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부재 속, 삭막함만 남았다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5.11.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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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 관계 실태 진단

 
대학 내 ‘똥군기 문화’ 논란이 지속되면서 최근 대학은 권위주의를 지양하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요즈음 선배는 후배에게 ‘씨’라는 호칭은 물론 존댓말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위주의를 없애며 권위가 같이 사라지는 현상도 발생했다. 과방을 더럽게 쓰거나 길 가다 마주쳤는데 ‘쌩’하고 지나치는 후배가 있어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넘길 뿐이다. ‘반(反)권위’와 ‘탈(脫)권위’의 애매한 위치에 놓여버린 현 대학가,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각 전문가들을 만나 보았다.

자존심에 민감한 학생들
지위나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박준성 강사(심리학과)는 최근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이러한 추세가 심해졌다고 설명한다. “기술의 발달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개인의 영역이 중요해지면서 적절한 조언도 간섭으로 들리는 것이죠.” 개인화된 시대에서 충고나 조언은 지나친 간섭이나 참견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라는 분석이다.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타인의 지적을 ‘꼰대질’이라며 기피하는 현상의 원인을 학생들의 지나친 자존감에서 찾았다. 학생들이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기중심적으로 키워졌다는 설명이다. “가정교육뿐만 아니라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는 식으로 교육을 받아요. 자기만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 박힌 학생들에게 아무리 잘못된 점을 일러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존감에 상처 입기 싫은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지적을 받아도 반성하기보다는 지적한 사람을 ‘꼰대’라 칭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선배의 자리는 어디에
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곧 선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선배로서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고 싶지만 꼰대라는 눈초리를 받을까봐 애써 삼키는 것이다. 이병훈 교수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꼰대를 없애면서 선배라는 인간관계도 같이 깨져버린 현 상황을 지적했다. “누구든지 위계가 높다는 이유로 훈육하려는 소위 ‘꼰대짓’에 대한 반감이 있어요. 그 반감이 더욱 큰 요즘 같은 상황에서 선뜻 나서서 선배의 행동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꼰대가 되기 싫은 선배들은 나름의 눈칫밥을 먹고 있었다.

선배가 나서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김성윤 강사(교양학부대학)는 ‘이미지 관리’를 꼽았다.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의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싫은 소리를 하는 악역을 맡기 꺼린다는 것이다. “쓴소리를 해서 이상적인 선배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이미지가 나쁘게 형성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생겨요. 게다가 지금 학생들은 이러한 행동을 하면 괜히 욕까지 먹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총대 메기를 피합니다.”
“우리 사회는 옳은 말이나 행동을 한 사람이 인정받기보다는 눈총을 받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웬만해서는 그러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후배들에게 곧은 소리를 하기 힘들어요.” 이장주 교수(심리학과)는 옳은 지적을 해도 비난받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가 선배들의 입을 막는다고 말한다.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있어야 할 대학가에서 학생들은 ‘꼰대’라는 비난이 두려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 내 약해진 권위에
흔들리는 대학 공동체

 

멸종 위기의 대학 공동체
이에 대학의 선후배 관계는 점차 소원해지고 있었다. 이병훈 교수는 냉소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대학 내 공동체의 개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대학사회에는 서로 지켜야 할 예의나 풍습이 있기 마련이죠. 예를 들면 과방을 깨끗이 쓰거나 서로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인간관계가 깨지게 되면 예의나 풍습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겁니다.” 공동체 의식이 지금보다 비교적 강했던 과거 학생들은 조직의 규칙 준수에 더욱 민감했지만, 인간관계가 파편화된 현대 대학사회에서는 개인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킹콩북 심성보 대표는 선배라는 권위의 부재가 학생들이 다른 형태의 권위를 요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헬스, 학원 등 상업화된 서비스를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곤 하죠.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을 이끌어주니까요.” 그는 학생들이 파편화된 인간관계로 인해 생긴 휑한 부분을 대학 밖에서 소비로 채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결의 열쇠는
이병훈 교수는 권위주의를 없애면서 선배라는 권위도 약해져버린 상황을 지적하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인만 지나치게 중시하는 학생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눈앞의 학점이나 스펙만을 바라보느라 공동체의 중요성을 무시할 때가 많아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덧붙여 그는 후배에게 충고해줄 때는 존중하는 태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심성보 대표는 후배에게도 자기반성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싫은 소리를 들어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싫은 소리도 상처받기 싫다고 무조건 튕겨내서는 안 돼요. 지적을 받았을 때 덮어놓고 꼰대라며 피하기보단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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