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사 안으로 길게 이어진 감옥. 더 이상 수감된 사람은 없지만 육중한 철문과 낡은 쇠창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왠지 모를 폐쇄감을 느끼게 한다.

 

“대한민국 만세!” 해방의 함성이라도 울리는 듯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시끌벅적했다. 독립운동가를 기억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10년 전에 방문했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정적이 가득 메운 음산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관광명소로 변해 있었다.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이번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인 단체만 270여 개, 사람 수로 따지면 2만여 명에 달한다. 개인 방문객까지 합치면 월평균 5만여 명 정도가 방문하는 셈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한 평일 오후, 비교적 유동인구가 적은 시간 때임에도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수학여행을 왔다는 마산 신월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을 기리기 위해 왔다”며 “일제의 침탈을 겪은 아픈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이들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0년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도슨트를 맡고 있다는 김옥균(69)씨는 점점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음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 “최근 5년 동안 학교에서 단체로 오거나 가족 단위로 오는 방문객들이 늘었어요. 이곳을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이 역사를 이해하고 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 잔인한 고문 도구 ‘대못 상자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한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옥고를 치른 곳이다. 해방 후에도 줄곧 교도소로 쓰이며 주로 민주화운동가들이 이곳에 수감됐다. 1987년 서대문형무소 건물을 사용했던 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해 감옥으로서의 임무를 마쳤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1998년, 비로소 일반인에게도 형무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여옥사가 외로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옥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던 곳이다. 1979년까지 사용되다 철거된 이 건물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 원형 설계 도면을 토대로 복원됐다. 기억에 남는 전시는 단연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사진이 걸린 ‘여옥사의 유리방’이었다. 그동안 독립운동가로서는 주목받지 못한 여성 운동가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국가를 지키기는 데 온 힘을 아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여옥사를 나와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민주화와 같은 질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전시였다. 먼저 당시에 수감됐던 한용운, 안창호 등 많은 독립운동가의 수형기록표가 보였다. 모두 다른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결의에 가득 차 있음이 느껴졌다.

실제 사용됐던 고문 도구도 볼 수 있었다. 사람을 채찍질하는 ‘태’부터 2~3일간 서도록 하는 ‘벽관 고문’까지. 각 도구의 사용방법을 읽으면서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고문 도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듯했다. “이렇게 좁은 곳에 사람이 어떻게 들어가?” 한 초등학생은 믿기지 않는지 전시된 고문 상자에 고개를 밀어 넣었다. 기자는 10년 전 철없이 고문 상자 안에서 사진을 찍던 모습이 떠올랐다. 10년 만에 다시 마주한 상자. 안에서 독립운동가들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만 같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전시관 마지막 코스인 지하로 내려갔다. 쇠창살 뒤로 보이는 것은 고문을 표현하는 밀랍 인형. 물고문, 손톱 밑 찌르기 등 다양한 장면이 묘사돼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고통받았던 독립운동가를 생각하면 누구도 눈 크게 뜨고 밀랍 인형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지하 관람까지 마치고 곧장 옥사로 향했다. 으스스한 옥사 안을 비집고 들어가니 감시대를 중심으로 복도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복도 양옆으로 설치된 방은 10명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크기부터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독방까지 다양했다. 독방을 지나 들어간 큰 방에서 위쪽에 뚫린 작은 창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밖을 향하는 유일한 통로라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폐쇄감에 휩싸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옥사 밖에서는 학생들이 뛰놀고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특별기획 사진전’, 아이들을 위한 ‘뚝딱뚝딱 토요 행복놀이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운영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 비록 똑바로 마주하기 힘든 슬픈 과거일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역사이다.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매일매일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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