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가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5.10.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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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관련 좌담회

   서포터즈라는 명칭은 노동의 착취를 은폐한다.
   젊음과 열정이라 포장하지만 실상은 값싼 노동력일 뿐이다. -김태영- 
 
   마케팅 전공자를 찾을 거면 서포터즈가 아닌 프리랜서를 찾아라.
   조금이라도 이윤이 있었다면 근로에 대한 대가인 임금을 줘야 한다. -이혜인-

   지금의 서포터즈는 봉사활동과 노동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다.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는 노동의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장진솔-

▲ 제도의 한계를 말하는 김태영 학생의 말에 패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바야흐로 스펙 경쟁시대다. 학점, 토익점수는 기본. 남들보다 더 경쟁력 있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 기자단, 홍보단과 같은 서포터즈까지 하는 추세다. 어려운 취업난 속 주류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불안감도 있을 법한데, ‘서포터즈’라는 번지르르한 단어 속 어두운 이면을 바라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에 서포터즈의 실체를 논하고자 지난 8일 207관(봅스트홀) 336호에서 김태영 학생(독일어문학전공 3), 이혜인 학생(프랑스어문학전공 2), 장진솔 학생(국제관계학과 3)과 함께 좌담회를 진행했다.

- 서포터즈에 관해 들어본 적 있나.
혜인: 당연히 들어본 적 있다. 예전에 한 번 ‘스펙업’ 사이트에서 서포터즈를 찾아봤었는데 대부분 마케팅 전공자나 광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서포터즈의 취지라 말하는 실무 경험과 전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진솔: 사실 서포터즈하면 자발적으로 하는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어 축구팀 서포터즈의 경우 축구를 정말 사랑해서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요즘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저비용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이를 악용하는 거 같다. 혹시 성과를 내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학생에게 지급하나.
태영: 거의 주지 않는다. 주더라도 턱없이 모자란 경우가 많다.
혜인: 미션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장비 정도만 주는 것 같다.
 
- 사실 장비마저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불합리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학생들이 서포터즈를 하는 것 같나.
혜인: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런 것 같다. 주위에 서포터즈를 하는 후배들이 엄청 많은데, 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뭐라도 해보자는 식으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태영: 맞다. 학생들이 기업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포터즈를 하는 듯하다. 기업이 아쉬워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기업에 맞추고 있다. 맞추지 않으면 취업이 안 되니까.
혜인: 취지와는 다르게 서포터즈에는 기업과 학생이라는 명확한 갑과 을의 관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학생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서포터즈 활동 내용은 사실상 노동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돈이 아닌 경험으로 준다는 것은 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어떤 측면에서 서포터즈를 노동이라 할 수 있을까.  
태영: 기업은 서포터즈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이윤을 창출한다. 최근에는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기획 부문의 서포터즈를 많이 뽑는다고 들었다. 즉, 관료제 조직 내에서 나올 수 없는 학생의 창의적인 발상을 뽑아 쓰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명백한 아웃소싱이다.
혜인: 비슷하게 생각한다. 서포터즈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보인다. 지금의 서포터즈는 기업과의 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기업이 요구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 일이 실제 광고나 제품에 쓰였다면 그것은 분명 노동이고 임금을 줘야 마땅하다.

- 그런데 많은 학생이 서포터즈를 노동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태영: 서포터즈라는 명칭이 굉장히 교활하다. 기업이 학생을 고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포터즈라는 단어를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기업을 서포트한다고 여기게 만든다.
진솔: 같은 맥락에서 기업이 잘하는 것이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서포터즈도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 학생들이 서포터즈를 하고 싶도록 만든다.
혜인: 맞다. 기업이 서포터즈를 엄청나게 좋은 것처럼 포장한다. 서포터즈를 하면 꿈을 찾을 수 있다고. 노동이라 말하면 개미처럼 일해야 할 것 같은데,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뭔가 멋있어 보이도록 한다.
 
- 사실 한 줄의 스펙이라도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혹시 서포터즈를 하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은 없나.
혜인: 그것이 가장 큰 폐해다. 서포터즈를 하지 않는 학생들은 괜히 불안해진다. 또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거래 관계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큰 문제다. 
태영: 돈을 받지 않고 노동을 하는 것이 기업 대 학생의 관계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거래 관계로 확장될까 우려된다.
혜인: 이미 학생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 그렇다면 서포터즈의 활동이 노동이라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가.
태영: 일단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만 봐도 그렇다. 계약직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로를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더니 기업들은 1년 11개월만 계약한다. 제도적인 부분에 기대기보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서 교섭권을 차근차근 얻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진솔: 비정규직 문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하지만 서포터즈는 사활이 걸린 문제는 아니다. 앞서 말한 서포터즈의 폐해들이 있지만 비정규직, 인턴의 문제보다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방침이나 규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태영: 서포터즈가 비정규직 노동과 다를 바 없다고 패널 분들이 동의했는데 아이러니하다. 진솔씨 말대로 서포터즈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는 서포터즈를 주로 대학생들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포터즈가 대학생만의 문제가 되니까, 서포터즈 문제가 어느 정도 외면을 받을 수도 있겠다.
 
- 사회적으로 서포터즈 문제가 크게 부각될 수 없다는 말인가.
태영: 동일한 문제도 적용 대상을 찢어 놓으면 마치 모두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서포터즈가 무급 인턴과 비슷한 문제임에도 대학생의 문제라고 분리하는 순간 등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혜인: 서포터즈도 비정규직, 무급 인턴 등과 똑같은 상황인데 서포터즈 문제는 아직 이슈화되지 않았다. 주체자인 대학생들이 문제를 깨닫고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태영: 이를 위해서는 서포터즈 문제를 ‘구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부당하고 나쁜 것은 참아도 구리고 멋없는 것은 못 참는다. 서포터즈가 구리고 멋없다는 이미지를 먼저 심어줘야 할 것 같다.

- 정리해보면 대학생이 서포터즈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데.
태영: 요즘 대학생들은 무기력하다. 오죽하면 요즘 히트곡이 혁오밴드의 ‘위잉위잉’일까. 방구석에 처박힌 내 모습이 초라해서 죄송하다는 노랫말에 대학생들이 공감하고 있다.
혜인: 맞다. 너무 사회의 탓만 하면 안 되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다. 불합리한 문제가 계속 쌓이는 이유 중 하나는 대학생이 스스로를 탓하기 때문이다. 서포터즈 문제는 그 원인을 대학생이 아닌 사회에서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서포터즈 문제의 사회적 이슈화가 가능할까.
진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까 나왔듯이 대상 집단이 대학생으로 한정됐다는 점에서 서포터즈 문제만을 이야기하면 외면받을 것이다. 한국사회 노동 전반의 문제에서 시작해야 서포터즈 문제도 관심을 받을 것이다. 
혜인: 하지만 사실상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경쟁사회에서 요즘 대학생들은 이겨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패배의식이 팽배하다. 주체인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책감이 아닌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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