시라도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6800원은 아깝지 않다. 이런 나를 보고 ‘커피가 다 똑같은 커피지. 비싸기만 하네’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눈치를 보진 않는다. 내가 부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 입맛에 맞는 소비를 하겠다는 것뿐이다. 소비생활까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엔 삶이 너무 팍팍하다. 한 잔의 음료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다.

  주말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스스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건 뿌듯한 일이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고등학교 친구와 홍대에서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 어렵게 구한 표인 만큼 공연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분을 낼 겸 특별히 신경 써서 화장하기로 했다. 화장품을 뒤적거리다 가장 좋아하는 립스틱을 찾았다. 끝이 보이는 립스틱 통을 보며 조만간 새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 잔액을 확인해보니 8만7850원이 남아있었다. 주중엔 학교수업, 주말엔 학원아르바이트. 쉬지 않고 달리는 내게 오늘만큼은 작은 선물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윤은정 선생님 퇴근하세요.” 오후 5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공연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열차를 기다리며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중 밋밋해진 입술을 보곤 화장품이 든 파우치 꺼냈다. 그런데 아침에 바르고 나온 핑크색 립스틱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는 김에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홍대입구역 근처 화장품 드러그 스토어에 들렀다. ‘색조 화장품 최대 30% 세일’ 이건 구매하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생각하며 립스틱을 집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핑크색과 같은지 비교했다. 누가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고 했던가. ‘내 건 코랄 핑크고 이건 핫핑크네!’ 알뜰살뜰히 모았던 포인트를 사용하고 할인까지 받으니 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새 립스틱을 바르고 나니 얼굴이 한껏 생기 있어 보였다. “꽤 잘 어울리는데? 역시 난 봄 웜이야.” 열심히 벌어 내게 투자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친구를 만나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 공연장의 뜨거웠던 열기가 아직 몸에 남아있다. 들뜬 가슴을 안고 프로필 상태 명을 ‘꿀 주말,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 으로 바꿨다. 평소와 같이 주위를 살펴보니 학교와 회사에 가는 주중과 다르게 주말의 지하철 안 사람들은 밝은 미소를 띠고 있다. SNS상으로 오늘을 기록하거나 전화로 오늘 하루를 얘기하는 사람들. 일상의 피곤함을 긴 휴식과 여행으로 풀지 못하지만 나처럼 잠시 쉬어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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