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의 세월을 품은 서울 한양도성
  • 김석철 기자
  • 승인 2015.10.0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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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을 두루 돌면서 성 안팎의 꽃과 버들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조선 시대 실학자 유득공이 집필한 『경도잡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순성’의 즐거움이 잘 나타나죠.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도성 성곽길을 돌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곤 했는데요. 아쉽게도 일제강점기 이후 성벽이 일부 허물어지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은 뚝 끊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성곽길을 찾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벽이 조금씩 복원되면서 순성을 즐기는 문화가 되살아난 것이죠. 이에 세얼간이도 직접 그 성곽길을 걸어봤습니다. 도심 속에 감춰져 있던 한양도성의 아름다운 경관, 함께 체험해보실까요?
 
▲ 위백규가 1770년 저술한『환영지』에 수록된 ‘한양도’, 도성과 도성 내 주요기관이 간결하게 표현됐다

 

●문화 돋보기
 
 한양으로의 천도 이래로 ‘서울 한양도성(한양도성)’은 한양을 든든히 지켜왔다. 600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들의 곁에서 숨 쉬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여곡절의 역사를 가진 도성의 변천사를 ‘한양도성박물관’을 통해 알아봤다.

 온 백성이 합심해 쌓아올린 수도의 울타리
 수도를 옮긴 태조 이성계는 1396년 수도 방위를 위해 도성 축조를 시작했다.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 그리고 이를 잇는 성벽까지. 그 길이만 해도 총 5만9500척(18.6km)의 거대한 도성. 98일의 대공사 끝에 완성된 한양도성의 모습이었다.

 성벽 사이사이의 사대문과 사소문은 한양의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인·의·예·지의 정신을 담아 동서남북에 각각 흥인문(興仁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이라 이름 지은 사대문. 그 사이에는 ▲서남 소의문(昭義門) ▲서북 창의문(彰義門) ▲동북 혜화문(惠化門) ▲동남 광희문(光熙門)과 같은 사소문을 축조해 사람들의 이동을 더 편리하게 했다.

 그 웅장한 모습은 백성들의 땀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도성 축조에 참여한 백성들의 수는 대략 20만명. 1422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 때에는 무려 32만명 정도의 백성이 동원돼 기존의 토성을 모두 석성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오랜 세월 서울의 방어를 책임지던 한양도성 역시 세월의 흐름을 빗겨가진 못했다. 노후화된 성벽 곳곳이 허물어진 것이다. 또한 왜란과 호란 등 계속된 전란으로 국방의식이 고조되고 한양으로 대거의 지방민들이 유입되면서 한양도성 재정비의 필요성은 점점 높아졌다. 1704년, 마침내 숙종의 명으로 한양도성은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의 작았던 성돌 대신 규격화된 방형의 석재를 이용해 더욱 견고하게 성벽을 쌓았다. 재정비와 함께 수도 외곽의 방어시설을 대폭 확충한 한양도성은 이전보다 더욱 튼튼한 모습을 자랑하게 됐다.
 
 근대화란 이름의 수난, 사라져 간 도성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양도성의 본모습은 급격히 훼손됐다. 식민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일제가 서울의 전통적 도시구조를 해체한 것이다. 1907년 설치된 ‘성벽처리위원회’는 도로를 넓힌다는 명분하에 숭례문 좌우의 성벽을 해체했다. 일제는 도로와 전차 노선 등의 교통로 확보를 위해 한양도성을 계속해서 파괴해나갔다. 1908년에는 소의문 주변 성곽이 헐렸으며 1915년엔 사대문 중 하나인 돈의문마저 완전히 무너졌다. 혜화문 역시 전찻길에 자리를 내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한제국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한양도성. 일제의 만행은 계속됐다. 성벽의 자리에 조선 신궁, 경성운동장 등 식민 지배의 상징물을 조성한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도성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전후 국가재건과 경제개발을 이유로 도성의 모습은 계속해서 망가져 갔다. 도성을 밀어낸 자리에 무분별하게 건립됐던 도로와 공공기관. 성벽을 축대 삼아 주택을 짓는 경우도 허다했다. 일제강점기와 경제개발기를 거치면서 한양도성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서서히 잊혀져갔다.

 잃어버린 600년의 역사를 되찾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로 한양도성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정부가 안보의식 강화를 위해 도성의 복원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1975년부터 1982년까지 광희문과 숙정문, 9.8km의 성벽이 복원 및 보수됐다. 그 결과 2014년을 기준으로 도성 전체 길이의 70%인 12.8km의 구간 복원이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서울시는 앞으로 도성이 간직한 600년의 흔적을 시민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끊어진 구간을 복원하기보다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한양도성이 되살아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했다. 한양도성도감 도성정책팀 김명옥 주무관은 “예전에는 서울 사람들조차도 도성의 존재를 잘 몰랐다”며 “지금은 한양도성의 존재를 인식하고 성곽길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한양도성, 성벽을 걸으며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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