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5.22 월 14:32
여론/칼럼의혈창작문학상
제 25회 의혈문학상 소설 부문소설 부문 당선 : 김창욱(연세대 철학과4),「어떤 말을 할까」
김채린 기자  |  chaelin@cauon.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2.07  16:46:3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어떤 말을 할까

  그것이 처음에 내뱉은 말의 내용은 모욕이었다. 그 이후로 남자와 여자는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하든 그것이 따라다녔다. ‘그것이 곧 남자라거나 여자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없이는 남자도 여자도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것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아버지를 스톱워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항상 시간을 측정했다. 그리고 측정한 시간을 점점 단축해 나갔다. 아버지는 시간을 측정하고 단축하는 행위로 시간을 견뎌내는 것 같았다.
 
다섯 시 반이 아버지의 기상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일어나면 곧바로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남자는 잠결에 아버지의 구령 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20분간의 스트레칭을 마치면, 아버지는 곧바로 동네 뒷산으로 출발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등산로 중간쯤에 깔딱 고개라고 불리는 구간이 있어 오르기가 쉽지만은 않은 그런 산이었다. 이름 그대로 깔딱 고개는 한 번 넘으면 숨이 깔딱, 하고 넘어갈 정도로 힘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등산에 걸리는 시간을 매일 측정했다. 처음 산에 오른 날, 아버지는 정확히 4238초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날 아버지는 밥도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출근해야만 했다. 여섯 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그 시간을 차츰차츰 단축해 나갔다. 간혹 남자가 일찍 잠에서 깬 날이면, 아버지가 현관에 서서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운동화도 벗지 않은 채 시간부터 확인했다. 아버지는 늘 혀를 길게 빼내어 물고는 측정한 시간을 확인했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 혀를 빼무는 것은 아버지의 습관이었다. 그럴 때 아버지의 몸에서는 달콤한 땀 냄새가 났다. 갓 흘린 땀은 그 냄새가 역겹다기보다 달콤했다. 아버지는 시간 단축에 성공한 날이면 웃는 표정으로 남자를 지나쳐갔고, 실패한 날이면 아무런 표정 없이 남자를 지나쳐갔다. 그럴 때 아버지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 남자도, 남자의 형도, 어머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 같기도 했다. 시간을 단축하는 행위에 몰두할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2830초까지 시간을 단축하고는 드디어 아침 등산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회사까지 뛰어가는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약 9km 정도였으므로, 가볍게 뛰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38분으로 단축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식이었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종목을 바꾸어 가며 시간을 단축했다.
 
그러므로 남자 또한 그런 습관을 갖기를 아버지가 바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것을 남자에게 처음 요구한 것은 남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러니까, 남자가 같은 반 친구에게 두들겨 맞아 울면서 들어 온 날이었다.
 
그날, 거실에 울면서 서 있는 남자에게 아버지는 그쳐! 하고 소리쳤다. 남자가 다섯 살 때, 너희는 들어가서 자라고 말했잖아, 하고 소리치던 때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울고 있는 남자에게 그것은 끊임없이 속삭여대었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남자의 시간 단축 계획을 거실에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남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한 달이다. 한 달 후에 너는 그 애를 반 죽여 놓아야 한다. 그냥 이겨서 되는 정도가 아니다. 다시는 너를 마주 보지도 못 하도록, 완전히 밟아 놓아야 한다. 알겠니? 반 죽여 놓을 수 있겠니?
 
남자는 그때부터 아버지 선배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 보내졌고, 관장으로부터 자신의 종아리 굵기 만한 목검으로 자주 맞았으며,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체력단련을 실시해야 했다. 정해진 개수를 전날보다 짧은 시간에 해내는 방식으로. 그런 식으로 남자는 아버지의 습관을 몸에 욱여넣었다. 시간 단축에 실패하는 날이면 남자는 종일 그것이 내뱉는 말에 시달려야 했다.
 
