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옷차림과 노트북 가방. 카페에서 만난 배보현 학생(물리학과 4)의 첫인상은 워커홀릭이었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 빛나 보인다’는 말처럼,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빛이 났다. 발명을 넘어 음악과 창업까지, 일에 열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팀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를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박지수 기자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
  휴학을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에게 휴학은 할 일을 찾기 위해 텅 빈 캐리어를 끌고 떠난 여행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물쭈물하며 망설일 때,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당차게 발걸음을 뗐다. 여행의 과정은 고됐지만 보람을 느꼈다는 그녀. 여정을 서서히 매듭짓고 있는 지금, 그녀의 캐리어에는 발명과 음악, 그리고 창업이라는 기념품이 들어있었다.
 
 
▲ 그녀는 웬만한 시제품은 직접 만들곤 한다.
물리학도, 발명에 눈뜨다

  발명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휴학 기간에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려 했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계획을 되돌아봤다. 재밌고 다양한 것에 도전해보자는 결심을 한 그녀는 ‘발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처음엔 관련 지식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발명 강연들을 수소문해 직접 찾아다니며 배웠죠. 강연이나 네트워킹 파티에서 인연을 맺은 전문가들을 일대일로 만나며 조언을 얻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발명에 첫 걸음마를 뗀 그녀는 본격적으로 발명대회에 참여해 발명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제품의 문제점 파악과 기존 발명품에 대한 보완점 연구까지. 한 개의 발명품을 만드는 데는 많은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심지어 최종적으로 디자인한 시제품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일상 속 불편한 점을 찾고 부품을 구한 뒤 공작소에서 직접 만드는 과정이 계속되니까요.”

  그녀의 열정 덕분인지 ‘2013 한국사이버국제발명천재대회’에서 금상과 캐나다 특별상을, ‘제2회 대한민국 발명가 대상’에서 여성분야 발명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만하지 않았다. “발명품을 완성했을 때 자신감도 생겼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경계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허를 수십 개 낸 사람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데, 성취감에 빠져 자만하게 되면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죠.”

그녀는 발명에만 만족하지 않고 특허에도 발을 넓혀갔다. 개인 출원을 위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가 직접 출원하는 법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변리사를 통하면 비용이 발생하거든요.” 그녀는 실제로 변리사들이 작성한 출원서들을 보며 독학했다. 발명에 눈을 뜬 물리학도는 특허까지 섭렵했다.
  
또 하나의 뮤즈, 음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박준 시인의 시집이다. 이런 독서 활동은 작곡활동의 원천이 됐다. 그녀는 시집을 읽으며, 밤하늘의 야경을 보며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볼 때도 항상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작곡에 쓸 감정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발명 전문서적을 보며 아이디어 발상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죠.” 일상에서 작곡의 영감을 얻는 습관 덕분에 다양한 색깔을 가진 곡을 만들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휴학하기 전부터 몸담고 있었던 중앙대 내 작곡 동아리 ‘뮤즈’에서 키보드와 랩을 맡고 있는 팀장이기도 했다. 그녀는 작곡을 하며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원래는 잔잔한 템포의 노래를 즐겨들어요. 하지만 뮤즈에 있을 때는 밴드 세션이 있어 템포가 빠른 밴드 곡을 주로 작곡했죠. 특히 공연에 쓰일 가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잔잔한 느낌보다 신나는 느낌으로 쓰곤 해요.”

  “발명을 할 때 시제품을 제작하잖아요. 작곡을 할 때도 구성과 짜임을 고민하고 연습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둘 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발명품에 대한 발상을 떠올리듯 악상을 생각하는 그녀는 머리쓰는 일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크리에이터였다.
 
▲ 밴드 세션과 합주를 맞춰보고 있는 그녀.
 
 
다음 정류장은 ‘창업’역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바쁘다. 지금은 휴학할 때부터 몸담고 있던 ‘특허출원협동조합(협동조합)’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저작권 관련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발명을 하다 보니 특허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어요. 특허출원을 공부할 때 참여했던 강의에서 강연자로 나오셨던 분이 지금 협동조합의 이사님이에요. 그분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 2014년 상반기 협동조합을 설립할 때 조합원으로 참여하게 됐죠. 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포럼에서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며 창업에 대한 조언을 받기도 해요.”

  현재 그녀는 재학생 신분이지만 산업 인턴으로 학교가 아닌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3D 프린터 관련 개발팀에 있을 때 만났던 개발자와의 인연으로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 “산학 인턴으로 일하면서 앱 창업 팀에서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3D 프린터 관련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앱 개발을 하느라 일이 많죠. 그래서 온전히 하루를 앱 개발에만 힘쓸 수 있는 주말이 좋아요.”

  그녀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개발한 앱 ‘GRAY EAT’은 회식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식당 예약 기능을 제공한다. 앱을 통해 사용자가 식당 측에 예약 가능 여부를 물으면 20분 이내에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내년 3월에는 중앙대 학생들과 중앙대 주변의 음식점을 중심으로 베타서비스를 제공하고 차후 건국대 등 타대로 사업을 확장시킬 계획이다.

  이 앱의 아이디어 역시 일상에서 나왔다.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를 앱에 도입한 것이다.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식당에 단체 예약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식당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회식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요를 파악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로웠죠.”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뢰를 줄 수 있는 대표가 되는 것이다. “팀원들이 회사 일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게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일 수도 있죠. 제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의욕이 저하될 테니까요.” 그녀에게서 팀원들을 책임지는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발명이나 작곡을 하는 그 순간에는 정말 재밌지만 그걸로 끝이에요. 그보다는 제가 이뤄낸 결과물이 사회에 변화를 주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더 좋아요. 예를 들면 제가 만든 앱을 통해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요.” 그녀는 자신의 취미인 발명과 특허를 밑바탕으로 창업까지 도전했다.
 
▲ 3D 프린터 모델링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제공 배보현 학생
 
여러 개의 우물을 깊게 팔 수 있는 비결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을 비웃듯 그녀의 열정과 집중력은 몇 개의 우물도 깊게 팔 수 있게 도왔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하는 일을 빨리 끝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잖아요. 남들이 3시간 동안 할 일을 1시간에 끝내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발명·음악·창업까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모두 해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취미를 일처럼 하자’는 그녀의 신조에 있었다. “취미를 일처럼 해야 그 취미가 지속되더라고요. 일처럼 하지 않으면 바쁠 때 제일 먼저 취미를 포기하게 되니까요.” 자투리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일에 열정을 쏟았던 만큼 취미에도 똑같이 열중했던 것이다. 취미와 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녀가 다음 여행지에서는 또 어떤 기념품을 가지고 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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