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심은데 ‘꽃’ 나는 게릴라 가드닝
  • 박지수 기자
  • 승인 2015.11.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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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 체험기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가 도시의 황량함을 가중하는 10월, 우리는 흑석동과 상도동의 삭막한 도시 환경에 저항하기 위해 위험한 게릴라 조직을 만들었다. 군대에서 21개월간 단련한 신체와 꽃이라는 치명적 매력의 무기, 치밀한 작전으로 뭇 사람들의 일상에 ‘심쿵’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이 목표다. 고학번 복학생으로 이뤄진 조직 특성상 중앙대 주변의 지형지물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으므로 매끄러운 전술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긴다는 확신이 없으면 공격하지 않는다. 시간이 됐다. 세 얼간이들의 게릴라 가드닝, 작전 개시다.

1단계, 작전 준비: 합리적으로, 저렴히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하는 게릴라 가드닝이기에 적합한 꽃을 선정하는 작업은 필수다. 험한 곳에서도 군말 없이 잘 자라고 되도록 눈에 띄는 녀석이 좋다. 다만 너무 화려한 꽃은 견물생심을 부르니까 피하도록 하자. 작전 장소로 버스정류장을 물색해 두었으므로 그곳에 어울리는 자줏빛 들국화를 골랐다. 음침한 골목을 빛내줄 화사한 꽃으로는 포인세티아가 낙점됐다. 그 꽃말처럼 축복을 한가득 투하할 것이다. 화분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학내 카페에서 다 쓰고 버린 일회용 컵을 얻었다. 신속한 설치를 위해 컵에는 구멍을 뚫어 케이블 타이를 연결해 두었다. 가지고 있던 분양토를 컵에 담고 국화의 뿌리를 조심스럽게 나눠 담았다. 포인세티아는 한 컵에 한 뿌리를 통째로 넣었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작전의 은밀한 수행을 위해선 밤이 좋을 터,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2단계, 작전 대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
작전 개시일인 10월 29일, 세시부터 이따금 비가 내리더니 저녁 무렵이 되자 대차게 쏟아졌다. 아뿔싸, 소나기인 줄 알았던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원활한 작전은 힘들다. 또 간밤에 꽃이 상할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시행하려던 작전을 멈추고, 작전 지역을 정찰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화분을 설치할 자리를 확정하고자 세 기자들은 비를 뚫고 거리로 나섰다. 제1구역, 흑석동 약국 앞 마을버스 정류장.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지만, 늘 쓰레기가 더미로 놓여있는 탓에 함부로 대하기 쉬운 구역이다. 잘 보이는 자리에 꽃을 놓아 환경의 변화를 도모해볼 수 있겠다. 제2구역, 상도역 부근 마을버스 정류장. 오전이면 지각하지 않으려는 학생들로 매일같이 숨 막히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기회만 되면 뒷문으로 탑승하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소리 없는 전장이다. 힘없이 오르는 등굣길에 조그만 여유를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제3구역, 후문 마을버스 정류장.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쳐있는 학생들의 마음에 조금은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제4구역, 205관(학생회관) 옆 아파트로 이어지는 골목. 어둡고 음침해 범죄가 일어날 것만 같은 장소를 꽃으로 이어진 꽃길로 만들어볼 것이다. 정찰 완료. 엄숙한 자세로 다음날을 기다렸다.

3단계, 작전 수행: 소리 없이, 신속하게
날이 저물었다. 우리의 치명적인 무기들을 살펴보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늦가을 바람이 매서웠던 것일까, 샛노랗던 들국화의 중심부가 원래의 빛을 잃어버렸다. 작전을 하루 늦춘 것이 다시금 아쉬웠다. 양손에 화분을 조심스레 들고 작전지역으로 이동했다. 제1구역, 역시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줄 선 사람들을 등진 채 리더의 명령을 기다렸다. 곧 01번 버스가 정류장에 섰고,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다. 리더의 눈이 빛났다. 지금이다. 우리는 기둥에 화분을 묶고자 빠르게 정류장 표지판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기둥에 케이블 타이를 묶던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블 타이가 짧다, 후퇴, 후퇴.”

빠르게 주변 사람들 사이로 녹아든 우리는 잠시 작전 회의를 가졌다. 상점에 이보다 더 긴 케이블 타이는 없었다. 그 때, 케이블 타이 두 개를 연결하면 된다는 통신병 출신 기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주변 잡화점에서 케이블 타이를 샀고, 타이밍을 잡아 다시 표지판으로 달려들었다. 미션 클리어. 01번 버스를 타고 유유히 후문으로 향했다. 제2구역, 제3구역 모두 빠르게 화분을 설치했다. 케이블 타이의 남은 부분을 니퍼로 제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4구역은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꽃들이 필요했다. 보급 기지인 편집국에 들러 추가로 물자를 챙긴 후 기세를 몰아 바로 제4구역으로 돌격했다. 마구 자란 식물들과 육중한 철문이 을씨년스러웠다. 기자들이 움직였고, 십여분 후 제4구역에는 다소 낯선 화사함이 심어졌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학생들이 통학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이들을 응원하는 꽃을 심었다. 사진 서성우 기자

4단계, 상황 종료: 지켜보기
해가 뜨면, 사람들은 각 구역의 달라진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처음엔 걱정도 들었다. 우리가 설치한 화분들이 도리어 미관을 해친 것은 아닐까? 하룻밤 사이에 누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리는 건 아닐까? 우리 땅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워 작전 수행 전 서울시 조경과에 문의도 했다. 하지만 몇몇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번 작전을 당당히 완수했다.

 205관(학생회관) 옆 쪽문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골목길, 꽃으로 어둠을 몰아냈다. 사진 서성우 기자

우리의 게릴라는 어찌 보면 미약하다. 그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자리에 누구나 살 수 있는 꽃을 심었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의 꽃을 보고 행복했다면, 그래서 감동받은 그 마음에 한 알의 씨앗이 심어졌다면, 그것으로 우린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심은 꽃보다 앞으로 피울 ‘꽃’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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