한 달 후, 남자는 자신을 때렸던 아이를 깔고 앉아 목을 조르면서 생각했다. 반 죽여 놓는 것은 얼마나 죽여 놓는 것을 뜻할까? 이 정도면 반 죽인 걸까? 아냐, 팔다리가 아직 이렇게 힘차게 움직이잖아. 더 죽여 놓아야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을 거야. , 눈동자가 보이질 않잖아, 이러면 반 죽은 건가? 언제까지 이렇게 목을 졸라야 하는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남자가 정신을 차린 것은 선생님이 억지로 남자의 손을 떼어 낸 후였다. 목을 졸린 아이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는데, 10초쯤 지나자 온몸을 바르르 떨며 깨어났다. 그 아이는 깨어난 후에도 몇 초간 몸을 비틀며 발발댔다. 남자는 기뻤다. 잠시라도 기절을 했다는 것은 반쯤 죽었다는 것의 증거로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안도했다.
 
남자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내리깔거나 피했다. 남자는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을 발견했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타인을 보는 것이 그토록 짜릿한 일이라는 것을 남자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남자는 무척이나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 달 전, 남자를 두들겨 패며 그 아이가 이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자는 다짐했다. 다시는 자기 앞에서 그런 짜릿함을 느끼는 아이가 없도록 하겠다고. 짜릿함을, 자유로운 느낌을 느끼는 쪽은 언제든 자신이 되겠다고. 그 날,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것은 처음으로 남자를 칭찬해 주었다.
 
*
 
여자는 아버지를 불 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아버지는 잘 자렴, 하고 인사하며 여자 방의 불을 꺼주었다. 여자는 자신의 방을 갖게 된 이후로 한 번도 스스로 불을 꺼 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자기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책상과 침대 사이에 의자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아주 좁은 방이었지만 여자는 기뻤다. 여자는 나름대로 자신의 방을 꾸몄다. 찢어진 벽지 사이로 드러난 시멘트벽에 진홍색 하트를 채워 넣고, 금이 간 책상 위 유리에 초록색 테이프로 나무를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여자의 방은 금세 갖가지 원색으로 채워졌다.
 
아버지는 불을 끄고 난 후 종종 침대에 걸터앉아 여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하며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볼을 꼬집기도 했으며, 아랫배의 아래를 만지기도 했다. 여자는 의심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일곱 살 때처럼, 그것은 메스꺼움 같기도 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와 의심스러운 느낌 사이의 불일치를 설명해낼 수 있는 말을 여자는 몰랐다. 모순되는 것이 공존한다는 것을 여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자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므로 여자는 가만히 있었다.
 
언젠가, 여자는 어머니에게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자꾸 내 몸을 만져, 와 같은 간단한 문장으로. 어머니는 잠시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으나,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버지가 널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여자는 중얼거려 보았다. 아버지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 몸을 만진다. 깔끔한 인과관계였다. 그처럼 깔끔한 문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여자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른이 된다는 건 깔끔한 문장을 사용할 줄 알게 된다는 건가 봐. 명징한 문장을 사용할 줄 알게 된다는 건가 봐. 혹은, 명징한 문장으로 명징하지 않은 것을 덮어버릴 줄 알게 된다는 건가 봐.
 
여자를 쳐다보기만 하던 그것이 여자에게 말을 건 것은, 여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 날은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다 처음으로 여자 방에서 자고 간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여자는 벽지가 뜯긴 자리에 진홍색 하트를 그리지도, 금이 간 책상 위 유리에 나무 모양으로 초록색 테이프를 붙이지도 않았다. 여자는 강렬한 원색들이 우스웠다. 그것들이 위선을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생각했다. 진홍색은 진홍색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하트모양은 하트의 내용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초록색은 초록색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나무 모양은 나무의 내용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그것이 여자에게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더러운 년, 이라는 것이었다. 더러운 년. 걸레 같은 년.
 
