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교수 위에
학생들은 난다
표절 앞에 교수는 속수무책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한 도둑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열 사람의 감시도 거뜬히 피해낸다. 지키는 사람 열 있어도 도적 한 놈을 못 당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학가는 이보다 더 난감하다. 한 명의 도둑을 여러 명이 잡기도 힘든 판국에 교수 한 명이 잡아내야 할 표절은 수십 개가 훌쩍 넘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표절 속, 막막한 교수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학점은 A+? 표절은 F다
“요즘 학생들은 과제를 쉽고 편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인터넷 자료를 많이 따오는 편인데 출처를 밝히는 학생은 드물죠.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표절인데도 말이에요.” 경영경제대의 A교수는 학생들이 표절에 대해 둔감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눈 씻고 찾아봐도 그들의 리포트엔 출처가 없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출처 표기에 대한 의식이 자리 잡지 못한 탓이다.
 
 곽장미 강사(교양학부대학)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한 학생의 리포트에 출처 표기가 없어 점수를 삭감하고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도리어 ‘표기를 꼭 해야 하느냐’며 적반하장 식으로 나온 것이다. “그 학생에게 남의 자료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출처 없이 인용하는 것은 표절행위라고 알려줬죠. 보통 학생 10명 중 8명은 정확한 출처 표기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에요.” 교수들에게 학생들의 표절 남발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제구실 못하는 표절 검사기
현재 중앙대에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표절 검사를 위해 블랙보드 시스템과 ‘카피킬러 캠퍼스(카피킬러)’ 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일부 교수들은 대학본부로부터 두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은커녕 사용법에 대한 공지조차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사과대 B강사는 “표절검사 프로그램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며 “두 프로그램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표절검사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몇몇 교수들은 프로그램이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진수 교수(경영학부)는 학생들이 온라인을 통해 한글 파일로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없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전공 특성상 PPT 파일로 과제를 제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블랙보드는 한글 파일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형식의 파일은 검사할 수가 없죠.”
 
 김휘택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 또한 표절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표절로 잡아내는 경우도 있어요. 표절검사 프로그램은 과제의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표절로 잡아낼 때가 있죠. 무조건 다른 논문에 쓰인 문장이라고 해서 표절이라 판단하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즉, 표절검사 프로그램의 결과를 100%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중앙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측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도 표절검사 프로그램에서는 표절한 부분으로 도출될 수 있다”며 “표절검사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최종적인 표절 여부의 판단은 교수의 몫이다”고 말했다.
 
24시간은 부족해!
표절검사 프로그램의 한계는 곧 업무량 과다로 이어졌다. 대형 강의의 경우 한 강의당 수강생이 백 명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들 과제를 일일이 채점하기 힘든 노릇이다. 실제로 사과대 C강사는 표절 검증으로 인한 업무량 과다를 호소했다. “강사의 경우 시간당 강의료에 비해 소화해야 하는 일거리들이 많아요. 여기에 수십 개나 되는 학생의 과제를 일일이 표절검사 프로그램으로 확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죠.”
 
 시간이 부족한 것은 C강사만이 아니었다. 정병오 강사(사회복지전공)에게도 하루에 24시간은 짧았다. “과제의 내용만 확인하는 데에도 오래 걸려요. 여기에 표절까지 하나하나 검사하기엔 시간상 어려울 수밖에 없죠.”
 
자율 규제에 곤란한 교수들
이명현 교수(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는 과제 표절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과제 검사 시 관련 논문을 훑어보는 것은 물론 구글과 유료 문서 거래 사이트까지 검색해본다. 게다가 과제를 받을 때 출력본과 파일을 함께 제출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자료를 무단으로 베껴오는 학생들을 많이 적발한다. “과제를 내기 전에 표절과 관련된 공지를 해도 학생들은 표절에 대한 의식이 부족합니다.”
 
 정병오 강사는 표절 적발 시 처벌할 수 있는 학교 측의 공식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앙대 학칙에는 표절에 대한 규제가 명시돼 있지 않다. 즉, 사후 처벌이 교수의 재량이기 때문에 표절을 적발했다 하더라도 학생을 처벌하는 것은 교수들에게 또 다른 부담인 것이다. B강사는 표절한 학생을 적발해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낙제점을 줘야 하는지, 과제 점수만 삭감해야 하는지, 기회를 더 줘야 하는지 교수마다 제각각이잖아요. 학교 측의 공식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학기말에 제출 받은 기말 과제의 경우는 특정한 제재를 가하기 어려웠다. 학기말에 과제를 검사하던 중 A교수는 몇몇 학생의 과제가 비슷해 베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곧 난감한 상황에 부딪쳤다. “학기가 끝났기 때문에 표절을 적발해도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요. 특히 규제가 따로 없기 때문에 점수 삭감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규제도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김휘택 교수는 처벌만으로 학생들의 표절을 근절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처벌과 같은 채찍보다는 인용표기를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설현수 교수(교육학과)도 규제보다 교육을 통한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본인이 표절을 의식해야 인용표기 방법을 준수하는 버릇이 생기는데 현재 학교 차원에서는 표절에 대한 교육이 부족해요. <글쓰기> 수업에서부터 표절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덧붙여 설현수 교수는 무엇보다도 표절이 절도와 같은 범죄임을 강조했다. “외국만 해도 표절을 범죄로 간주해 낙제점을 주거나 퇴학을 시키잖아요. 표절도 절도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아직 사회적으로 부족했죠.” 이제는 절도범과 같이 이른바 ‘표절범’도 범죄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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