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와 석사과정, 중간에 군 생활까지 10년을 흑석동에서 학생 신분으로 지냈습니다. 서른을 기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이제 저는 6년 차 직장인에 30대 중반입니다. 지난해에는 결혼까지 하며 다른 기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만 봐도 ‘내가 변했나?’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억울하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 일상을 뒤적여 보니 좀 평범하지만 ‘추억’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20대와 30대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제게는 그 시간을 관통하는 뼈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 때부터 해오던 ‘농구모임’입니다. 학부 시절에는 학과 내 농구모임(TCOAE)에 열정을 쏟았고, 석사 과정 중에는 사회인 농구동호회 활동을 하며 학과 선후배들과 함께 동호회도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매주 주말이 되기 전마다 농구 멤버를 모집하는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회인 농구모임의 멤버들과 15학번 후배가 어울려 필드에서 농구를 합니다.

 물론 저는 예전처럼 시원한 슛도 재빠른 수비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코트 위에는 30대 중반 아저씨와 보기만 해도 신기한 20살 후배가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활동을 공유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상 속에서 변함없는 ‘추억’을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추억’이라고 하니, 좀 고루합니다. 후배들에게 ‘젊은 시절 추억을 많이 만들어라’하는 것이 살만한 사람의 ‘속 편한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와 제 또래에게는 그 추억이란 것이 곧 ‘방패’입니다. 그 어느 세대보다 후배님들이 치열하게 젊음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총알을 비축하듯 학점과 어학연수, 그것도 모자라 공모전 입상과 스펙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신념, 가치, 인격 등이 가볍게 소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소한 일상의 경험들을 추억으로 저장해 인생의 ‘방패’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저는 결혼과 함께 처음으로 정당에 가입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인생의 동반자를 맞이했으니 조금 더 욕심을 내서 그동안의 경험과 추억 속에서 생긴 나의 신념에도 지지를 보낸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그 신념은 교내 체육대회 농구 경기 속에서, 술자리에서 나눴던 선후배 간의 대화 속에서, 동아리를 만들었다가 없애고 다시 모으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이런 추억들이 저에게 방패막이가 됩니다. 10년을 일해도 모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집값 때문에 일하는 것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직장과 대기업 사이에서 갈등할 때도 이런 추억들은 저다운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현재 없는 미래는 없습니다. 미래를 위해 여러분의 현재를 희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매 순간을 즐기시고 그걸 친구 삼아 앞으로의 삶을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촌스럽지만 ‘추억’을 소중히 잘 모으시고 행복하시길.

송정오 동문
화학공학과 99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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