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을 빼곡하게 적던 다이어리는 스마트폰이, 선생님의 수업 내용을 적던 공책은 노트북이, 하루를 정리하던 일기장은 블로그나 SNS가 대신하는 현대사회. 하지만 최근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문자 사이로 사람들의 감성을 담은 손글씨, ‘캘리그라피’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일고 있습니다. 흰 종이 위에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예술적 표현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죠. 이번주는 평소 손글씨에 관심이 많던 최승민 기자가 직접 캘리그라피에 도전해봤습니다. 바로 위의 ‘세 얼간이의 문화체험기’, 옆의 문장, 그리고 아래 기사들의 제목 모두 최승민 기자가 직접 쓴 캘리그라피인데요. 아직 서툴지는 몰라도 글자들에 어떤 마음을 담았을지 헤아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최정문씨는 허난설헌의 ‘감우(感遇)’를 캘리그라피로 재해석했다.

일상의 감정을 표현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글자

 
 주위를 붉은빛으로 물들였던 단풍이 가을비를 잔뜩 머금고 떨어지고 있다. 유난히 짧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가을은 언제나 그리운 계절이다. 겨울의 문턱이면 지나간 가을이 그리워지듯 문득 사라진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손수 쓴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도 그중 하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손으로 쓴 글씨는 한때의 추억거리로 잊혀갔다. 하지만 그리운 가을이 돌아오듯 손글씨도 다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캘리그라피’라는 새 옷을 입고 말이다.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쓴 글자체를 말한다. 번짐, 여백 등 여러 가지 효과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자판만 누르면 되는 디지털 기기와 차별적인 부분이다. 쓰는 사람에 따라서도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지만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글자의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펜은 기본이고 칫솔이나 나무젓가락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훌륭한 도구가 된다. 이를 통해 캘리그라피는 단순한 취미생활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자에 감성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캘리그라피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최민근 학생(산업디자인전공 2)은 최근 캘리그라피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다 보면 문장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문장이 담고 있는 감정도 필체에 전달된다. 디지털 기기에선 느낄 수 없는 손글씨만의 감성,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이유다.
 
 캘리그라피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정문씨는 한글의 매력에 매료돼 캘리그라피에 입문하게 됐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니 다양한 한글의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의성어나 의태어 등 톡톡 튀는 표현을 보니 자연스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캘리그라피를 하나의 디자인으로만 생각했던 최정문씨의 생각은 이내 달라졌다.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이를 표현하기 위한 감성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감수성은 점차 풍부해졌다. 그렇게 건조했던 그녀의 마음에도 촉촉한 봄비가 찾아왔다.
 
 캘리그라피는 소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한다. 박선주 학생(신문방송학부 2)은 노랫말을 적기 위해 가사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듣는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됐다. 박선주 학생에게 일상은 캘리그라피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였다.
 
 “집중해서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덧 잡념이 사라지곤 해요.” 박정인 학생(고려대 한국사학과)은 생각이 복잡할 때면 혼자서 글자를 적곤 한다. 집중해서 글자를 적는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를 쓰다 보니 어느덧 성격까지 차분해졌다는 박정인 학생. 이런 장점 덕에 최근 학계에서는 캘리그라피를 교육 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캘리그라피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할 수 있고 배우기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 최근 SNS의 발달과 맞물리면서 캘리그라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김병욱 교수(조선대 디자인공학과)는 “패션, 출판, 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캘리그라피가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득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진다면 손글씨를 써보면 어떨까. 초성, 중성, 종성 하나에도 정성을 담다보면 손수 편지를 건네던 그때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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