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다크 투어리즘

 

최근 글로벌 여행정보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뽑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소로 ‘전쟁기념관’이 선정됐다. 의외의 결과에 다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는 의례 경복궁과 같이 한국의 멋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장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기념관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이곳이 최고의 명소로 선정될만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결은 어두운 소재를 마냥 어둡게만 풀어내지 않은 데에 있다.
 
 전쟁기념관은 ‘옥외 전시물’과 ‘내부 전시실’로 구성돼있다. 기념관 외부의 풍경은 ‘전쟁이란 아픔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어둡고 무거울 것이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의 모습이었다. 드넓은 ‘평화광장’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 그 위를 펄럭이는 깃발들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전쟁을 다룬 공간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학생과 외국인 등 문화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을 조금 둘러보니 전쟁의 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밝은 분위기 이면에는 아픈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이 함께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 서문 초입에 있는 ‘형제의 상’이 바로 그 역할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편안히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우뚝 솟은 형제의 상은 두 군인이 포옹하는 모습의 조형물이다. 국군 장교였던 형 박규철과 조선 인민군으로 참전한 동생 박용철이 극적으로 만났다는 실화의 한 장면을 재연했다고 한다. 형제의 감동적인 재회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감동 뒤에는 남과 북이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숨어있었다.

 평화광장을 가로지르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전쟁 당시 쓰였던 전투기와 전차 등의 무기가 전시돼 있었던 것이다. 그중 눈에 띄는 배 한 척. 모두가 월드컵의 열기에 빠져있던 2002년, 북한의 기습 선제포격을 받아 침몰당한 ‘참수리 357정’의 모형이었다. 당시 모습을 재현하기 위함인 듯 배 곳곳에는 총알 자국이 가득했다. 단지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배에 올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돼 내부를 구경할 수도 있었다. 그 덕분에 배 주변은 현장학습 나온 아이들과 선생님들로 가득했다. 그중 한 무리는 갑판 한구석에서 선생님의 주도로 묵념을 올리고 있었다. ‘제2연평해전’ 당시 故 서후원 중사가 전사한 장소였다. 그 외 5명이 사망한 곳에도 전부 위치가 전부 표시돼 있었다. 전 국민이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포옹을 나누고 있을 때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채 동료들의 품에 안겨있었던 그들.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대열에 조용히 합류했다.

 옥외 전시물들을 어느 정도 둘러본 후 내부 전시실로 이동했다. 내부는 총 3층으로 ‘호국추모실’, 2개의 ‘전쟁역사실’, 3개의 ‘6·25전쟁실’ 등으로 구성돼 제법 큰 규모를 자랑했다. ‘6·25전쟁실’로 올라가는 길, 계단 밑으로 거북선이 눈에 띄었다. 약간은 익살스러운 모습에 그 주변으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벽에 걸린 그림은 전쟁의 참혹함을 담고 있었다. 순간 그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3개의 ‘6·25전쟁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북한의기습 남침부터 서울을 다시 수복하는 시기를 담은 첫 번째 전시실, 그 이후를 담고 있는 두 번째 전시실, 6·25전쟁에 참여한 나라들을 다룬 세 번째 전시실. 중간중간 실제 참전용사들이 직접 녹음한 증언을 듣고 당시의 모습이 담긴 생생한 영상들을 감상하고 있자니 6·25 전쟁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을 살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전시관 밖을 나와 다시 바라본 ‘평화광장’은 몇 시간 전과 다를 바 없이 활기찼다. 그러나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광장에 펄럭이는 깃발들은 바로 6·25전쟁 당시 참전한 국가들의 국기였다. 또한 입구에 서 있는 ‘6·25전쟁 조형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군인, 피난민들이 조각돼 있었다. 새삼 그동안 안보의 중요성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중요성을 몸소 느끼기엔 단 한 번의 체험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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