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부산까지 633km, 자전거 국토종주에 도전하다
  • 서성우 기자
  • 승인 2015.09.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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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얼간이의 문화체험기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을 기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지면입니다. 이번 주는 ‘4대강 자전거 국토종주’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문화부 3명의 기자는 지난여름의 한복판을 뚫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를 가로질렀습니다. 강과 산, 그리고 사람이 있었던 자전거 종주를 같이 떠나 볼까요.

 

   
 
한강, 새재, 낙동강이 품은 633km의 자전거길
넘어지고 다치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강과 산과 사람이 있었던 4박 5일의 고군분투기  
 
 
 
▲ 비가 온 후의 남한강, 구름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 자전거로 오른 높이 548m의 이화령 정상, 시원한 바람이 달콤하다.
 
 
▲ 한 폭의 그림 같은 낙동강 중류의 고요한 풍경.
 
 
▲ 낙동강 하구의 드넓은 평야, 자전거로 달리기에 알맞다.
 
 
한강, 새재, 낙동강이 품은 633km의 자전거길
넘어지고 다치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강과 산과 사람이 있었던 4박 5일의 고군분투기  
 
 
●체험기
  ‘한양에서 부산까지 걸어서는 30일, 말을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국사시간에 들었던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는 ‘멀다’는 단어와 동의어였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ktx가 3시간 만에 두 도시를 이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아직 먼 거리의 관용어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 아래에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자전거길이 조성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간다는 것은 자동차와 기차의 힘을 빌려왔던 인간이 스스로 헤쳐 나간다는 인간 동력에 대한 흥미로운 도전이다. 문화부 3명의 기자는 인천에서 부산까지 633km의 자전거 여정에 올랐다. 
 
1일차 인천시 ->양평군
  7월 24일 금요일 오전 9시, 자전거길의 출발점인 인천 아라서해갑문에는 기자들을 제외하곤 사람이 없었다. 전국에 장마전선이 형성된 탓이다. 그러던 중 앳된 얼굴의 남학생 4명이 흠뻑 젖은 채 서해갑문 여객터미널로 들어온다. 이들은 통영고등학교 2학년 동급생들로 방학을 이용해 자전거 국토종주에 도전했다. 장대비를 뚫고 부산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묘한 동료애가 형성된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자전거에 올라섰다. 아라서해갑문 출발지점에는 2개의 숫자가 있다. 하나는 0km, 다른 하나는 633km. 0km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사람을 위한 숫자이고 633km는 부산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위한 숫자이다. 기자는 633km라는 숫자에 부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0km를 벗어났다.  
 
  새찬 비를 뚫고 서울로 진입한다. 달리고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은 ‘여기부터 서울특별시입니다’라는 푯말이 아니라 주변의 풍경으로 알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63빌딩, 한강을 가로지르는 길쭉한 다리와 같이 익숙한 것들이 스쳐 간다. 한강 자전거길은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자전거 여행의 출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풍경이 달라진다. 하남과 덕소를 거쳐 팔당대교를 지나면 강을 에워싼 마을의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 높은 아파트가 그 높이를 점점 낮추며 빽빽한 주거지는 한적한 전원마을로 변한다. 
확 바뀐 풍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자전거길은 더욱 심한 변주로 여행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팔당대교부터 능내역을 거쳐 양평으로 가는 길은 과거 중앙선이 지났던 기찻길을 자전거길로 재조성한 구간이다. 더는 기차의 경적이 울리지 않는 기찻길을 나란히 하며 양평군에 다다랐다.
 
2일차 양평군 ->수안보온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몸은 무거웠지만 다행히도 날씨는 조금 화창해졌다. 비가 갠 남한강은 신선이 유유히 풍류를 읊을 것만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구름은 산 아래까지 내려와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는 듯하다. 반면 비가 온 후의 남한강은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물을 분주하게 하류로 밀어내고 있었다.
 
  “무릎이 찢어질 것 같아요.” 여주시를 벗어나던 중 김석철 기자가 통증을 호소했다. 첫날 출발하자마자 빗길에 미끄러지며 다친 통증이 악화된 것이다. 아직 오늘의 목적지인 수안보온천까지는 80여km가 남은 상황. 더는 앞으로 가기 힘들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지금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해 수안보온천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충주터미널도 58km가 남았다. 우선 자전거가 무거운 김석철 기자의 자전거를 바꿔 타고 무게를 최대한 줄인다. 
 
밀고 당겨가며 결국 충주에 도착했다. 충주에 도착해 김석철 기자는 수안보온천까지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나머지 두 명의 기자는 30km를 더 달려가야 했다. 수안보온천까지의 길 중간에 무엇이 있는지 감상할 여유도 없이 달려 수안보온천에 도착한다. 관광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굶주리고 지친 여행자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3일차 수안보온천 ->구미시
  버스를 타고 일찍 도착해 온천욕을 한 덕에 김석철 기자의 부상은 많이 호전됐다. 하지만 기자들의 앞에는 이화령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화령은 예부터 고개가 가파르고 험해 짐승들로부터의 피해가 많아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함께 넘어갔다 하여 ‘이유릿재’라 불렸다. 
 