여자는 또래 친구들이 신기했다. 꽃을 보고 예쁘다, 고 외치는 그들이 신기했다. 남자 아이돌을 보고 멋있다, 라고 외치는 그들이 신기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여자는 이제 그 무엇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고 느꼈다. 언어를 부여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언어를 박탈해버렸다.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였다. 학교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여자는 눈에 보이는 풍경이 환영 같다고 종종 생각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무미건조하고 역겨운 느낌만이 한없이 지속되었다. 분노나 절망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여자는 차라리 분노나 절망 같은 강렬한 느낌이 자신을 사로잡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떤 행동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니, 그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도 절망스럽다, 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그 느낌은 어리둥절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여자는 그런 자신의 하루하루를 조용히 처리해 나갔다.
 
*
 
남자가 그것을 처음 본 것은 다섯 살 때였다. 너무 이른 나이였다. 여자에게 그것이 나타난 것보다도 두 살이나 일렀다.
 
그 날은 한겨울 밤이었다. 남자는 형과 한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형의 방에는 침대가 없었으므로 둘이 누워있는 곳은 바닥이었다. 남자는 겁이 많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형과 한 방에서 잤던 것이다. 남자와 형은 두 살 터울이었다.
 
그들의 등으로 뜨끈한 바닥의 열기가 올라왔다. 희미한 땀 냄새와 함께였다. 둘은 그 열기에도 불구하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자기 전에 항상 하는 놀이를 위해서였다. 그날은 남자가 원하는 후뢰시맨 놀이를 할 차례였다. 그 전날은 형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삼국지 놀이를 했으므로. 형은 관우라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때문에 남자는 늘 화웅이라는 사람이 되어 형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 날도 레드는 형 차지였다. 그나마 그날은 악당 역을 맡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그린이었다. 형은 소곤댔다. 그린, 악당이 나타났어. 그러면 남자는 엄중한 목소리로 맞받았다. 레드 형, 어서 다른 멤버를 소환하자. 출동해야지. 그렇게 형제의 이불 속 공간, 딱 그 정도 크기의 공간만큼 신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한창 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이불 속으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형제는 잠시 놀이를 멈추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소리는 형제들의 놀이를 위한 훌륭한 효과음이 되었다. 그린, 악당이 지원군을 데리고 왔나 봐. 레드 형, 지원군이 뭐야. , 그런 게 있어 바보야. 필살기를 쓸 준비를 하자.
 
그때 갑자기 무어라 소리치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형제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목소리라기보다는 개가 왕왕 짖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남자가 상상할 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그것이 처음 나타난 것은. 물론 그때까지 그것은 아주 흐릿한 형상에 불과했다. 마치 불투명 유리를 통해 보이는 어떤 형체처럼, ‘그것은 불분명했다.
 
남자와 형은 이불속에서 나와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맞은편의 안방에서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씨발년이. 거기서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왜요. 왜요. 그 집 남편이 라디오 고친 걸 칭찬한 게, 그게 왜요. , 아버지한테도 이렇게 안 맞아 봤어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례대로 이어졌다. 중간 중간에 철썩이라거나 쿵, 하는 소리도 간간이 끼어들었다. 그 소리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그것의 형체 또한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것은 남자에게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안방 문을 연 것은 형이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깔고 앉아 오른손을 치켜들고 있는 풍경이 남자의 눈앞에 펼쳐졌다. 아버지는 말했다. 너희는 어서 들어가 자라.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고 있었다.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내었다. , , 하는 이상한 소리였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 같았다.
 
