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3.27 월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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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안개가 자욱하다
서성우 심우삼 김다혜 기자  |  prosuseo@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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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8  13: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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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한국사회는 어땠나

   
 
중대신문 시사기획부에서는 지난 1849호에서 2000년 이후 15년 동안의 한국사회는 20대에게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분야에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결과 ‘세월호 참사’가 29.4%(67명)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스마트폰 대중화’, ‘카카오톡 서비스 시작’,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가 20대에게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20대가 ‘한 마디로 표현한 2000년 이후 한국사회’를 바탕으로 해당하는 사건들을 사진으로 표현했고 마인드맵으로 재구성해봤습니다. 20대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전 연령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20대가 뽑은 다섯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2000년 이후의 한국사회를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영향력이 컸던 사건의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간 한국사회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상해봤습니다. 
 
 
   
▲ 격동의 사회-참 빠르게, 그리고 많이 변해왔다. (테헤란로)
 

 

   
▲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대구 왕따 사건, 2011)
   
▲ 외면하고 숨기던 사회적인 병폐가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2014)
   
▲ 스마트폰 할부금의 노예하이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확산빚져서라도 소비하는 현대인 (아이폰 3Gs 국내출시, 2009)
   
▲ 개인이라는 프레임이 강화된 갑을사회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2014)
   
▲ 빠르고 정신없고 쉴 새 없는 사회-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을 찾을 수 있었던 사회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07)
   
▲ 민주주의의 꽃이 피려다 시들어버린 시대 (용산 참사, 2009)
 
 
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참사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늘고
한국사회는 불안으로 요동친다
 
 
해결되지 않는 갈등 속에
한국사회의 병폐는
조그만 틈새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 심층분석
 현재 대한민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공포에 떨고 있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불안만 키우는 정부, 이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 사이에서 확진 환자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이는 비단 메르스라는 전염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보여준 고질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현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지 못 하는 정부, 그리고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의 저항과 반발로 발생하는 혼란은 2000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중대신문은 지난주 1849호에서 20대에게 ‘2000년 이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건’을 물었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 ‘스마트폰 대중화’, ‘카카오톡 서비스 시작’,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광우병 사태와 촛불집회’가 15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20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선정됐다. 20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20대가 겪은 짧은 21세기는 어떤 세상이었고, 앞으로 그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뤄봤다. 
 
불신과 좌절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참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였기에 위 사건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불신의 분위기가 한국사회 전반에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렸다. 신광영 교수(사회학과)는 국민을 책임지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신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강한 반발심을 내비쳤다.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조건을 대폭 낮추어 수입을 재개한다’는 합의내용이 문제가 됐다. 기존 합의안에 따르면 연령 30개월 미만의 소의 경우 편도와 소장 끝 부분을 제외한 모든 내장의 수입이 허용됐다. 하지만 당시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광우병의 위험성은 피부로 느껴지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정부가 수입 재개하기로 한 일부 소 내장은 광우병과 관련 있는 민감한 부위이기에 협상안을 둘러싼 국민들의 분노는 커지기 시작했다. 의식을 가진 운동단체가 아니라 그 당시 중학생, 주부와 같은 다양한 계층이 집회를 주도했다.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그 당시 촛불집회를 ‘시민들의 걱정이 거대한 움직임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졸속협상이라는 비난과 함께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대응과 태도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통과 해명, 진상 조사 대신 컨테이너 산성과 물대포가 그 자리를 메웠다.
 
 “우리 사회가 꿈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좌절을 하게 만들었죠.” 이병훈 교수는 좌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안위보다는 경제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한·미FTA를 졸속으로 처리하고 소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하는 것은 그 당시 고등학생, 대학생들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한국사회
 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침몰하는 배에서 아까운 생명을 구해내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해수부 관피아의 부실한 선박안전점검, 해경의 근무태만, 정부의 졸속 구조 등으로 점철된 비극이었다. ‘정부의 무능’으로 침몰한 배 속에서 ‘정부의 무능’으로 사람들은 구조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것은 도망간 선장이었다. 
 
 김형국 교수(정치국제학과)에 따르면 쓰나미를 겪고 2만여명이 사망한 일본 사회가 295명이 사망, 9명이 실종된 세월호를 겪은 한국사회보다 책임 있는 사회다.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은 도망갔고, 후쿠시마 발전소의 요시다 마사오 소장은 도망가지 않았다. 이준석 선장은 침몰하는 세월호에 탑승해 있던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지만 마사오 소장은 그렇지 않았다. 쓰나미 이후 폭발 직전의 후쿠시마 발전소의 운용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해수를 넣어야 했다. 1조원에 가까운 발전소의 운명이 걸린 일인 만큼 마사오 소장은 회사의 입장을 기다려야 했다.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본사에서는 결국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시간을 놓쳤지만 마사오 소장은 도망가지 않았다. 책임을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죽지 않은 선장은 무책임한 사회를, 죽은 소장은 책임지는 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김형국 교수는 말한다. 
 
