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인 건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카페에서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썸’이 흘러나온다. 요즘 나에게도 그 노래처럼 달달한 사람이 생겼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오빠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처음에는 일이 서툰 나를 친절하게 도와주던 동료였지만 매일같이 선톡하는 그에게 동료 이상의 감정이 느껴졌다.

추운 날씨에 문을 열고 잔 탓이었을까. 열감기에 걸려 아르바이트도 가지 못하고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던 날이었다. 자취를 하는 처지라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약을 사러 나가기 귀찮아 약도 먹지 않고 잠을 자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다름 아닌 그 오빠였다. 아픈 것도 잠시, 설레는 마음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자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너희 집 앞인데 줄 거 있어. 나와.” 지금 나오라고? 당황한 기색이 비쳤는지 그는 ‘집 앞에 죽이랑 약 놓고 왔어. 이따 나오기 편할 때 가져가’라는 문자만 남기고 떠났다.

오빠가 준 약을 먹고 하루 종일 자고 나니 몸이 가뿐해졌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섰다. 카페에 들어서는데 무표정으로 테이블을 청소하고 있던 오빠가 나를 보고 웃으며 반겨줬다. “이제 괜찮아? 이따 집에 갈 때 데려다줄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 똑같은 퇴근길이지만 그날은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그때 오빠가 슬쩍 내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넸다. “시험 끝나면 우리 가까운데 놀러 갈까?” 웃음이 번지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무심한 척 대답했다. “그러지 뭐.”

시험이 끝나고 약속한 날이 성큼 다가왔다. 전날 산 예쁜 원피스를 입고, 화장도 평소보다 꼼꼼히 하고, 평소에 아파서 신지도 않던 높은 구두를 꺼내 신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날 밤에 오빠와 통화한 내용이 떠올랐다. 술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동기들이랑 술 마시는 중이야. 술 마시니까 네 생각나더라. 그래서 전화했어.”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통화한 내용을 되새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오빠는 어디쯤 왔을까? 그날따라 오빠의 컬러링 노래가 좋았다.

수화기 너머로 오빠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몇 시지? 미안. 지금까지 자고 있었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옅게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그래, 몸은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좀 쉬어.” 최대한 실망한 마음을 감추며 말을 건넸다. 실망했다는 건 내가 기대했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허무하게 집에 돌아왔다. 텅 빈 방이 그날따라 더 커 보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미안하다는 카톡 하나도 오지 않았다. ‘내일 얼굴 보고 이야기하려는 거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러 카페에 들어서는데 그 오빠가 없었다. 순간 걱정이 됐다. 혹여나 많이 아픈 것은 아닐까. 전날 잠겨있던 오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같이 일을 하는 언니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리고 지나가듯 들리는 언니의 말. “걔 저번에 미팅에서 만난 여자랑 잘 돼가는 것 같더라? 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순간 벙쪘다. ‘나랑 잘 되고 있던 거 아니었나? 그날 집에 바래다주고, 손잡은 건 뭐지? 미팅은 언제 나간 걸까. 나랑 약속을 했던 날에도, 사실 미팅했던 여자와 같이 있던 건 아닐까? 바보같이 나 혼자 좋다고 난리 쳤던 거야?’ 아프지 않나 걱정하던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 여자는 누구냐고, 나를 왜 헷갈리게 했냐고, 왜 하필 나였냐고. 하지만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오빠가 내 남자친구도 아니니까. 심지어 잘 되는 여자도 있으니까. 괜히 물어보면 나만 우스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설레발치던 내 모습을 들키긴 싫었다. 궁금한 마음을 꾹 참고 카톡 창의 ‘나가기’ 버튼을 꾹 눌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오빠는 쉽게 나가지 않았다. 보내야 하는데…. 오빠를 잊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시끌벅적한 축제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과 술이라도 먹는 날에는 그 오빠의 욕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장관리나 하는 나쁜 XX ….” 주절주절 친구들에게 털어놓아도 괴로운 내 마음은 쉽사리 털어지지 않았다.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도착했다. 잊어보려고 해도 그 오빠에게 생긴 의문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 오빠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은 물론 없었다. 하지만 여지는 있었다. 나에게 먼저 카톡을 보낼 때부터 데이트 신청을 할 때까지. 나와 잘 되고 싶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나? 아, 데이트 신청도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잖아. 아직도 난 그 오빠에 대한 여지가 있나 보다.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카페를 들어서는데 노랫소리가 들린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인 건지….’ 노래를 듣자니 왠지 마음이 쓰리다. 내 것도 아니고 내 것 ‘같다’라니.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달달한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썸은 썸일 뿐이었다. 이젠 먼저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을 믿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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