  ‘이화령 정상까지 4.7km’, 이화령 초입에 놓인 푯말에 잔뜩 겁을 먹는다. 오르막에 들어서니 하체에 거친 힘이 전달된다. 자전거의 기어를 느슨하게 풀고 자전거에 동력을 최소한으로 전달한다. 이화령고개는 한시도 자전거 여행자들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조금의 평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정상까지 1km 남은 지점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가방 속에 있는 짐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반팔을 두 벌만 챙겨올걸’이라는 어림없는 후회도 하고 있다. ‘이번 경사만 올라가고 내려서 쉰다’는 생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온몸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나자 주위의 경치가 시야에 들어온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장난감처럼,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까만 점처럼 작게 보인다. 
 
  이화령을 넘으면 곧바로 경상북도에 진입한다. “여기서 칠곡군까지 가면 오후 11시나 돼야 도착해” 경상북도 상주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가 오늘 칠곡까지 가기는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서는 상주에서 멈출 수가 없기에 최대한 페달을 밟기로 한다.
 
  이미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가로등조차 없는 길에서 라이트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강 너머 조그만 촌락의 불빛과 자전거 불빛뿐. 한참을 달려 오후 11시가 다 돼 드디어 구미시의 불빛을 마주한다.   
 
4일차 구미시 ->남지읍
  밤에 보았던 불빛의 정체는 공장이었다. 공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는 풍부한 낙동강의 수량을 기반으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의 공장들이 밀집된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구미시에서 달성군까지 80여km는 완만한 평지가 펼쳐진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 4일차의 고갈된 체력 탓에 평지조차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다. 더군다나 장마전선이 물러난 하늘은 맑고도 투명해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더위와 빈약한 체력으로 자전거는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태양의 열기가 머리 위를 내리꽂는 오후 3시, 덥기로 유명한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도착했다. 이글거리는 대지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채 ‘달성보 인증센터’ 편의점에서 늘어지게 잠을 청한다.
 
  “여기부터 아줌마가 알려주는 길로 가.”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상실한 그때 편의점 아주머니가 자전거길을 우회해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휘어져 가는 강을 따라 난 자전거길 때문에 직선거리보다 훨씬 돌아가고 길 중간에 산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국도로 우회하라는 것이다. 다만 자동차가 달리는 국도로 가야 하기에 대열을 이루는 것이 안전했다. 아주머니는 편의점에서 쉬고 있는 여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다시 만난 통영고등학교 학생들과 50대 아저씨 2명, 대학생 2명, 기자 3명, 총 10명의 자전거 원정대가 꾸려졌다. 공교롭게 아주머니는 기자의 손에 지도를 쥐여 줬고 히말라야를 원정대를 이끄는 엄홍길 대장처럼 대열을 지휘하게 됐다. 
 
  다행히 길눈이 밝아 난생 처음 보는 지형을 요리조리 뚫고 창녕군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진 뒤라 다들 숙소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기자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기로 했기에 편의점 아주머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더 나아갈 사람들을 모집했다.  
 
  이번 원정대에는 달성보에서 같이 왔던 50대 아저씨 2명에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국토종주를 온 부자가 합류해 총 7명이 길을 떠났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 속에서 자전거 7대가 일렬로 국도를 헤쳐나갔다. “차 옵니다.” 뒤에서 차가 오면 맨 뒷사람이 신호를 준다. 아무 탈 없이 나아가며 아늑한 숙소에서 쉬는 것을 기대하던 그때. “펑크났어요” 갑자기 등장한 비포장도로에 자전거 두 대가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았다. 한적한 논밭 한복판에서 자전거 불빛에 의지해 자전거를 수리하느라 한 시간이나 지체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도로에 차량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강 너머 남지읍의 불빛들이 점점 강렬하게 다가온다. 번쩍이는 모텔의 네온사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오후 12시가 돼서야 숙소에 짐을 푼다. 점점 취침시간은 뒤로 밀리고 있는 꼴이다. 
 
5일차 남지읍 ->부산시 을숙도
  여행의 마지막 날, 낙동강은 상류의 구불구불한 감입곡류의 형태에서 하류로 갈수록 널찍한 평야를 이룬다. 자전거 길도 평야를 따라 무난한 평지가 이어진다. 앞으로 나아가도 주변에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 변하지 않는 풍경에 자칫 지루함마저 느껴진다. 
 
  ‘부산광역시 북구입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곳이 부산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자 해냈다는 생각에 전율이 온다. 아직 을숙도까지는 20여km가 남았지만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기자들의 마음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부산을 가로질러 낙동강 하구의 삼각지 을숙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만의 철새가 찾아오는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70만 평의 거대 습지다. 해가 저무는 하늘에 유유히 노니는 새들이 한가롭다. 
 
  이제 남은 거리는 1km. 을숙도로 들어가는 다리만 건너면 무더위도, 고행에 가까운 자전거타기도, 국토종주도 끝이다. 요란한 기쁨을 토해내며 최종목적지인 ‘낙동강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한다. 
 
  머리 위로는 김해공항을 향하는 비행기들이 스쳐 간다. 비행기로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5일이 걸려 도착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이화령 정상의 바람, 구미공단의 야경,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났던 무수히 많은 사람.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무의미한 풍경에 불과했을 것들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5일의 여정이 석양 너머로 그려진다. 해는 5일의 기억을 품고 산 너머로 사라지고 자전거 종주도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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