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난 뒤 처음 접한 중대신문은 축제 이야기로 가득했다. 축제에 관한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음문제’를 다뤘던 기획기사였다. 중대신문은 축제로 인한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 간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옳은 소리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소음문제 일부가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와 배려라는 아름다운 요소로만 마무리 짓기에는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소음문제의 본질은 ‘학교라는 공통된 공간에서의 두 집단 간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 기간 동안 우리는 ‘즐기는 자’와 ‘먹고살려는 자’로 나뉜다. 즐기는 자는 학교에서 축제라는 특수한 상황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축제는 평소의 대학교와는 다른 모습, 예컨대 일탈·젊음·행복 등의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반대로 먹고살려는 자에게 축제는 사치다. 취업·시험 등 당장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에 직결된 것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축제의 소음이 불편하고 아니꼬운, 그래서 예민한 문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소음에 대한 해결책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즐기는 자’들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중대신문에서 제시한 이해와 배려도 하나의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해와 배려의 차원만으로 두 집단 모두를 만족하게 하기는 어렵다. 소음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 번쯤은 즐기는 자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즐기는 자와 먹고살려는 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순 없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도 내일의 과제·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축제를 포기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창가에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잠시 정신을 빼앗기곤 한다. 우리 모두는 마음으로는 축제를 즐기고 싶지만, 몸으로만 축제를 즐기거나 아예 즐기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음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즐기는 자는 일탈과 해방감을 위해 볼륨을 높일 것이고 먹고살려는 자는 자신의 마음과 행동 간의 괴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높아질 것이다.
 
  중대신문이 제시한 이해와 배려라는 현실적인 해결책도 물론 공감된다. 하지만 소음문제에서 즐기는 자와 살려는 자 모두 중앙인이라는 점과 왜 이들이 두 집단으로 나뉘었는지를 포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필자는 대학신문이기에 외칠 수 있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소리를 중대신문에 기대한다. 우리 모두 ‘즐기는 자’가 되자는 것이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우리를 계속 짓누르고 학우도 경쟁상대로 봐야 하는 척박한 상황이라면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향을 잃는 순간 우리는 현실에 안주해야만 한다.

김동현 학생
경제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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