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2(裏)면


여러분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지는 않으신지요. 하지만 그 하루를 돌아보면 미처 보지 못 했던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바쁜 일상에 치여 마주치지 못 했던 모습을 조명하려 합니다. 두 면의 지면으로 ‘일상의 이면’을 보는 것이죠.
학기가 시작되면 곧 과제에 치일 여러분들, 오늘의 이면은 바로 ‘표절’입니다. 과제 제출을 위해서 타인의 자료를 무단으로 가져온 적, 한 번쯤은 있어봤을 겁니다. 마치 자기 것인 양 말입니다. 죄책감은 어디에도 없죠. 죄의식 없이 표절하는 청춘들! 일상의 이면을 통해 만나보시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 속담. 요즘 대학생들은 ‘모로 작성해도 과제 제출만 하면 된다.’ 조금 더 쉽고 빠르게 과제를 작성할 수 있다면 표절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직한 방법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그 길로 가는 학생은 드물다. ‘표절’이라는 모난 길을 택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과제 표절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중앙대 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일반대학생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도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 표절은 이미 대학생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표절의 ‘베테랑’이 되다
 민기훈 학생(단국대·가명)은 인터넷에서 참고한 타인의 자료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리포트에 적는다. “출처는 따로 표기하지 않아요. 교수들이 딱히 뭐라 하지도 않고 점수를 깎지도 않거든요.” 실제로 응답자 106명 중 51.9%(55명)가 참고자료나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 일부를 출처 표시 없이 자신의 리포트에 인용한 적 있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타인의 자료를 무분별하게 베끼고 있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쓰는 과제가 아닌 이상 자료조사 위주의 과제는 보통 짜깁기를 하죠. 혹시나 해서 짜깁기를 해도 괜찮은지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황수빈 학생(인문대·가명)은 자료조사와 같이 단순한 과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짜깁기한다고 말한다. 여러 사이트를 켜놓은 후 복사해서 붙여 놓으면 과제는 어느새 ‘뚝딱’ 완성된다.

 지난학기 박채연 학생(연세대·가명)은 수준이 다소 높았던 전공수업 때문에 유난히 힘들었다. 과제 역시 그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도중 유료 문서 거래 사이트는 은밀한 유혹이었다. “어려운 과제는 제가 스스로 작성하기에 한계가 있죠. 다른 사람들의 리포트를 보면서 어떻게 글을 구성했는지는 물론 내용도 가끔 참고하는 편이에요.” 응답자 106명 중 13.2%(14명)의 학생들이 박채연 학생과 같이 유료 문서 거래 사이트에서 타인의 리포트를 구매한 경험이 있었다.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과제는 차고 넘친다.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은 다가오지만 계속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에 학생들은 ‘리포트 돌려막기’를 하기도 한다. ‘이전에 썼던 과제를 다른 수업의 과제를 위해 다시 제출한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106명 중 24.5%(26명)가 ‘있다’고 답했다. ‘과제폭탄’을 맞은 조석훈 학생(창의ICT공대·가명)도 자유주제로 PPT를 발표하는 과제가 주어지자 예전 수업을 위해 만들었던 PPT를 재활용했다. “우선 과제를 제출하는 데 의의가 있잖아요. 학기마다 과제가 너무 많아 힘들 때가 있는데 일일이 처음부터 다 하면 생활이 피폐해져요. 예전 과제를 제출할 수 있으면 그냥 제출하게 되죠.”

 인용한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 자신이 썼던 이전 과제를 다른 수업의 과제로 활용하는 것 모두 표절이다. 하지만 표절을 하는 데에는 이들처럼 각각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표절행위를 했다고 답했던 68명에게 표절한 이유에 관해서 묻자 ‘시간 절약을 위해서’라는 답변이 49.3%(34명)로 가장 많았다.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 등으로 바쁜 대학생들이 정작 과제작성을 위한 시간 투자는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사라진 ‘죄의식’을 찾습니다
학생들의 과제엔 표절은 있었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죄의식’을 찾아보기란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았다. 선배의 과제를 베껴 제출한 경험이 있다는 조수진 학생(덕성여대·가명)은 나름의 항변을 늘어놓았다. “주변에서도 베껴서 과제를 내는데 나 혼자만 안 하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도 다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딱히 죄책감도 들지 않더라고요.”

 과제를 작성할 때 출처한 자료를 표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 리포트 구매까지 해본 박채연 학생. 과제 표절에서 이미 ‘만렙’을 찍은 그녀는 표절의 고수답게 꽤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솔직히 죄의식을 느낀 적은 거의 없어요. 그런 죄의식을 느끼기보다는 조용히 안 걸리고 넘어가면 된 거죠.” 그녀에게 표절은 걸리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것이었다.

 실제로 ‘표절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표절행위를 했다고 답했던 68명 중 무려 과반수나 되는 57.3%(39명)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이 한 행위가 표절인지 몰라서’가 59.5%(22명)로 가장 많았다. 지성인이어야 할 대학생들이 정작 표절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이것저것 붙이면
과제는 완성된다

정작 표절은 모르는 표절 베테랑
 출처 없이 인용은 했지만 표절한 적은 없다는 김효빈 학생(숭실대·가명). 그녀는 인터뷰 도중에야 과제를 작성할 때 인용한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 표절임을 알았다. 학과 특성상 리포트에 판례, 법 조항 등을 인용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처 표기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출처 표시를 안 하는 것이 표절인지 몰랐어요. 그동안 교수님들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거든요.” 법을 배우는 그녀는 정작 저작권과 관련된 표절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러한 ‘표절 문외한’들을 위해 표절에 관한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학교 차원에서의 표절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홍지수 학생(건국대 부동산학과 2)은 인용표기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학교 내에서 공식적인 인용표기는 물론 표절에 관한 수업이 하나도 없죠. 그래서 논문에 쓰인 인용표기를 보면서 출처 표시를 해요.”

 설문조사 결과 106명 중 84.9%(90명)에 달하는 응답자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가 명시한 표절의 기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게다가 ‘올바른 인용표기 방식을 정확하게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9.4%(10명)에 그쳤다.

표절, 알려줘야 알지
중앙대는 공통교양과목인 <글쓰기>에서 올바른 인용표기 방식에 대해 가르친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실질적인 표절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33%(35명)에 불과했다. 4년째 학교를 다닌 조석훈 학생도 학내에서 표절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글쓰기>에서 인용표기 방식 외에 표절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어요. <글쓰기>를 통해 출처 표기를 해야 하는 이유와 표절의 위험성도 같이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절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학생은 조석훈 학생만이 아니었다. 설문조사 결과 표절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무려 84.9%(90명)나 됐다. 가은혜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1)은 학부생 때부터 교육을 통해 표절에 대한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짚었다. “어쩌면 학부생 시절에는 표절을 하더라도 처벌 없이 넘어갈 수 있죠. 하지만 그 학생들이 언젠가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랐을 때 문제될 소지가 있잖아요. 지금부터 학생들이 표절에 대한 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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