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에 가려진 성폭력의 민낯
  • 김수인 기자
  • 승인 2015.11.15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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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성폭력 전문가 진단

나만 좋은 성적 표현
찾기 힘든 존중과 배려
성폭력에 속수무책인 대학생

“악마 같은 놈.” 뉴스에 나온 성추행 범을 보면서 흔히들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악마들은 비단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사회에서도 동기, 선배, 친구 등과 같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성추행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암암리에 일어나는 ‘악마 같은’ 짓은 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그 해답을 알기 위해 각 전문가를 만나 들어보았다.
 
올바른 성 의식이 부재한 사이
그 자리를 채운 성폭력
친할수록 가깝다고 하지만 사실 친한 사이일수록 먼 사이보다 더 못 했다.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친밀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좋아해서 한 스킨십도 누군가에겐 불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친밀할수록 더욱 발생하기 쉽죠.” 실제로 대부분의 성폭력은 낯선 관계보다 친한 관계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성폭력의 핵심이 권력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선배와 후배 등의 위계에서 내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상대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상대방이 원하는 줄 알았다는 변명을 하죠. 이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한 행동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적은 수직적인 관계일수록 쉽게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유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연구센터 이미정 센터장은 교육의 부재를 꼽았다. “어렸을 적부터 예절에 관해 배우지만 학생들이 성과 관련된 예절은 잘 몰라요. 내가 좋다고 한 행동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덧붙여 대학 내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처 입은 나의 말문을 막은 건
망치고 싶지 않은 인간관계
많은 학생들은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그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이나영 교수는 이를 사회적 낙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과 관련된 모든 범죄는 피해자에게 낙인이 찍힙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성범죄가 발생해도 말을 잘 하지 않죠. 특히나 성폭력은 증거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불리할 수 있어 신고하기를 꺼립니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당해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하면 비교적 쉽게 신고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친한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면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그 사실을 더욱 알리기 힘들어합니다.” 이미정 센터장은 성폭력을 쉽게 알릴 수 없는 주요 원인으로 ‘인간관계’를 꼽았다. 성폭력을 알리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끊는 고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학생들은 성추행을 당하더라도 쉽사리 대응하기 힘들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입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성폭력을 당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알리는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성폭력을 당했을 때, 올바른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일기와 같은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그 후 믿을만한 지인에게 알려야 해요. 성폭력은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와 진술과 지인의 진술이 일관되면 증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지인이 피해자의 진술을 들을 때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지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경 소장은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성폭력를 당했을 때 바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피해자가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제 3자에게도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꼭 학내의 성폭력 상담소나 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또 다른 악마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학생들이 성폭력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정 센터장은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는 문제를 제기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학생들도 많아요. 학교 차원에서 교육을 하면서 친밀한 관계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한편 이나영 교수는 성폭력의 예방을 위해 학생 차원에서의 노력을 강조했다. “사회학과는 학과 행사를 할 때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주최합니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며 경각심을 갖는 것이죠.” 실제로 몇몇 학과에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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