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프로그램에 딸을 재벌가에 시집보내겠다는 엄마가 출연했다. TV에 비친 아이의 모습은 앙상했다. 9살의 아이가 몸매를 관리한다는 이유로 먹고 싶은 것을 절제하며 다이어트를 하고, 시집 잘 가는 학교라며 이화여대에 입학하겠다는 계획으로 공부를 했다. 아이의 일주일 스케줄은 빡빡했다. 상류층의 소양을 기른다며 미술과 승마를 배우고 일주일에 한 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가고 있었다. 결혼정보업체의 상담사는 아이에게 이만큼만 자라준다면 외모는 만점, 이화여대에 입학한다면 학벌도 만점, 집안의 배경은 부족해도 직업이 아나운서 정도라면 커버할 수 있다며 점수를 매겼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상담사의 태도는 이 엄마와 아이의 사고방식이 결코 이들만의 사고가 아니란 것을, 이것이 하나의 사회풍토란 것을 보여주었다. 엄마를 통해 주입된 아이의 꿈에 정작 아이 본인은 담기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본질이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엄마의 심리, 전문용어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드라마라는 허구적 스토리를 그릇되게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여자와 상위 1%의 남자가 주위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하는 내용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며, 기죽지 않으며 또한 본인의 일에 자부심이 있었던 여주인공의 내적 매력은 살피지 못하고 여배우의 예쁜 얼굴만을 받아들인 몇몇, 아니 많은 이 시대의 여성들은 열광적으로 자신들의 외모를 가꾸는 데에 열중했고 그 목적을 ‘결혼’으로 설정했다. 여자의 젊음은 무기가 되었고, 그래서 30대만 들어서면 여자는 ‘퇴물’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많은 남자들이, 전문직 남성들이, 경제력을 갖춘 남자들이 젊은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랑은 정말 역설적이게도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 실태에서 여성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의 강도는 OECD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높다. 취업에 있어서도 외모가 중요해서 대학교 4학년 여자들을 타깃으로 한 성형외과의 문구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다. 또한 직장에서 여성은 같은 능력을 가진 남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일하며 그곳에서 임신은 축하받을 일이 아니다. 출산휴가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상사와 동료의 눈치가 보여서 꿈도 못 꾼다. 그리고 능력이 있고 못생긴 여자보다 능력이 없고 예쁜 여자가 더 사랑받고 더 빨리 승진한다. ‘팀에 여자 한 명 정도는 있어 줘야 분위기가 살지 않겠어?’ 이 말에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부차적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현실을 빨리 깨닫고 일찌감치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을 포기하고 경제력이 보장된 남편의 아내가 되려는 여자들이 나타났고, 이렇게 취업과 집을 합친 ‘취집’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현실이 그렇다면서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지 말자. ‘외모가 시들어진다’며 우리에게 연륜을 쌓을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남자에게 평생을 약속할 정도로 당신은 작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해 힘쓰자. 내면을 알아볼 수 있는 남자와 평생의 사랑을 약속하자. 이런 남자와 함께라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사회 구조 또한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에게 외모를 강요하고 능력 발휘에 선을 긋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노동인력의 반을 무력화하는 경제적 비효율이기도 하며 여성과 남성의 정신 모두를 피폐하게 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꽃은 시든다. 그러나 향기는 지속된다. 이렇듯 남자들이여, 내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전수빈 학생
문헌정보학과 1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