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라는 사람이 미국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타블로이드 잡지의 표지모델에나 어울릴 만한 인물이 경선에 출마했다는 사실 자체가 센세이션을 몰고 왔는데, 최근까지 공화당 후보 가운데 선두권을 유지하며 인기가 꺼질 줄 모르고 있다.

  왕년에도 공화당이나 민주당에서 팻 로버트슨이나 재시 잭슨 같은 매우 이념적인 후보가 있기는 했지만 최소한 신사의 품격은 지켰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강간범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불법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황당한 발언을 했다. 최근 파리 테러 이후에는 무슬림 미국인의 추적을 위해 이들에게 주민등록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런 황당한 발언과 구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나는 그가 당선되면 미국정치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겠다고 수업시간에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나라이고 미국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지지율이 여전히 강세여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입에서 욕설이 나올수록 공화당 유권자층에서는 인기가 올라가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여기에는 기존 정치인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불만, 공화당 유권자의 불안에 편승한 트럼프의 직설적인 화법, 뉴스가치에 집착하는 미디어의 역할 등의 요인이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의회에서 정당 간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어 왔다. 부시 대통령 때가 그 절정인 줄 알았는데 오바마 대통령 재임 이후 티파티 운동이 득세하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그 결과 미국의회는 중요한 법안에 대해서 양당 간 합의할 수 없는 ‘고장 난 기관’이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역으로 정치권 밖의 인사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 트럼프 현상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공화당 유권자의 불안을 정확하게 읽고 이들의 불만을 거친 언사로 시원하게 달래주는 그의 싸움닭 기질이다. 공화당의 주류세력 중 하나인 백인 중산층 중장년 유권자는 남미 불법 이민자의 유입에 대해서 남미계 유권자를 의식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기성 정치인 후보보다 이들을 명확히 불법자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는 그의 ‘터프’한 연설에 크게 공명하고 있다. 자신의 불만을 직설적으로 대변해주는 트럼프의 연설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마저도 그의 여성편력이나 세속적 축부과정을 크게 문제 삼지 않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뉴스거리로서의 가치 역시 높은 인기도에 일조하고 있다. 뉴스가치가 높으니 보도 빈도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이 그렇게 만만히 볼 나라가 아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미국정치를 통해 우리 학생들을 계속 즐겁게 만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병권 교수
정치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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