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돋보기>

자본이 만든 헛된 욕망
무조건적인 추종은 위험하다 
 
  “계집이 어디서.” 직장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의 마부장이 신입사원 안영이에게 했던 말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드라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울분을 토했을 법하다. 유교권 국가인 대한민국은 남녀의 성 역할이 뚜렷한 경계를 이뤘고 이런 상황은 드라마보단 현실에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유니섹스’, ‘메트로섹슈얼’ 등 남자들이 여성스러운 복장을 탐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 경향은 ‘그루밍’이란 이름을 얻어 이전보다 큰 도약을 하고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외치며 철저히 선을 긋던 남자들이 꾸미기 시작한 이유가 뭘까. 좀 더 자세한 그루밍의 배경과 전망을 들어보기 위해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를 만나봤다. 
 
  “불과 10여년 전 만하더라도 아저씨들이 배가 나온 것은 부의 상징이었어요. 반면 마른 몸은 가난함의 상징이었죠.” 미의 기준은 사회, 역사에 따라 변화하는 것. 과거 배가 나온 것은 능력과 재력이 몸에 반영된 것으로 인식됐다. 이런 미의 기준이 상업자본주의와 만나며 날씬하고 예쁜 것이 최선이라는 명제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본이 만들어낸 미의 기준을 욕망하며 아름다워지기 위해 자신의 돈을 기꺼이 내놓게 된 것이다. 
 
  변화된 미의 기준은 신자유주의를 만나 엄청난 폭발력을 얻었다. 자유경쟁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타인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부의 창출로 연결된다. 노동을 위한 수단이었던 신체가 그 자체로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여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던 외모가 이제 남성들에게도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하게 됐죠.” 남성이 자신을 가꾸는 이유, 바로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있었다. 
 
  ‘착한 몸매’, ‘착한 얼굴’ 등 이제 외모에는 가치판단까지 붙기 시작했다. 몸이 선악을 판단하는 척도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게으르고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됐어요. 사실 몸을 가꾸는 데도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고려는 없는 것이죠.”   
자본과 경쟁으로 내몰린 남성들이 선택한 외모 가꾸기. 앞으로도 남성들의 외모에 대한 욕망은 계속될 전망이다. “상업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욕망 구조를 만들 거예요. 그리고 자본은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해 그루밍 문화 확산에 박차를 가하겠죠.” 자본에 의해 휘둘리는 소비자로 전락한 남성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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