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위협하는 불안사회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5.11.30 0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조선(hell+朝鮮)’. 지금의 20대 청춘들이 대한민국을 부르는 말로 그 속에는 고통과 절망, 체념과 분노 등이 얽히고설켰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오력’이라는 말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사용됐다. ‘노오력’은 취업난 같은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개인의 노력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풍자하는 단어다. ‘헬조선’에서 태어나 ‘노오력’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미래가 두렵다는 학생들,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들을 만나 보았다.
 

미래가 불안하다
  “자립, 결혼, 출산 등을 위한 첫 단추는 취업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취업이 어려우니까 신입생 때부터 졸업을 걱정하는 모습이 보여요. 10년 전만 해도 여유가 있었는데 말이죠.”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좁은 취업문으로 학생들이 자립, 결혼 등 그 이후의 삶은 생각할 엄두도 못 낸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이 필요하지만 청년실업자가 31만명에 육박하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장착하고도 일을 찾기 힘들다.

  황선재 교수(사회학과)는 학생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부담을 느끼는 원인으로 ‘좌절 경험의 반복’을 꼽았다. “직업을 가지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죠. 주변을 보더라도 충분한 노력을 하지만 취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은 점점 미래를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되풀이되는 절망을 직접 맛보거나 간접 체험하며 미래를 체념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허성호 강사(심리학과)는 불안의 핵심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스펙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요.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모른 채 덮어놓고 노력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면서도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는 토익점수와 같은 획일화된 모범답안을 조장하는 사회가 맹목적인 취업 경쟁을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불안감,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이병훈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해지면 학생들이 ‘현실안주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상이 어느 정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할 수가 있죠.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불안한 내일을 생각하기보다 현재에 안주하는 행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황선재 교수는 학생들의 불안과 좌절이 커지면 사회에 더 이상의 혁신이 나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혁신은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도전하는 힘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학생들은 도전 정신을 펼칠 기회조차 없죠.” 덧붙여 설령 기회가 있더라도 이런 사회에서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하기보다 고용주의 기준에 맞추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경숙 교수(심리학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질 경우 자신과 환경에 대한 불신이나 분노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상태는 개인의 인지적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더 나아가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면 자포자기를 하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할 수 있어요.”
 

완주를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 발판이 취업인 만큼 구조적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선재 교수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직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를 다방면에서 창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정책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면서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강요하죠.” 불안정한 일자리를 만드는 현대사회는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킨다는 지적이다.

  이병훈 교수는 취업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패자부활전’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 경쟁에서 누군가는 탈락할 수밖에 없어요. 핵심은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도전할 수 있게끔 사회가 일종의 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실패가 곧 끝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패자부활전의 예시로 구직 단념자나 실업자를 위한 상담 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허성호 강사는 학생들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많은 학생들이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지만 정작 대부분이 자신의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 상태에 놓이게 할 뿐입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와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골인 지점에 도달하기 힘든 사회에서 무엇을 위한 마라톤인지 모르고 달리는 학생들. 그들이 샛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