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설가 박민규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낮잠』이라는 단편소설이 한 인터넷 게시글과 일본 만화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박민규가 표절이라니. 항상 독특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이 뚜렷했던 그였다. 중앙대 동문이기도 한 그는 강의 시간에도 교과서처럼 자주 등장해 나에겐 꽤 친숙했다. 그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였고 필체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 느껴졌기에, 표절이라는 단어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며칠 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평론가들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강력하게 결백을 주장했던 그는 곧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음을 깨닫자 어떠한 변명도 없이 ‘명백한 도용을 했다’는 한마디를 전달했다.

그가 이번 사태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쌓아온 명성에는 타격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글을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고 앞으로 그가 재기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표절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난무했던 각종 허구의 이야기들은 밝혀진 사실의 그림자 뒤로 자취를 감췄다. 그가 표절을 깔끔하게 인정했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는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와 문학계에서 표절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매주 다양한 학내 구성원들을 취재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논란거리만을 취재하는 기자’라고 불려 왔던 나는 더욱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갈등 상황들을 마주했다. 취재할 때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떤 취재원도 순순히 입장을 밝히고 사실을 전달해 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가 취재한 학생 대표자들, 곤란한 상황에 처한 교수들, 문제가 발생한 부서의 팀장까지. 그들은 질문하기도 전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신문이 나온 직후 취재처를 돌면 다수의 취재원에게 ‘중대신문의 논조는 편향됐다’ 또는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맞냐’는 등의 소릴 듣는다. 그러나 그들 또한 막상 취재하게 되면 생각보다 순순히 취재에 응해주지 않는다. 그리곤 한 마디를 덧붙인다. “언론이 이러면 안 되지.”

그렇다면 언론은 어때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사실을 보도하라고 하면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학내를 누비며 ‘팩트’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간다. 우리가 그리는 퍼즐의 모습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만족하는 조각들로만 이뤄질 수 없다.

자신의 입장, 배경, 인과관계가 확실히 드러날수록 기사는 깔끔해지고 온전한 진실에 좀 더 가까워진다. 소설가 박민규처럼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이를 언론이라는 창구에 공개 당하는 것을 반기는 이가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깔끔한 기사를 원한다면 노코멘트보단 명확한 입장 표명이 현명한 처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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