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역사
  • 김다혜 기자
  • 승인 2015.11.09 12: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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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 해설가, 성우 등 세상에 말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많다. 통역사는 자신만의 말을 맛깔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온전히 옮겨 준다는 점에서 이들과는 다르다. 막 국제회의의 통역을 마치고 만난 정수빈 학생(영어영문학과 2)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것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12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지 4년이 지났지만 휴학만 2년째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서 프로의식이 느껴졌다.

  주변 상황에 따라 몸의 색깔을 바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카멜레온. 카멜레온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과 긴 혀로 먹잇감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프리랜서 통역사로 활동하는 그는 카멜레온처럼 모든 상황에 적응하고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꿈을 향한 과감한 발걸음
  “격식을 차려야 하는 국제회의에서는 점잖게, 스포츠 행사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움직였죠.” 어떤 상황이든 금방 적응하는 그의 습성은 어릴 적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며 생겼다. 그가 딱딱한 국제회의부터 신나는 페스티벌, 스포츠경기까지. 어느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도 막힘없이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도 유년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경험은 진로 결정에 큰 도움을 줬다. “미국에서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친한 동생이 영어를 못해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영어로 대신 통역을 해줬는데 제 덕분에 동생이 외국인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죠. 어린 나이였지만 통역이 가진 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말’이 가진 힘을 알게 된 그는 통역사라는 꿈을 꾸며 성장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본격적으로 좋은 먹잇감을 찾아다녔다. “국제기구 통역사가 최종목표에요. 대학생이 되니 통역과 관련된 재밌는 활동들이 많더라고요. 눈앞에 있는 기회를 놓칠수 없어 휴학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죠.” 그는 학교에 공문을 보내 1학년 1학기 때부터 휴학을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신입생 기분을 만끽하던 중에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VIP통역사로 뽑혔어요. 5월부터 8월까지 여수에서 진행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휴학이 불가피했죠. 1학년 1학기를 휴학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대학생활보다 값진 경험이라 믿고 휴학을 결정했어요.”

  스무 살에 만난 미래의 나
  동기들과 교정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겠지만, 교정 밖에는 그가 잡고 싶은 먹잇감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는 국제기구 통역사라는 진로를 설정하고 국제·외교에 관한 활동을 찾아다녔다.

  2012년에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정상회의)’에서 국제통역사들의 의전을 맡기도 했다. 국제통역사가 되고 싶은 그에게 정상회의는 꿈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회의장에서 각국 대표들의 말을 쉴 틈 없이 정확하게 통역해주는 국제통역사의 모습은 그가 꿈꾸던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에 시작한 첫 행사에서 통역사로서 가장 완전하게 성장했을 때의 제 모습을 본 거였죠. 동시통역 장비를 만져보고 국제통역사의 활동 모습을 직접 본 것도 처음이었어요. 그때의 경험은 제 통역사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EU, CIS 등 국제지역협력기구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2014년 2학기에도 휴학을 택했다. 지난해 ‘2014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의 국별의전팀으로 아세안 사무총장의 의전을 맡았기 때문이다. “외교의 얼굴인 의전은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절차죠. 의전 활동을 하면서 뛰어난 외교력보다 상대 나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외교의 목소리인 통역은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요. 토씨 하나라도 잘못 전달되면 국가 간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3개국 이상의 언어로 진행되는 국제회의에서는 발표내용을 기준언어로 한번 통역한 후 다시 각 국가의 언어로 통역하는 릴레이 통역방식을 이용한다. 이를 이용하는 국제회의에는 발표자의 말을 가장 먼저 기준언어로 통역하는 기축언어 통역사가 있는데, 발표자와 각 나라의 청중들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지난 8월 한국외대에서 열린 ‘제39차 모의UN총회(모의총회)’에서 그는 한국어통역사로 기축언어 통역사의 역할도 수행했다. “영어로 발표하는 학생들의 말을 가장 먼저 듣고 통역사들에게 한국어로 전달했죠. 특히 릴레이 통역은 발표자와 통역사의 싱크로율이 완벽해야 해요. 싱크로율이 통역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부담감을 크게 느꼈죠.”

  모의총회는 통역사의 능력뿐만 아니라 수석통역사로서의 역량도 길러줬다. 그곳에서 그는 제39차 통역이사회장을 맡아 통역사들의 기기교육과 통역교육을 도맡았다. “통역사들 간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모의총회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국제회의에서 보던 수석통역사의 역할을 맡아 기뻤죠.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개인평가뿐만 아니라 함께 한 통역사들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가 격식만 차릴 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느 20대처럼 친구들과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클럽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일하는 20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즐겨듣는 음악과 함께 통역활동을 했다. “2013년 World DJ Festival에서 내한하는 아티스트의 수행통역사를 뽑더라고요. 바로 지원했죠. 그런데 이게 웬걸. 수행통역을 맡았던 DJ와 대기실도 같이 쓰고 심지어 무대에도 함께 올라갔어요. 즐겨듣는 음악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통역활동을 했던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죠.” 뿐만 아니라 그는 F1 그랑프리 선수단, 아시안게임의 수행통역사로 활약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다
  “지난해 우리나라로 난민신청을 한 이집트 가족의 통역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리비아 내전이 발생하면서 주변 국가들도 전쟁의 위험에 빠졌었죠. 그 가족의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살해 협박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난민신청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통역서비스를 제공했죠.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능력을 활용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이었어요.” 그는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통역해 전해줄 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느낀다고 한다.

  세상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어 하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던 그. 휴학기간에 대학원에서 전문법률통역과정을 이수하고, 보건복지부 산하의 의료전문통역사 양성과정을 이수했다. 물론 전공분야가 아닌 전문적인 법률용어와 의학용어를 외우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법무부의 외국인 형사재판 통역요원, 대학병원 국제의료센터 통역요원으로 활동하면서 통역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북한 인권 세미나’의 통역사로 참여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개국 대사관들과 수많은 외신들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한 탈북자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밝혔어요. 그때 저는 매스컴으로나 듣던 북한의 실상을 처음 알게 됐어요. 탈북자의 말을 세계적으로 파급력 있는 대사관들이나 외신들에게 더욱 진실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탈북자나 난민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본 경험은 훗날 그가 이루고 싶은 활동의 기반이 됐다. “말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마다 보람을 느끼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언어의 장벽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기반을 마련해 언어의 장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 제 궁극적인 목표에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20살에게는 많은 것들이 주어진다. 하지만 ‘휴학’은 대학생에게만 주어진다. 대학생들은 공식적으로 주어진 ‘휴식기간’을 누릴 자격이 있다. 12학번인 그가 2015년이 된 지금까지 학교를 다닌 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에게 휴학에 대한 부담감이나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대학생에게 주어진 휴학이라는 기회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학창시절을 특목고, 대학 입시만 바라보며 살았어요. 제가 관심 있던 통역분야에 시간을 쏟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게 남더라고요. 그래서 보상의 의미로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휴식을 인정해주는 휴학제도를 부담이 아닌 기회로 활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휴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 “1학년 때 1년간 휴학했지만 부담스럽거나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에서 가끔 여유를 가질 시기가 필요하잖아요.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휴학은 진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부담 갖지 말고 휴학이라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대학생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를 그냥 놓치기는 아깝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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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 2015-11-30 19:16:52
우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