남자는 얼마 전에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생각해냈다. 유치원 선생님은 말했다. 여러분, 집에서 엄마 아빠가 다툴 때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 잘 보세요. 이렇게, 엄마한테 달려가서 귀에다 대고 엄마, 다투지 마세요, 하고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남자는 배운 것을 실천할 기회를 찾은 것에 기뻤다. 남자는 상상했다. 이제 유치원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어머니의 귀에다 대고 싸우지 마세요, 하고 말하기만 하면 상황은 종료될 것이다. 마치 보풀이 잔뜩 일어난 내복을 입은 것 같은 이런 이상한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하 호호 웃으며 다시 잠자리에 들 것이다. 나는 칭찬받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고민했다. 어머니가 누워 있었으므로 그가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려면 엎드려야만 했던 것이다. 뭐 까짓것, 하고 남자는 엎드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엄마 아빠, 다투지 마세요. 남자는 생각했다. , 이제 어머니는 웃겠지. 그러나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 , 하는 이상한 소리만 더욱 크게 낼 뿐이었다.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그때 아버지가 소리쳤다. 너희는, 들어가서, 자라고, 말했잖아! 태어나서 남자가 들은 제일 큰 소리였다. 남자는 움찔하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왜 나를 칭찬하지 않지? 그때 아버지의 눈빛은, 마치 남자의 입으로 음식물을 꾸역꾸역 밀어 넣을 때 유치원 선생님이 보이는 그 눈빛 같았다.
 
그때였다. ‘그것이 남자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 것은. ‘그것은 허공에서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 그 말은 남자가 최초로 받은 모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최초의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그것은 항상 남자를 따라다녔다.
 
*
 
여자는 일곱 살 때 그것을 처음 만났다. 그 날은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여자의 부모는 재롱잔치가 끝난 후 여자를 갈빗집으로 데려갔다. 마지막 무대에서 입었던 공연 의상은 갈아입었지만, 분홍빛 볼 터치와 빨간 립스틱은 미처 지우지 못했던 터라 여자의 조그만 얼굴은 온통 얼룩덜룩했다. 여자는 누가 봐도 귀엽게 생긴 아이였으므로, 그것은 흉측하다기보다는 앙증맞은 느낌을 주었다.
 
여자의 아버지와 여자가 나란히 앉고, 맞은편에 어머니가 앉은 모양새였다. 어머니 옆의 빈자리는 안개꽃과 장미로 만들어진 싸구려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유치원에서 나누어 준 상패와 간식 선물도 함께였다. 꽃다발의 장미는 벌써 끝이 시들어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살 때부터 이미 시들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꽃다발 아래에 놓인, 고기 냄새가 밸까 봐 뒤집어 개어 둔 아버지의 체크무늬 감색 양복은 옷깃과 소매가 다 해어져 너덜너덜했다.
 
재롱잔치의 마지막 무대는 만화주제가 검정고무신에 맞추어서 춤을 추는 무대였다. 누구나 재롱잔치, 하면 떠올리는 연지곤지는 이미 작년에 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그 갈빗집에서 계속해서 검정고무신을 불러 대었다. 이제는 지나 버린, 꿈같은 이야기, 미워도 했고 사랑도 했고 원망도 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익은 고기를 부지런히 아버지와 여자의 그릇에 옮겨 놓았다.
 
