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하나로 인생을 베팅한다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5.09.13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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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지는 않으신지요. 하지만 그 하루를 돌아보면 미처 보지 못 했던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바쁜 일상에 치여 마주치지 못 했던 모습을 조명하려 합니다. 두 면의 지면으로 ‘일상의 이면’을 보는 것이죠.

다들 게임을 해본 적 한번쯤은 있으시죠? 게임의 매력은 바로 ‘중독’에 있습니다. 지면 분한 마음에, 이기면 기쁜 마음에 계속 하게 되죠. 그런데 이번에 만난 청춘들은 다소 위험한 중독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도박입니다. 도박의 늪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질 못했습니다. 물론 주변엔 철저하게 그 사실을 감추고 있었죠. 꽁꽁 감춰둔 그들의 비밀을 일상의 이면을 통해 만나보시죠.
 

 
본 기사는 온라인 사행성 도박 경험자 6명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기사에 등장한 이름은 가명이며 특정 인물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 오늘 선수들이 평소답지 않네요. 경기 흐름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보는 K리그 축구 경기. 지지부진한 경기에 다들 김빠진 맥주처럼 처져 있다. 목이라도 축일 겸 냉장고 속 시원한 맥주를 꺼내려는 순간, 무리 중 한 놈이 솔깃한 제안을 한다. “만원씩 걷어서 토토 할래? 돈 걸고 보면 짜릿한데. 따면 그 돈으로 술이나 마시고 못 따면 마는 거지 뭐.”

친구의 제안으로 지루한 정적이 깬다. 돈 걸고 하는 축구 경기라니. 상상만 해도 흥미로웠다. 재미로 시작하는 거니까 만원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선뜻 지갑을 열어 돈을 건넨다. 바닥에 놓인 웃옷을 챙겨 입으며 친구에게 “편의점 가서 토토 사오자”고 하자 씩 웃으며 핀잔한다. “합법은 세금 떼지, 배당금도 낮지, 바로 환급도 안 되지. 남는 게 없는데 뭐하러 귀찮게 나가냐? 사설 사이트만 켜면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우리는 5만원을 걸었다. 돈을 걸고 경기를 보니 심장이 ‘쫄린다.’ 선수들의 슛 하나에 술집을 갈 수도 혹은 집으로 갈 수도 있다. 비록 만원이었지만 승부욕이 샘솟는다.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경기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중계 화면을 본다. 결과는 1:2. 마지막 승부차기로 역전승했다. “헐. 대~박!” 환호성과 함께 진동소리가 울린다. 돈이 입금됐다는 문자다. 우리는 재빨리 가방을 챙기고 집 근처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평범할 수 있었던 대학 시절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두둑하게 배를 채우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왠지 오늘따라 좋았던 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불을 켜고 일어나 아까 친구가 알려준 도박 사이트에 들어갔다. 용돈 좀 더 벌자는 기대로 우선 3만원 정도를 베팅했다. ‘자고 일어나면 3만원이 더 늘어나 있겠지?’하고는.

해가 뜬 다음 날. 어제 했던 기대와는 달리 3만원 모두 날려버렸다. 하, 이겼을 때보다 승부욕이 더 불타오른다. 학교 수업은 가야 하는데 심장이 자꾸만 뛴다. 마음을 추스르고 집을 나섰지만 학교에 가는 와중에도 잃은 돈이 자꾸만 생각난다. 결국 공강 시간 학교 근처 PC방에 들린다. 도박 사이트를 켠 뒤, 본전을 바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돈 6만원을 건다. 평소 잘하는 팀에다 걸었기 때문에 별걱정 없이 PC방을 나선다.
 
재미로 시작한 도박
‘돈맛’을 알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공수업에 집중하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운동경기란 변수가 많으니까. 결국 필기를 하나도 하지 못한 채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와 인터넷을 켠다. ‘당연히 이겼겠지? 혹시 진 것은 아닐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질문이 스쳐 지나간다. 다행히도 이겼지만 본전 3만원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제부터 도박의 목적은 재미가 아니라 ‘돈’이다.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더 많은 액수를 걸수록 얻을 수 있는 돈도 그만큼 커진다. 엊그제 받은 용돈의 절반 20만원을 도박에 모두 썼다. 꼭 이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경기 분석까지 하며 도박을 했다. 역시, 나는 타고난 승부사다. 순식간에 20만원이 200만원이 됐고 200만원을 400만원으로 불렸다. 그 400만원이 700만원이 되자 1000만원 단위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20만원이 금방 700만원이 된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700만원 모두를 잃었다. 머릿속에는 빨리 700만원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데. 다시 따면 되지 뭐.’ 절망감도 잠시, 불타는 승부욕에 머릿속 계산은 빨라진다. 스포츠 도박은 하루에 100만원이 한도라 얻을 수 있는 돈이 한정적이지만 카지노 도박은 한도가 없다. 생각 끝에 스포츠 도박에서 카지노 도박으로 종목을 바꾸는 나름의 작전을 짰다.

