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이 부각되던 때의 토론 프로그램. 패널이었던 B교수는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나도 생각보다 을의 경험이 많다”며 “대학원을 다닐 때 조교로, 교수가 되고 나서는 조교수 시절에 선배 교수들에 비해 늘 을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분위기에 조교 생활, 조교수 생활을 들며 ‘나도 한때는 을이었다’는 말에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5년 연속 교원업적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A교수 역시 대학본부의 갑질에 당하는 을로 둔갑할 수는 없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논문을 한 편도 안 썼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목적이 곧 절차의 정당성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3년 신설된 조항으로 징계한 것이 문제였다. 소급 입법에 의한 처벌은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A교수와의 만남에서 그는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의 이야기를 꺼냈다. 코즈는 1937년 쓴 『기업의 본질』이란 논문으로 공헌도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1973년부터 1985년까지 12년 동안 논문을 한편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카고 대학은 코즈를 징계하지 않았다. A교수는 코즈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만 연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하고 학문별, 전공별로 그에 맞는 기준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코즈가 『기업의 본질』에서 발견한 ‘거래비용’만큼이나 이번 일에 시사점을 주는 것은 없다. 거래비용은 각종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을 말한다. 협상, 정보의 수집과 처리는 물론 계약이 준수되는가를 감시하는 데 드는 비용 등 거래 전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이에 해당한다. 시장이 확대될수록 거래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하는데 합의와 신뢰로 이를 줄이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대학본부와 A교수의 갈등이 급기야 2심 재판까지 갔던 상황은 왜 종종 거래비용을 극복하지 못해 신뢰가 깨지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지를 알려준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대학본부가 처음 1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을 때부터 말이다. 양 당사자의 관계가 갑과 을이든 아니면 단순한 고용과 피고용의 계약관계든 신뢰가 깨지기 시작할 경우 거래비용은 극복되지 못하고 관계는 무너지고 만다. 그간의 상황에서 갈등은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고 결국 양 당사자 모두에게 피해와 상처를 안겼다.

 지난 2월 A교수는 논문 게재 확정 통보서를 제출했고 직위해제가 취소된 일은 의외로 이번 사안이 이렇게까지 확대될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로가 동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있었음에도 양 당사자의 신뢰가 깨졌을 때엔 모두 최악의 결과를 얻고야 만다는 죄수의 딜레마 현상이 발생했다. A교수의 출판된 논문을 받아들고 연구실 문을 나선다. 이번 법정 싸움으로 양 당사자 모두 최악의 형량을 선고받게 된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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