아버지는 신이 난 여자에게 거듭 쌈을 싸 주었다. 일곱 살의 입 크기에 맞게 간단한 쌈이었다. 상추와 고기 한 점, 그리고 된장. 여자는 고기를 새끼 새처럼 계속해서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지난 시절 다시는 오지 않아도, 모두 다 아름답고 정다운 이야기, 꿈같은 이야기, 검정고무신. 모이를 잔뜩 먹은 병아리의 모래주머니처럼 여자의 배가 빵빵해졌을 때, 어머니는 고기 굽기를 멈추었고 가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가 차 뒷좌석에 올라타려 할 때, 아버지는 여자더러 조수석에 타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무슨 애를 조수석에 태워, 하고 조그맣게 항의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뭐 어때, 집이 바로 앞인데, 그리고 매일 타 보고 싶어 했잖아, 오늘은 특별한 날인데, 하며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머니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여자는 신이 나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달큼한 커피 냄새가 풍겨왔다. 여자는 편안함을 느꼈다. 여자의 안전띠를 해 주고 아버지가 물었다. 우리 딸 많이 먹었어? 여자는 응, 진짜 많이 먹었어. 배 터질 것 같아,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디 얼마나 많이 먹었나 한 번 볼까, 하며 여자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여자는 나 완전 배 커졌지, 하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손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아랫배라고 부를 수 없는 데까지, 아랫배의 아래까지 아버지의 손은 자꾸만 내려갔다. 아버지의 손이 여자의 몸에 머무른 것은 아주 잠깐 이었다. 이내 아버지는 시동을 걸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여자는 어리둥절함을 느꼈다. 그 어리둥절한 느낌은 오래 이어졌다. 집에 도착하자, 그것은 메스꺼움으로 바뀌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신이 났는데, 이제는 왜 신이 나지 않는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무언가가 답답했다. 이제까지 유치원에서 배워 온 명징한 문장들로는 해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했다. 이를테면 친구를 사랑해요, 집은 편안해요, 어머니는 아름다워요, 아버지는 자상해요, 그런 문장들로는. 명징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명징한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언젠가 고모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자랑하려고 피아노를 쳤는데, 고모가 시끄럽다며 윽박질렀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과도 조금 비슷했다. 여자는 집으로 걸어 들어가며 습관적으로 노래를 중얼거렸다. 모두 다 아름답고 정다운 이야기, 꿈같은 이야기, 검정고무신.
 
그때였다. ‘그것이 나타난 것은. ‘그것은 여자의 위에서 물끄러미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것은 여자를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상황이 여자에게는 최초의 기억이자, 최초의 불안이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말을 걸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남자가 아버지를 처음 때린 날, 그러니까 남자가 열여덟 살이던 해의 어느 날, 어머니는 남자의 뺨을 때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책임감 있게 살았다. 너는 대체 뭐하는 놈이냐?
 
남자는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마치 재판관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사실이 그랬다.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사람도,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 사람도 모두 어머니였다.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폭력은 어머니의 승인으로만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책임감 있게 살았다. 너는 대체 뭐하는 놈이냐? 남자는 어머니에게 무언가 질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남자는 온몸에 힘이 쪽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어머니가 때린 왼쪽 뺨에 오른손바닥을 대어보았다.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마치 노예의 이마에 불에 달군 낙인을 찍어버리듯, 어머니가 죄지은 자라는 표식을 자신의 뺨에 찍어버린 것 같았다. 형벌은 아주 오래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것과 함께 다녀야 하는 시간만큼.
 
여자가 열다섯 살 때, 여자는 어머니에게 조금 더 명확한 언어로 말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해.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며 바닥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고, 여자는 그런 어머니의 등을 쳐다보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빨래를 개다가 불쑥 여자에게 말했다. , 옷 좀 똑바로 입고 다녀라.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잠시 빨래 개는 것을 멈추고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성실하게 지내왔지 않니.
 
다시 말은 끊어졌다. 조금 후,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여자의 짤막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은 것으로 볼 때, 어머니는 일찍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두서없는 말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말들 사이에서, 여자는 여러 가지를 보았다. 여자는 연민이 불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어머니를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오래 수난당한 사람의 몹쓸 버릇이었다. 원망의 말을, 분노의 말을 쏟아내고 싶었으나 잘 되지가 않았다. 여자는 빨래를 개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래 같이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을 잡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여자는 빨랫감에서 풍겨오는 피죤 냄새를 맡으며 어머니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다.
 
*
 
스무 살 무렵, 남자에게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와 두려워하지 않는 자. 남자에게 있어 만인에 대한 판단의 척도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남자는 두려움의 전문가였다. 남자는 아버지의 재능을 완벽하게 물려받았다.
 
