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언론계를 다룬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 날 케이블 방송국 ACN의 뉴스팀에 한 정치인이 머리에 총격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사망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러 언론에서는 이미 해당 정치인이 사망했다는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ACN의 뉴스팀은 ‘그가 위태로운 상황이다’는 내용만을 보도했다. 이에 경영진은 시청자들이 타 방송국으로 옮겨갈 것을 우려해 사망 보도를 내라고 요구했다. 뉴스팀의 프로듀서는 그 요구를 거절하며 이런 말을 했다. “사망선고는 의사가 내리는 것이죠. 뉴스가 아니라.”

  지난 9월 22일 故 노승현 학생(관현악전공 1)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고인의 친구들은 고인의 죽음이 일부 관현악전공 학생의 주도로 이뤄진 따돌림과 관련 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SNS상에 게재했다. 이 내용은 순식간에 퍼져 여론을 뜨겁게 달궜고 따돌림을 주도했다고 지목된 학생들은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기자도 당시엔 글과 함께 게재된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의 증거자료를 보고 게시물의 내용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주 해당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은 흔들렸다. 정황상 따돌림이 있었다는 내용에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지만, 이것이 자살의 직접적 원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때문에 기자는 여러 취재원을 접촉한 후 기사의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후 대학본부, 관현악전공 학생, 고인의 친구, 부친 등을 취재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해 아직 어떤 것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인에 대한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따돌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고 아직 인권센터와 경찰의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다양한 취재원들의 말을 종합해 최대한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기성 언론은 ‘유명 음대생 투신자살…“왕따 당했다”’와 같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후였다. 기사 내용의 전반은 SNS상에서 논란이 된 내용이었고 음악학부 측, 관현악전공 학생 등 여러 관련자에 대한 취재 내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에겐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권한이 없지만 그들은 ‘의사인 것 마냥’ SNS상에서 얻은 내용만으로 사건의 원인을 단정했다. 결국 기성 언론은 다양한 의견을 담지 않은 채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여론에 편승한 꼴이었다. 이 같은 보도로 인해 논란은 더 증식되고 말았다.
 
 이미 이 사건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많다. 섣부른 보도로 가중되는 논란은 더 많은 사람을 상처받게 할 것이다. 기성 언론은 하루빨리 이번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다양한 관련자들에 대한 심도 있는 취재를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해야 할 것이다. ‘뉴스팀’ 프로듀서의 말처럼, 기자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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