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즈(please), 우리 플리마켓 한 번 들렀다가요
  • 최승민 기자
  • 승인 2015.11.16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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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 체험기
 

 
상업화가 집어삼켜 버린 플리마켓
즐기려는 ‘너’, 이 구역 접근 금지

아이들이 달고나를 만드는 아저씨 곁으로 몰려든다. 100원이 부족해도 선뜻 달고나를 내어 주는 아저씨. 헌 책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책을 한 권 얹어 주는 아줌마. 물건을 사지 않고 주변만 맴돌아도 사람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벼룩시장’의 풍경이다. 세월이 흐르면 낡은 것이 새 것으로 대체되듯 벼룩시장은 ‘플리마켓(flea market)’이라는 새 옷을 입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기자들은 과거의 따뜻한 기억을 품고 플리마켓에 참여하기로 했다. 단순히 이윤을 위해 물건을 판매하기보다 플리마켓을 찾는 사람과 소통하길 원했던 것이다. 마침 지난 9월 중앙대에서 열리는 가을 문화제 ‘C:autumn’ 플리마켓 행사에 학생 ‘셀러(seller)’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팔 물건은 선정하지도 않고 일단 신청부터 했다.

  무엇을 팔아야 할지 정하지 않았으니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 기자들. 고민 끝에 따뜻한 차, 꼬치, 팔찌로 선택의 폭을 좁혔지만 어느 고객층에 집중해 플리마켓 부스를 운영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판매가 목적은 아니었으나 우선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이목을 끌 제품을 준비해야 했다. “팔찌가 제일 무난하잖아. 그리고 플리마켓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오니깐 팔찌로 가자.” 마케팅을 전공하는 선배 기자가 내린 선택이었다.

  플리마켓을 진행하는 당일, 편집국에 모인 기자들은 주문한 ‘파라코드 팔지’ 100개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팔 수 있을까.’ 막막한 생각이 가득했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반만 팔자는 소심한 목표를 세웠다. 가득한 팔찌와 사람들을 만날 기대를 한 아름 안고 편집국을 나섰다.

  플리마켓 부스 자리를 잡는 것은 선착순이었다. 느지감치 왔는데도 차지한 자리가 생각보다 좋았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 앞자리였다. 게다가 바로 옆에 햇빛을 가려줄 나무까지 있으니 이곳이 플리마켓 부스의 명당이었다. ‘세얼간이의 플리마켓, 팔찌 하나 3000원.’ 11시부터 시작된 플리마켓 행사 시간에 맞춰 기자들의 부스 옆으로도 차차 셀러들이 자리 잡았다. 옆을 슬쩍 엿보니 어렴풋이 테이블 위에 팔찌가 보였다. 반대편도 팔찌다. 예상보다 많은 경쟁자에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압도당했다.
옆에 있는 부스보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팔찌를 팔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가볍게 나풀거리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배워 온 심리학 지식도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소비자 심리, 임상 심리 연구 결과가 떠올랐지만 시장은 두꺼운 낯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다. 말을 걸기는커녕 눈도 마주치기 힘들어 선글라스를 끼고 나왔는데 이것은 ‘신의 한 수’였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창피함을 어느 정도 줄여줬다. 그렇게 멀뚱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30분쯤 보냈을까. 안면이 있는 친구 두 명이 부스 앞으로 왔다. “날도 추운데 수고하네.” 친구의 말보다 더 고마운 건 팔찌를 잡아 든 손. 첫 판매는 그렇게 우정으로 성사됐다.

  친구가 떠난 뒤 시간은 흘러 정오가 됐다. 유동인구는 많아졌는데 기자들의 부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선글라스 뒤에 불안한 눈동자를 숨기던 중 한 외국인이 부스 앞에 멈춰 섰다. 친구가 다녀간 이후로는 첫 손님이었다. “How much is it?” 팔찌를 보고 다짜고짜 가격부터 물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가격을 말해주니 3개를 잡고 만원을 꺼냈다. 처음 성사된 대형 판매에 “Thank you”를 연신 외쳤다.

  외국인이 다녀간 뒤 또 몇몇 친구가 팔찌를 집어갔지만 테이블 위에 팔찌 개수는 도통 줄지를 몰랐다. 가격을 1000원으로 낮춰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계를 보려고 고개를 들 때 우연히 바로 옆의 선배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음은 일맥상통했다. “더 이상 못하겠다. 접자.” 애초에 3시까지 있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조금씩 팔찌를 테이블 밑으로 숨겼다. 지나가는 학생, 그리고 남아있는 팔찌의 모습을 더는 지켜 볼 수 없는 까닭이었다.

  편집국으로 되돌아와 통 안에 남겨진 팔찌를 바라봤다. 셀 수 없이 많은 팔찌가 플리마켓에서 인정받지 못한 기자들의 상황을 대변해줬다.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좋은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약속도, 반 이상 팔겠다는 다짐도 지키지 못한 채였다.

  첫날 마신 고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기자들. 이튿날의 플리마켓에는 ‘바이어(buyer)’로 참여해봤다. “손으로 직접 만든 비누에요. 보고 가세요.” 기자들이 떠난 뒤에도 학교는 상인들로 가득 찼다.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봤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에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 최이진 학생(심리학과 2)은 “학교 축제면 학생의 사정에 맞게 저렴한 물건을 팔 줄 알았다”며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구경에 만족해야 하는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축제를 즐기기보다 이윤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우선인 외부 상인들이 플리마켓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물건들은 플리마켓이 아니라 상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플리마켓엔 사람이 많았지만 정겨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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