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 발을 들인지 어느덧 2년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 편집 계획서에 내 이름이 실렸을 땐 마냥 설레었다. 잘하고 싶었고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고작 2단 기사 하나에도 퍼붓고 싶었다. 그저 신문에 ‘안지연 기자’라는 내 이름이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하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애정보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한 주가 시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부장’이라는 직책이 뭐라고. 꼴에 후배 기자 2명이나 있다고 생기는 부담감은 날로 더해져 갔다. ‘안지연 기자’ 혼자만의 기사가 아니라 ‘김채린 기자’, ‘김수인 기자’와 함께 만드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역을 기다리는 군인처럼 마지막 조판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 고백하건데 신문을 만드는 일이 재미없다. 월요일엔 기사 각을 어떻게 짜야 할지, 화요일과 수요일은 취재가 순조롭게 될지, 목요일과 금요일은 기사가 잘 나올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쌓이고 쌓인 고민은 주말에 부담감이 되어 파도처럼 몰려왔다. ‘내가 생각했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읽힐까?’

부담감을 피하기 위해서 생각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신문사를 그만두던가, 임기 만료만을 기다리던가. 그래서 이번학기까지만 꾹 참자며 후자를 선택하는 미련한 짓을 했다. 그래서 ‘완성’된 기획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기획을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묻혀가고 있었다. 수첩을 열기 전까지 말이다.

어떻게 내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전의 신문을 보던 도중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바다가 깊고, 넓고, 잔인하다고 일러줘도 후배들이 품은 동경심을 어쩌지 못하리란 걸,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는 한 선배의 글귀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그토록 기획을 하고 싶어 했던 갈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졌고, 그럴수록 바다는 깊고 넓고 잔인하다는 탄식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학가에 숨어있는 이면을 파헤쳐 문제를 제시하겠다’는 첫 기획의 문을 열었던 포부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 기획에 품었던 동경심은 어디에 있는가. 기획에 대한 간절했던 마음 대신 남은 건 지긋지긋하다는 불평불만이었다. 그토록 쉬워 보였던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그토록 쉽게 어기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앞으로 8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게다가 신문사 임기를 만료하면 다시 주어지지 않을 기회인데. 그때 가서 완성된 기획이 아닌 완성하기 위한 기획을 봤을 때 분명 후회할 지금의 시간들인데. 왜 나는 내가 만드는 신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지겹다고만 생각했을까. 너무 익숙해진 탓인가?

부장이 되고 4주나 지난 뒤에야 의무감 뒤편에 감춰져 있었던 동경심을 꺼낸다. 어느 학보사, 어느 언론에서도 볼 수 없는 오직 중대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기획을 만들겠다는 동경심 말이다. 그리고 내가 품었던 동경심을 후배 기자들에게 똑같이 심어주고 싶다. 깊고 넓고 잔인한 바다 앞에 한없이 약한 내가 서있을 수 있는 힘은 바로 ‘동경심’에 있으니까.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