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체험기
 
독립출판은 콘텐츠를 제작하며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 
 
▲ 세 얼간이가 직접 만든 사진 에세이 '그해 여름'.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순식간에 글이 입력되는 인터넷. 이에 비해 단어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무게감을 가지는 종이책. 이 무게감을 그리워했던 기자는 블로그나 SNS에 두서없이 생각을 펼쳐놓는 것에서 벗어나 이번학기 문화부의 활동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보기로 했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독자는 누가 될 것이며 책의 주제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문화부에서 취재하며 경험한 문화를 담으면 흥미로운 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주 한 주 신문이 만들어질수록 문화부에서 다루는 주제는 하나로 묶이기엔 너무 다양해졌다. ‘다크투어리즘’, ‘텃밭 가꾸기’, ‘무전여행’ 등 도무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책에 들어있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이걸 책으로 만든다면 잡동사니를 파는 만물상 같은 책,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닌 ‘우리 이 만큼 고생했어요’를 자랑하는 책이 돼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버릴 건 버리기로 했다. 세계 각국의 창문 사진을 담은 『오픈 투 클로즈(Open To Close)』, 퇴사 이후의 삶을 표현한 『두 번째 퇴사』 등 다른 독립출판 서적을 살펴보니 확실한 주제가 있었다. 이들도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정한 주제는 ‘여행’. 그냥 여행이 아니라 학보사 기자로서 ‘자전거 국토종주’와 ‘무전여행’이라는 체험을 했고 이를 기사로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여행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DTP(desktop publishing)라 불리는 전자 편집 인쇄 시스템을 사용해야 했다. 대표적으로 Adobe사의 Indesign, PageMaker와 Apple사의 Quark가 있다. Adobe사의 Photoshop에 익숙한 기자는 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이뤄진 Adobe사의 Indesign을 선택했다. 같은 회사의 프로그램이지만 사용 목적이 다르기에 약 한 달간 프로그램을 공부해 책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편집을 익힐 수 있었다. 보통 책 제작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이 과정에서 지루함을 느껴 책 만들기를 포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진집이나 복잡하지 않은 책은 정말 필요한 몇 가지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 프로그램이 너무 어렵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작 단계에 돌입했다. 무전여행과 자전거 종주를 했던 여름방학을 떠올려 ‘그해 여름’이라는 제목을 짓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고민했다. 사진집, 에세이, 그림, 디자인, 소설 등 어떠한 형식적 제약도 없는 만큼 책을 꾸미는 것은 온전히 작가에게 달려있다. 여행을 보여주기에는 많은 글보다는 이미지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사진 에세이를 만들기로 했다. 여행의 과정에 따라 사진을 배치하고 아래에 짤막한 글을 적었다. 
 
 여러 장이 모여 이뤄지는 책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독자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했다. 책이 진행되는 방향에 따라 구조, 사진, 여백 등으로 강약을 조절하며 적절한 긴장을 만들었다. 사진을 배치하다 보니 글 없이도 전달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글을 넣지 않고 사진만으로 기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드러냈다. 책을 만들면서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이 책은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기에 오로지 기자의 취향에 충실하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파일을 완성했다. 하지만 대량으로 책을 만들어 서점에 판매요청을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결국 방향을 바꿔 우선 기자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기록의 의미로 책을 만들기로 했다. ‘1권이라도 정성스럽게’라는 인쇄소 홈페이지 광고에 반신반의하며 3권을 의뢰했다. 3권을 부탁하면서도 일부러 “샘플로 뽑아보려고 하는데요”라며 다음에는 대량으로 주문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인쇄소 직원은 으레 있는 일인 듯 “오후에 찾으러 오세요”라고 심드렁히 답했다. 
 
 책을 받으러 충무로에 있는 인쇄소에 찾아갔다. 깔끔하게 인쇄된 3권의 책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개인이 출판을 의뢰하는 일이 정말 많아요.” 인쇄소 직원은 개인출판 물량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인쇄된 책을 맞닥뜨린 기자들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책에 표현된 사진과 글은 모니터로 볼 때보다 따듯했고 정겨웠다. 책이 한 장 한 장 넘어가며 펼쳐지는 기억들에 입가에는 완연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기사로 표현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했고 블로그나 SNS에 기록하기에는 장황하고 어지러웠던 기억들이 잘 정리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을 마주하는 것은 오랜 산고를 겪은 끝에 낳은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책은 자신의 생각에서 자라나고 태어난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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