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최하는 ‘제25회 의혈창작문학상(문학상)’에서 총 2편의 시와 1편의 소설이 수상작으로 당선됐습니다. 전국 대학생(전문대 이상 학부 휴학생,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문학상은 청년 문학도들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상입니다. 모집부분은 시 부문과 소설 부문이었으며 공모된 작품은 예심과 본심을 거쳤습니다.

시 부문의 예선은 송승환 교수(문예창작전공), 김장근 강사(문예창작전공),  김은석 강사(문에창작전공)가 심사해 총 12명의 학생들이 통과했습니다. 통과된 작품은 예선 심사위원들과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의 본선 심사를 받았는데요. 시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승하 교수는 “지나치게 말의 기교에 치중한 요즘 학생들의 시는 경쾌한 느낌을 줬지만 가벼웠다”며 “‘어떻게’ 쓰는지는 알지만 ‘왜’ 쓰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소설 부분의 예선은 김민정 교수(문예창작전공), 전성태 교수(문예창작전공), 박형숙 강사(문예창작전공)가 심사를 맡아 12편의 작품이 통과됐습니다. 이후 예선 심사위원과 방재석 교수(문예창작전공)가 당선작을 선정했죠. 소설 부문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방재석 교수는 “인간의 문제를 굉장히 진지하면서도 예리하게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며 “출품작을 읽으며 한국문학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메타세쿼이아의 1억 년 일지

누구일까
끝이 뾰족한 그리움, 치솟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 향해 불쑥 밀어 올린 이는

살아있는 화석나무 메타세쿼이아
문명이 시작된 지 훨씬 이전 그는 강가에 처음 뿌리를 내렸다
긴긴 시간 동안 곁이 간절했으나
옆으로 퍼지려던 가지는 닿을 데 없었다
홀로 우뚝 서려면 정점 더 높이 자라날 수밖에

이따금 빙하기가 찾아오면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점점 더 단단해지고 두꺼워진 몸피
따스함을 알기 위해서는 추위를 먼저 겪어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로써 그의 외로움은
1억 년 전부터 내려온 인류의 생존 일지인 셈
촘촘히 돋아난 깃털 같은 나뭇잎은
꼼꼼히 써내려간 나날의 기록이다
둥글게 맺힌 열매는 오늘의 마침표

페이지가 꽉 차는 계절은 언제나 가을
추억으로 물든 그는 팔을 양옆으로 늘어뜨리고
손끝을 떨며 갈색으로 빛이 바랜
잔가지를 한 장 한 장 떨어트린다

겨울을 맞을 때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
정수리까지 쌓인 눈이 새하얗게 탈색한
외로움의 그림자
메타세쿼이아는 수피를 수적으로 벗는다
고독을 벗는다, 새 기록장을 준비한다

 

사임당

무궁화 품종 중에
사임당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꽃잎파리는 엄격한 순백색
섬세하게 그린 한국화처럼 혹은
현명한 어머니의 엄한 꽃그늘 그
아래에서 자란 명필가가
한지 부채에 행초로 쓴 연서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겹꽃이다

수목원에서 처음 만난 사임당
아니 처음 뵈었다고 해야 할까
한없이 정하고 꼿꼿한 꽃 수술,
흔히들 단심이라고 한다는
그 우아한 기백 앞에서
흔들리던 방심이
한소끔 끓고 난 찻물처럼 잠잠해진다

살면서 제대로 꾸지람 받은 적,
몇 번이나 있었던가
꾸지람을 듣고
자연스레 고개를 떨군 적은 또 얼마나
수목원을 돌아 나오며 나는
방명록을 남겨달라는
관리인의 말에 마침표를 찍는다
-경의를 표함, 무궁화의 부덕(婦德)에 부쳐

 