남자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 앞에서는 아주 매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앞에서 과장되게 너스레를 떨다 실수를 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렇다고 학창시절처럼 폭력을 행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폭력은 도움이 안 되었다. 폭력을 대신하는 도구가 남자에게는 바로 너스레였다. 그런 이유로 남자는 아름다운 사람을 싫어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 중에도 예외는 있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대학 시절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본 순간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가 어떤 질문을 하면 화들짝 놀라기부터 하는 것, 말을 더듬거나 입술을 어색하게 일그러뜨리며 남자의 질문에 결국 대답하지 못하는 것, 눈을 반달모양으로 뜨고 입을 가리며 웃는 것이 회심의 표정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그 표정을 억지로 짓는 것, 소심해 보임에도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베이지색 니트 원피스를 입은 것, 그 모든 것이 남자의 판단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남자는 아주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여자에게 명확한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자신의 몸을 욕망한다는 것. 여자에게 부여된 언어는 그것뿐이었다. 그러므로 여자는 그 언어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세상에 속해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그 언어를 통한 것이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외모를 꾸미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화장하는 법을 배우고, 교복을 줄였다. 그렇게 중고등학생 시절을 거치면서, 많은 선배들이, 친구들이, 후배들이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 중 몇몇과는 연애를 하기도 했다.
 
여자는 그들이 내뱉는 사랑한다는 말이 그 내용까지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말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종의 안도였다. 그들이 내뱉는 달콤한 말들은, ‘그것이 여자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말들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것이 내뱉는 말들은 훨씬 더 지독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자에게 있어 사랑한다는 말이란, 거짓된 형식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여자는 남자들의 자신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들의 욕망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욕망하는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은, 여자에게는 곧 이 세상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과도 같았다. 거짓말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나았다.
그러므로 여자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여자와 남자는 만나게 되었다.
 
   
일러스트 전은빈씨
*
 
남자와 여자는 다락방, 이라는 DVD방에서 주로 섹스를 했다. 다락방은 영화 세 편을 틀어주면서 모텔 대실료보다 싼값을 받았고, 또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남자와 여자는 다락방에서 함께 누워있었다. 땀을 흘리고 난 뒤라 보라색 고무매트가 몸에 쩍쩍 달라붙었다. 남자는 에어컨을 틀고 왼팔로 여자를 끌어안았다. 남자의 오른쪽에는 휴지 뭉치들이 가득했다.
 
다락방에서 여자와 함께 누워있을 때면, 남자는 늘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여자와 끌어안고 있는 것이 주는 만족감은 그 불안감의 외피에 불과한 것 같았다. 마치 수배 중인 범인이 애인의 집에 숨어 살 때 느낄법한 기분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는 갑자기 여자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어깨에 기대어 있는 여자를 볼 때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왔던 것이었다.
 
그럴 때면 여자는 남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치, 남자의 그것이라도 보인다는 눈빛이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눈빛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그때 여자의 눈빛은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연민의 눈빛이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욕을 하거나 더욱 화를 내었다. 멍청하게 웃지 말라는 둥, 몸이 왜 이렇게 끈적거리느냐는 둥 갖은 트집을 잡아가며 남자는 화를 내었다. 그러면 여자는 미안해, 미안해, 하며 웃었다.
 
그날 여자가 말을 꺼낸 것도 남자가 몇 번 화를 내고 난 후였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은 모두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 속의 남자배우는 우쿨렐레를 치며 여자배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여자배우는 그런 남자배우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여자의 말투는 담담했다. 여자는 아랫배의 아래에 대하여, 메스꺼움에 대하여 말했다. 또 진홍색 하트를 그리지 않게 된 것에 대하여, 풍경이 모두 환영 같아 보이게 된 것에 대하여 말했다.
 
여자의 말이 멈추었을 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남자는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알 수 없음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분노는 남자에게 제일 손쉬운 감정이었다. 그 분노에 죄책이 담겨있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남자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그 분노에 힘입어, 남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여자의 말을 재구성했다. 남자는 생각했다. 여자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자신의 비극적인 모습을 전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그 욕망 때문에 아버지도 팔아먹는 허풍선이가 바로 여자라고.
 
남자는 여자의 벗은 몸을 한 번 쳐다보았다. 꾸물거리는 누에고치를 보는 것처럼 역겨웠다. 남자는 옷을 입으며 욕을 내뱉었다. 남자는 한참 욕을 하다가 방을 혼자 나왔다. 남자가 방을 나오자마자 그것이 남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남자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소용은 없었다.
 
