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친구들의 성적인 농담에 불쾌했던 적이 있나요? 불쾌한 적이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며 대처했나요? 이번 주 학내 성폭력에 관한 기획을 준비하면서 인터뷰했던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기서 정색하면 분위기를 깰 수 있으니 아무렇지 않게 넘겨요. 그만하라고 하면 쿨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기분이 나빠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다니.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쿨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깔려있었습니다. 포인트는 아무렇지 않은 ‘척’입니다. 하긴 ‘19금 드립’쯤은 가볍게 받아쳐야 멋진 성인으로 보이는 시대 아닙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기획을 준비하기 전, 기자 역시 성적 농담에 대해 큰 문제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인지하지 못했을 뿐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성폭력들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비판의식 없이 봤던 ‘SNL 코리아’와 같은 개그 프로그램도 새롭게 보이게 시작했죠. 여성의 외모나 신체를 섹슈얼한 코드로 활용하고 남성의 성적 욕망 역시 개그로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남성의 신체 역시 개그의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 간판 섹시스타를 내세워 섹시한 역할에 고정하고, 남성의 몸을 콩트의 내용과 상관없이 클로즈업 시킨다던지 말입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문득 즐겁다는 표정으로 유쾌하게 웃고 있는 방청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역시도 그 방청객들처럼 성적 코드에 대한 비판 의식 없이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성적 코드가 누군가에게는 불쾌한 표현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한 교수님은 인터뷰 중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은 한 번도 성희롱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당한 행위가 성희롱인 줄 모르기 때문이죠”라고 말해주셨습니다. 사실 기자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성추행과 비슷한 일을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성희롱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도 쿨하게 보이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수도 있죠.

  쿨하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쿨한 것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오늘날, 이 단어가 함께 쓰여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넘어 버린 것도 같습니다. 그 누가 자신을 향한 성적 농담이 던져졌을 때 그냥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을까요? 모든 것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쿨한 시대에도 사실 연연해야 할 것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쿨의 미덕은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것 아닐까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으면서까지 쿨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젠 ‘19금 드립’쯤은 성희롱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멋진 성인으로 보이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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