메타세쿼이아의 1억 년 일지 작품 자평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제작한 우주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서는 코스모스 달력을 제시했다. 우주가 생기게 된 최초의 사건 ‘빅뱅’이 일어난 시점을 1월 1일로 잡고 이후 이어진 우주와 지구의 시간을 1년이라는 시간으로 압축해 만든 것이다. 이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한 달은 약 10억 년이며 하루는 약 4000만 년이 된다. 코스모스 달력을 통해 본 인류의 역사는 지구 전체의 역사에 견주어 매우 짧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삶의 행복과 인류의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목적에서 발전됐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최초의 목적을 상실하고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만들어 우주와 자연을 주변에 배치시켰다. 이 때 자연은 ‘이해’되지 않고 ‘이용’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지구에 먼저 뿌리내린 게 자연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이따금 빙하기가 찾아오면/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점점 더 단단해지고 두꺼워진 몸피/ 따스함을 알기 위해서는 추위를 먼저 겪어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코스모스 달력에 의하면 인류는 우주의 역사에서 12월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근대적 이성의 등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인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고작 2초전에 발견되었을 뿐이다. 결국 ‘문명’이 등장하기 이전의 11개월 동안 지구는 이미 빙하기, 혜성 충돌, 공룡의 등장과 멸망 등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과학적 합리주의는 인간만이 “따스함을 알기 위해서는 추위를 먼저 겪어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저 메타세쿼이아, 즉 ‘자연’의 “단단해지고 두꺼워진 몸피”에 자신들을 기대고 있을 뿐이다.

이로써 그의 외로움은/ 1억 년 전부터 내려온 인류의 생존 일지인 셈/ 촘촘히 돋아난 깃털 같은 나뭇잎은/ 꼼꼼히 써내려간 나날의 기록이다/ 둥글게 맺힌 열매는 오늘의 마침표
인류의 생존은 자연의 생존 기록에 비하면 매우 소박하다. 사실상 인류의 생존 싸움은 1억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온 메타세쿼이아의 고독함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메타세쿼이아의 끈질긴 생명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나날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까지 내려왔으며 그 내력의 끄트머리에서 인류는 고작 ‘오늘의 마침표’ 정도를 찍을 따름이다.

겨울을 맞을 때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 정수리까지 쌓인 눈이 새하얗게 탈색한/ 외로움의 그림자/ 메타세쿼이아는 수피를 수직으로 벗는다/ 고독을 벗는다, 새 기록장을 준비한다
코스모스 달력에서 인류는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겨울이지 자연의 겨울은 아니다. 현재 12월을 보내고 있는 인류가 31일에 다다라 새로운 빙하기를 맞아 멸망하게 되더라도 자연, 더 나아가 우주로 대표되는 메타세쿼이아는 1억 년 내내 그래왔듯 묵묵히 이듬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새 달력을 펼치고, 새 기록장을 준비해 지구의 역사, 코스모스의 역사를 써내려가며 어쩌면 인류와는 무관한, 인류가 ‘이해’하지 않고 ‘이용’하기만 했던 저들의 법칙에 따라, 지금껏 그래왔듯이 담담히 작동하며 말이다. 우리 인류는 12월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 만일 인류가 여전히 자연을 ‘이해’하지 않고 ‘이용’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지 모른다. 다음해를 맞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릴 필요가 있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자연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시 부문 당선자 박혜은 학생 interview

서울에 도착한 한 줌의 자연

고층 빌딩과 화려한 건물 속 쉴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지친 현대인들에게 두 편의 시는 잠깐의 휴식과도 같았다. 도시의 삭막함을 거부하고 자연의 특별함을 찾고 싶었다는 박혜은 학생(광주대 문예창작학과). 자연에 대한 그녀만의 깊은 사색을 들어봤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소재가 특이합니다. 이 소재로 시를 쓴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광주 근교의 메타세쿼이아 거리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긴 보행로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푸른 메타세쿼이아가 가로등처럼 늘어선 그 거리는 매우 인상적이죠. 일상에 지치거나 힘이 들 때 이곳을 찾으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돼요. 1억 년 전부터 지구에 뿌리내려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살아남은 메타세쿼이아의 생명력에 감탄했어요. 그 끈질긴 생명력을 작품으로 담고 싶어 시를 짓게 됐습니다.”