한밤중이었다. 도로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도로 위에 서 있자니 도로가 무척이나 넓어 보였다. 남자는 줄타기를 하는 광대라도 된 것 마냥,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도로 중앙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남자의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모퉁이에는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다. 남자는 멀리서 그 가로등 아래 누군가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술에 취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가로등 맞은편 담벼락에는 손수레 한 대가 쓰러져있었다. 쓰러진 손수레에서 쏟아져 나온 신문지 다발이 길가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노랫소리에 가로등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아버지였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자세히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맞았다. 아버지는 검은색 양복에 주황색 타이를 메고 가로등 아래에 누워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잘 닦인 구두가 반짝였다. 남자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쓰러진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남자에게 술 마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을 한없이 늘리기도 하고 한없이 줄이기도 하는 술을,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해야만 하는 스톱워치가 가까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그곳이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문지 뭉치로 베개까지 만들어 베고는 누워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고는 아주 편안하다는 듯. 아버지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밋자루, 벗을 삼아, 화전 밭, 일구시고남자는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모습 또한 처음 보았다. 남자는 모르는 노래였다. 판소리 같기도 했고 트로트 같기도 했다. 남자는 멍청히 서서 그르렁대는 아버지의 음성을, 뚝 뚝 끊어지는 그 음성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가신.
 
한참을 노래 부르던 아버지가 왼쪽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새우잠을 자는 것처럼 몸을 한없이 곱송그렸다. 양복 위로 튀어나온 척추뼈가 노인의 그것처럼 앙상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그 자세에서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꿈속에서 무슨 큰 소리라도 듣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힘이 드는 듯,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도 했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아버지가 마치 유치원생 아이 같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다섯 살 아이처럼 몸이 작아진 듯도 했다.
 
남자는 참으려고 해 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남자는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엉엉 울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처럼 그것은 불가항력적이었다. 남자는 그렇게 첫울음을 울었다. 남자의 희뿌연 시야에, 아버지에게 무어라 쏘아대고 있는 그것의 모습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남자는 처음으로 타인의 그것을 보았다.
 
남자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차마 아버지의 손을 잡을 순 없었다. 남자가 양쪽 어깨를 잡고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자, 다행히 아버지는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숨을 쉴 때마다 토사물 냄새가 풍겨왔다. 그렇게 남자와 아버지는 집 앞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아버지를 침대에 눕혔다.
 
남자는 곧바로 다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여자는 다락방 앞에서 쭉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다시 전화해주어서 고맙다고도 했다. 남자는 다락방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입구 옆에서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 앞에 섰다. 늦은 밤이었고, 또 도시 외곽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락방에서 왼쪽 두 블록 옆에 있는 감자탕 집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아직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지 간혹 말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남자가 여자 앞에 서자, 여자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살짝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를 마주 보고, 두 팔로 자신의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쪼그려 앉았다. 남자와 여자의 발끝이 맞닿았다.
 
남자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여자의 몸 위에 떠 있는 그것.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여자에게 말을 걸어대는 그것의 모습을.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여자에게 뱉어대는 말들을. 남자는 여자의 귀를 막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여자가 손을 들더니 남자의 두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차가운 두 손의 감촉이 남자의 귀에 전해져왔다. 남자는 그 감촉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할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위로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그 말을 찾자면 아주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 평생 그 말을 찾아 헤매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말을 찾기 위해서 나는 계속 말을 할 거야. 계속해서 말을 할 거야. 어떤 말을 할까, 계속해서 생각할 거야.
 
남자와 여자는 한동안 그렇게 발끝을 맞댄 채, 쪼그려 앉아있었다.
 