갈등 위에 갈등이 생기고 사회는 곪는다
 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참사는 먹고 사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정부의 무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사태를 수습하는 정부의 모습에서 불신은 더욱 깊어져 갔다. “국민들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했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신광영 교수는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결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광우병 파동의 경우 추가협상을 진행하는 내내 사회는 혼란과 정쟁으로 도배돼야 했고 그 과정에서 소고기 수입 협상이 졸속으로 이뤄졌음이 드러났다. 추가 협상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조건은 이전보다 강화됐지만 쇠고기 전면 수입에 대한 한·미FTA 협정안은 결국 합의되지 못한 채 한·미FTA 최종안이 완성돼야 했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 그 원인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정부와 정치권의 이해관계 속에 국회를 통과하는데 265일이 소요됐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결됐으면 갈등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을 거예요.” 해결되지 않은 갈등 위에 또 다른 위기가 닥친다. 신광영 교수는 한국사회의 많은 갈등이 외형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 위에 또 얹어진 것이라고 본다. 갈등은 쌓여가고 사회는 안에서 곪아가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벌써부터 시행령을 둘러싸고 여아간의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 딱 그러한 모양새다.  
 
결국은 통치의 위기
 “결국 사람들은 ‘나쁜 것은 국가와 공무원 놈들이다’고 생각하게 되죠.” 최영진 교수(정치국제학과)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통치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진단한다. 지금 당장 나의 생명이 위험한데, 국가는 아무것도 못 한다. 사람들은 국가를 불신하고, 불신 속에선 희생양이 필요하다. “남 탓을 해야죠.” 최영진 교수는 말한다. 보수정부는 진보세력에 책임을 전가하고, 진보는 보수정부를 비판하게 된다. 서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 진영대립은 가중되고 슬기로운 통치는 불가능해진다. 불신하는 국민, 싸우는 정치세력 앞에 안정된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
 
노무현의 죽음과 한국사회
 한국사회의 갈등은 때때로 겉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곪아 있다. 광우병 파동이나 세월호 참사와 같이 한국사회의 갈등은 본질적인 해결보다는 그때그때 사건을 수습하기 바빴다. 갈등은 여진처럼 끊임없이 사회를 뒤흔든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해 그 양상은 더욱더 증폭됐다. “우리나라 정치는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죠.” 신광영 교수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또 다른 갈등의 원천이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갈등의 샘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갈등일변도의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인물이 됐다.
 
 최영진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열정과 좌절의 반복’을 논한다. “죽음으로써 아름다운 모습만 남게 됐죠.” 정치에 실망하지만, 사람들은 늘 정치에 기대한다. 깨끗하고, 청렴한 정치에 대한 기대, 그것은 곧 한국 정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무현이란 사람에게 환상을 대치해 그를 기억한다. 그에게서 기존 정치에 없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아름다운 모습만 남게 됐다는 것은 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은 더욱더 커진다. “정치는 도덕적이지 않아요. 우리가 생선은 맛있지만 생선을 다루는 사람은 비린내가 날 수밖에 없잖아요.” 최영진 교수는 실현 가능할 수 없는 정치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실망은 더욱더 커진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써 태어난 정치적 환상은 정치에 대한 열정과 좌절이 반복되는 한국사회를 낳았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과거 시민들은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만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독재정부는 언론을 통해 정권의 안위를 도모했고 최근의 정부에서도 친정부 인사가 낙하산으로 임명돼 여론을 조작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사람들은 대중매체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정보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게 됐다. “언론에서 제공하는 정보보다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소식이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의견을 더 신뢰하게 됐어요.” 구세희 강사(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기성언론의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을 이용해 시민들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 여론을 주도해 간다는 점에 주목한다.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집회 참가자의 모습을 보도하는 보수언론만을 믿지 않고 집회를 경험한 참가자가 인터넷에 올린 당시의 상황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광우병 파동 때보다 생생한 사건의 상황이 제시되고 다양한 의견들이 공유됐다.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안에서 학생들이 찍은 영상과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설명해주는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돼 사건의 충격은 더욱 가중됐다.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선장의 음성도 포착됐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없었다면 이런 사실관계는 미궁에 빠졌을 수도 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 사태를 낳은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정부에 맞서 현장을 실시간으로 담아낸 스마트폰의 역할이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대중화와 카카오톡 서비스 활성화가 긍정적인 효과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SNS는 정보의 확장성은 크지만 신뢰성 없는 정보가 빠르게 퍼져나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장석준 교수는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정보는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고 이것이 공유되면서 불확실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이다. 
 
 한편 최영진 교수는 SNS와 온라인의 발달로 촉발된 소통방식의 변화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고를 나았다고 지적한다. “중립적 입장에서 양쪽의 입장을 담았던 전통매체와 다르게 온라인에서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말하죠. ‘일베’와 같은 집단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어요.” 실시간으로 쌍방향소통이 가능해졌지만 진정한 소통의 의미는 퇴색돼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어디를 가고 있나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같은 해와 다음 해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카카오톡은 국민 어플이 됐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다. 20대가 지난 15년의 사회를 바라보는 사건들이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을 걸요.” 최영진 교수는 다소 비관적인 사회를 전망한다. 세상은 세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부터 변화한다. 하지만 최영진 교수는 지금의 20대에게 세상을 책임지려고 변화하려는 자세가 있는지 반문한다. 20대가 세상과 타협하고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수록 세상은 더욱 야만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15년의 경험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광영 교수는 앞으로의 15년도 이전과 똑같다고 하면 그것은 너무 비관적인 현실이라고 말한다.  발전이 있어야 한다. 관건은 ‘20대의 의사 표현’이다. 앞으로의 미래가 20대의 미래를 6~70대가 좌지우지하는 지금과 같다면 달라질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20대가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정치권과 사회에 표현한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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