-‘메타세쿼이아의 1억 년 일지’라는 제목도 긴 생명력과 연관 있어 보입니다. 
“긴 고독을 이겨낸 자연의 생명력을 제목을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1억 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딘 메타세쿼이아의 내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메타세쿼이아의 1억 년 일지’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혹시 시를 창작하며 영감을 줬던 시인이 있나요?
“제 지도교수님인 이은봉 시인입니다. 교수님은 평소 학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시적 영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야외수업도 많이 하시는 편이죠. 이번 작품도 학교 뒷산의 정자에서 작품 합평을 하다가 싹을 틔우게 되었습니다.”

-두개의 시 모두 소재가 자연물인 이유가 바로 지도교수님의 영향이었군요.
“맞아요. 그리고 특히 서정시는 자연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평소 서정시에서 시적 자아와 세계가 분리된 세계관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양자의 회복과 화해를 위해서는 자연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사임당’이 탄생한 배경에도 자연에 대한 철학이 작용한 듯 보입니다. 사임당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사임당은 무궁화 종류 중 하나에요. 약 100일간 계속해서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무궁화의 특성을 어머니의 끊임없는 모성에 비유했어요. 사임당은 어머니의 현명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현명함을 무궁화로 비유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문득 무궁화가 신사임당의 현명함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사임당은 당대 여인으로서는 드물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아 아들을 길러낸 현모양처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궁화와 사임당을 시 속에서 하나로 엮어내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시의 기초부터 차근히 가르쳐 주신 이은봉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은봉 교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창작할 수 있었던 시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 장르만 공부했다면 제게 이런 값진 상이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교수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시 부문 심사평

인간이 이룩한 문명보다 위대한 것

시 부문은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여겨지며 수준 미달의 작품은 없었다.

그중 4명의 작품을 유심히 보았다. 「항우울」 등을 투고한 박선희(충청대)는 상상력이 비상하고 대단히 감각적인 시적 표현을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아쉬운 점은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왜 써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시는 자신을 향해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려 쓰는 것임을 명심하기를.

「염탐의 새벽」 등을 투고한 민성재(명지전문대)는 1학년 학생답지 않게 무척 세련된, 현대적인 어법을 구사했다. 다소 엉뚱한 발상과 도발적인 펀(pun)이 말의 맛을 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가 전반적으로 가벼워 말의 ‘맛’은 있지만 ‘멋’은 부족했다.

서울대 국문학과 4학년 강민호와 광주대 문창과 4학년 박혜은의 작품은 성향도 다르고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장고를 이틀을 두고 했다. 바둑의 ‘봉수’처럼.

「청보리밭에는 검은 시체」 외 6편을 투고한 강민호의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끈질긴 대결의식과 유머를 동반한 상상력 발휘가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데 한 편 예외 없이 산문시였고, 다변과 달변이 시를 읽는 데 방해가 되었다. 시는 독자가 집중력을 갖고 끝까지 읽게 해야 하는데 몰입도 유지가 쉽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의 1억년 일지」 외 9편의 시를 투고한 박혜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세련된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지 못한 ‘구닥다리’였다. 하지만 어떤 시적 대상이든 조심스럽게 다루는 진지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색의 깊이를 느끼게 해 앞날에 신뢰감이 가게 했다. 모더니즘으로 가장한 말의 성찬은 자칫 잘못하면 공허해지지 쉽다. 이 시와 「사임당」은 독특함이나 특이성은 없지만 존재 혹은 생명에 대한 명상이 철학적 깊이를 담보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화석나무 메타세쿼이아의 일생과 진화의 역사를 더듬어 나간 당선작은 유한자인 인간과, 인간이 이룩한 문명보다 위대한, 태곳적부터의 생명의 위대한 자연 적응력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는 명작이다.

이승하 교수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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