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구간 

 

서울의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은 조선의 수도를 보호했던 ‘사대문’이다. 그러나 돈의문은 현재 사대문 중 유일하게 남아있지 않다. 1915년 일제의 도로 확장공사로 철거됐기 때문이다. 돈의문이 있던 ‘터’라는 표식이 있는 곳에서 ‘서울 한양도성(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이 시작됐다.

 인왕산 구간에 들어섰지만 한양도성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찾아볼 수 없어 한참 동안 길을 헤맸다. 손에 쥔 지도에 의지해 ‘월암근린공원’을 찾아갔다. 공원이 조성되면서 드러난 서울시 복지재단(구 기상청 건물)의 담장 축대에서 성벽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그 성벽만이 유일하게 이곳이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의 일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왕산 입구로 향하는 길은 골목의 연속이었다. 골목길 양옆으로 세워진 빌라들 사이로 보이는 울퉁불퉁한 돌담. 흔한 벽돌이라 여길 수도 있는 돌담은 바로 성벽 일부였다. 과거 도시를 개발하면서 성벽을 축대 삼아 주택을 만들었던 흔적인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한양도성의 아픈 역사가 느껴졌다.

 마침내 다다른 인왕산 도성길, 입구에 핀 코스모스와 바닥에 흩뿌려진 은행잎은 가을이 한층 더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1993년 일반 시민에게 개방된 인왕산(339m)은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찾는 서울 명산이다. 가을 향기를 물씬 맡으며 걷는 성벽길 위로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인왕산 정상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성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완만한 길을 따라 정상에 도착했다. ‘치마바위’, ‘선바위’ 등 바위산인 인왕산을 대표하는 바위들이 인왕산의 고유한 정취를 한층 고취시켰다. 문학책에서 자주 볼 법한 ‘깎아지를 듯한’이라는 표현은 정상에서 마주한 인왕산의 절벽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주변 경치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꺼내려는 순간, ‘다음 방향으로 촬영 금지’라고 쓰인 표지가 눈에 띄었다. 성벽 주위를 둘러싼 군사지역과 그 아래로 보이는 청와대 때문이었다. 청와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인왕산 정상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기에 사진을 찍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올라왔던 길 아래로 앵글을 돌렸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하는 인왕산 능선을 따라 놓인 성벽은 산의 리듬감을 닮아 있었다. 길게 늘어선 성벽은 인왕산 구간의 끝 지점인 창의문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있어 마치 ‘만리장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했다.

 정상에서 잠깐이나마 달콤한 휴식을 즐긴 후 인왕산에서 내려왔다. “학생! 밑에 저기 보여? 가면 윤동주 시인 언덕 있는데.” 정상에서 잠시 마주쳤던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내려가 보니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자그마한 언덕을 볼 수 있었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구에서 하숙했던 그는 이 일대를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이 서 있었던 그 언덕에 오르니 인왕산에서 봤던 절경을 표현할 시상이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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