소설 부문 당선자 김창욱 interview

따스한 위로가 담긴 그의 소설
 
간결한 그의 글은 자칫 개인의 일생을 담담하게 풀어쓴 소설로 보일 수 있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주인공이 받은 상처를 이토록 사실적으로, 그것도 차분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까. 아마 상처받은 이들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려는 김창욱 학생(연세대 철학과)의 심성에 있었으리라. 가정폭력을 경험한 주인공 ‘남자’와 아동 성폭력을 겪은 주인공 ‘여자’의 아픔을 녹여낸 김창욱 학생의 소설, 그 뒷이야기를 담아봤다.

-의혈창작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을뿐더러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지도 않아요. 그동안 혼자서 소설을 쓰긴 했어도 선후배나 누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죠. ‘글을 잘 쓴 건가’, ‘이것도 소설이라 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을 받게 돼서 앞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엔 주인공의 이름 대신 ‘남자’와 ‘여자’라는 명칭만 등장합니다. 이름이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주인공들이 겪은 아픔을 그들의 일생에만 묶어두고 싶지 않았어요. 상처받은 개인의 경험을 구조적으로 풀어내고자 했죠. 두 명의 주인공이 겪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이 특정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과 함께하는 ‘그것’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은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군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자의식이에요. 분열된 자아인 셈이죠. 소설 속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자의식은 모욕당한 주인공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성폭력과 같은 상처를 다루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평소 사람들의 내면을 상상하곤 해요. 사람들에게 어떤 비틀린 과거가 있고 또 어떤 상처가 있을지 말이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첫 모욕의 기억, 처음 불안감을 느꼈던 기억 등을 사회적으로 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그와 같은 상처를 다루면서 고민했던 부분은 없었나요.
“제가 겪어보지 못한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조금은 관념적인 서술에만 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서사적인 부분이 부각되지 않고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에만 치우치게 된 거죠. 이 점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설의 끝부분에 나온 ‘계속해서 말을 할 거야’라는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치유받기 위해서는 받은 상처를 감추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내면은 물론 타인의 내면까지 들여다봐야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달랠 수 있으니까요.” 

소설 부문 심사평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간신히 일어서는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소설 부문은 풍성했다. 문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응모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언어 그리고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젊은 문학도들이 건재하고 이들이 존재하는 한 한국문학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신승민의 「반정과 야심」은 능숙한 솜씨로 ‘실정과 반역’의 양면을 함께 보여주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역사소설이었다. 기성세대의 짐작보다도 오늘의 대학생들이 가진 역사적 상상력이 결코 빈곤하지 않음을 보여주어서 반가웠다.

김무영의 「우동을 먹자」, 김진우의 「볼드모트의 아이들」, 박규민의 「백색왜성의 언어」, 박혜은의 「마마보이」, 오선희의 「웃자란 풀들을 헤치고」, 최지혜의 「설단」, 김창욱의 「어떤 말을 할까」는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내면적 상처와 사랑을 다룬 소설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개성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김창욱의 소설은 남녀, 두 주인공의 상처를 차분하고도 집요하게 추적해나가는 힘이 뛰어났다. 두 사람이 겪고 견뎌낸 성장의 과정은 아프고 쓰라리지만 ‘사회적인 고통’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해결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이 지난 세대들보다 결코 작지 않지만 그 어떤 것도 공동의 고통, 공동의 의제가 되지 못하고 개개인의 고통과 문제로 남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함께 겪는 아픔이 있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함께 싸울 수도 있었던 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 비하면 참으로 행복했던 셈이다. 아픔과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개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오늘의 젊은 세대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남녀는 내 것 아닌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아픔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어깨를 빌려주며 간신히 일어서려 하고 있다. ‘어떤 말을 할까.’ 희미하지만 정직한 희망의 근거가 거기에 있었다.

     
 

 

방재석 교수 문예창작전공
     
 

< 저작권자 © 중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김채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중앙대학교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B205호 중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881-7358~9 | 팩스 : 02-817-9347
인터넷총괄책임 : 편집부국장 | 게시판총괄책임 : 편집부국장 | 청소년보호책임자 : 편집부국장
Copyright 2017 중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cau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