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기술기획책임자로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느라 지난 2년간 학교를 떠나 있었다.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특수효과 기술, 뮤지컬의 이동 무대 장치에 관한 기술, 디지털 광고를 위한 미디어 파사드 기술, 그리고 평창에서 쓰일 빙판을 디스플레이로 변환하는 기술 등 ‘문화’라는 단어만큼이나 광범위한 CT(Culture Tech-nology) 분야의 예산 기획과 관리를 책임졌다.

 지난 에피소드들을 언급하자면 끝도 없겠으나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기술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전통문화에 관한 연구 하나를 들고 싶다. 이 연구는 전통 단청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는 연구이다.

 이 과제에 참여한 단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단청을 일상생활 속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의 복원분야와 분리하여 단청의 개념을 재창조해야 한다고 믿었다. 과거 단청의 색을 내는 안료는 당시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천연 재료들로부터 얻어졌다. 초록색을 내는 뇌록은 경주 뇌성산에서, 황색을 내는 석황은 석화된 목재로부터…. 이처럼 일상의 재료 중 가장 색 발현이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이 과거의 안료이다. 아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시 얻을 수 있는 바인더(binder)로 아교 외의 선택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재료들은 현대에도 유용한 일상의 재료들과는 거리가 있다.

 고갈되어 수입하거나 무지로 인해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사용하던 과거의 색조 재료, 그리고 습도, 온도에 따라 매번 품질이 달라지는 아교. 이런 재료들은 일부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는 장인들에게는 유용할지 모르나, 일상의 단청이 되기에는 문제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기술연구자들은 현대의 재료로 과거의 단청과 가장 가깝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단청을 살리기 위해 현대화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비단 단청뿐일까? 한복? 제사? 또 뭐가 있을까?

 단청을 대학이라 생각해 보자. 아교, 뇌록 등은 과거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으로 바꾸어 보자. 단청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의의가 있고 사라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박물관의 박제가 되지 않으려면 생활 속의 단청이라는 새로운 개념 역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이 현대 사회에서 화석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의 최고의 재료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특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 재료들은 현대의 첨단 지식, 과거와 현대를 잇는 통섭의 지성, 미래를 바라보는 창의적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사회와 학생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것을 더 이상 단청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장인의 말에 과제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그러한 편협한 태도로 인해 한옥마을이 아크릴로 칠해지고 있다.’ 하나의 정답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세상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며 항상 변해가고 있다. 대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박진완 교수
융합공학부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