하지만 지금 남은 돈이 한 푼도 없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당장 공부를 해야 되는데, 책값 5만원만.” 최대한 불쌍하고 필요해 보이게 연기를 한다. 연기가 좋았는지 5만원을 넣어주시는 엄마. 슬며시 찔리는 양심에 속으로 생각한다. ‘엄마, 금방 돈 불려 올게.’ 바로 카지노 도박 사이트를 켠다. 역시나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5만원이 금방 10만원이 됐고 어느새 10만원은 1000만원이 됐다. 

버는 돈이 많아지자 돈이 점점 우습다. 이제 학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밥값으로 30만원은 기본, 술값으로 2~300만원까지도 쓴다. 어차피 도박 한 번이면 쉽게 벌 수 있는 돈이니까. 시계도 기왕이면 비싼 시계를 차게 됐고 옷도 기왕이면 비싼 옷을 입게 됐다. 용돈에 쪼들리는 주변 친구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한다. 씀씀이가 커질수록 주위의 시선은 주목됐고 그럴수록 왠지 모를 우월감에 빠지게 됐다.

그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박에 집중해야만 한다. 도박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업을 빠지는 일도 잦아졌다. 학점이 뭐 그리 중요한가. 공부는 뒷전으로 미룬 채 하루의 대부분을 도박으로 지새운다. 하늘도 도와주시는 건가. 바로 오늘, 처음의 5만원이 1000만원을 넘어 8000만원이 됐다. 그 액수를 보니 ‘억’ 단위로 바꾸고 싶다는 새로운 욕심이 치민다. 떨리는 가슴으로 8000만원 모두를 걸었다.
 
잃어버린 본전 생각에
다시 찾겠다는 승부욕
결국 남는 건 하나도 없다
 
 아뿔싸. 결과는 참혹했다. 클릭 몇 번 만에 8000만원 모두를 잃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뱃갑을 열어 담배를 피운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신경도 못 쓴 채 줄담배를 피우던 도중, 사이트 배너에 있는 한 대출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클릭하니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도 없이 대출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괜찮을까?’ 걱정이 들지만 이미 상황을 돌이킬 방법이 마땅치 않다. 조심스레 전화를 건 후 이름, 주민등록번호, 계좌를 입력하자 바로 3000만원이 입금됐다.

3000만원이 생기자 또다시 욕심이 생긴다. ‘도박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거기 직원들과 같이 하면 더 많은 돈을 딸 수 있을 텐데.’ 그곳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직원들은 정보가 많을 테니까. 정보를 공유하며 도박을 하고 싶었다. 혹시나 해서 이력서를 썼는데 역시나 운이 좋은 나는 바로 취직이 됐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그 회사는 홍콩에 있어 휴학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도박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는데 잘 됐지 뭐.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는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둘러댄 뒤 홍콩으로 떠났다. 내가 도박하는 것을 알면 배신감을 느낄 것이 뻔하다.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홍콩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일과 도박을 하며 번 돈을 새보니 대략 8000만원. 같이 일했던 직원들의 정보는 역시 믿을만했다. 빚을 갚고 생활비를 빼니 약 4000만원 정도가 남는다. 4000만원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달간 비웠던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채 도박 사이트를 켠다. 아직 한국에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것일까. 8개월간 벌었던 4000만원을 한 시간 만에 모두 잃었다. ‘긴장해서 그런 거야. 홍콩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금방 되찾을 수 있어.’ 스스로를 위로하며 담배를 꺼낸다. 저번에 대출받았던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3000만원을 대출한다. 3000만원 전액을 떨리는 손으로 걸었다.

말도 안 된다. 대출한 돈 모두를 날리고 빚쟁이가 됐다. 두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도박에 팔렸던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든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빚 갚는다고 여자친구와 떨어지면서까지 돈을 벌었는데, 도박 한 번으로 그 돈을 전부 날린 것이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소리. “아들~”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엄마.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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